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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ug 05. 2024

저랑 콜라보 X 하실래요?

감자와 고구마

실장님과의 이별 후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남편은 의류와 패션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타입이다.


내가 하는 일에 양적 도움은 될지 언정 질적도움을 줄 수 없는 패션 문외한이었다.


제품이 예쁘냐고 물으면 환하게 웃으며 '예쁘다.'라고 답하는 수준이라 함께 의류 사업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단 제작은 잠깐 접고 다시 시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팔로워수가 폭발적으로 늘던 시기가 지나 3,000명 정도에서 딱 흐름이 멈췄다. 아마 제작 상품을 중단해서 나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신규 방문자가 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줄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로그인을 할 때마다 떨렸다. 간혹 1-2명 정도 늘기도 했지만 3-4명이 줄기도하는 기이한 흐름이 생겼다.

아침마다 인스타그램을 켜는 게 곤욕스러웠다. 이 팔로우 숫자가 뭐라고 내 하루의 기분이 좌지우지 됐다.


매일 쓸 만한 이야기를 찾고 인스타그램에 콘텐츠가 될만한 내용을 떠올리고 또 그걸 업로드하면서 인스타그램이 곧 내 일상인 그런 날들을 보냈다.

 


발전은 하나도 없이 그대로 제자리걸음만 하는 기분이라 참을 수 없이 불편했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인데 그게 정확히 어떤 잘못인지 몰라서 애를 태웠다.


다른 계정을 오마주 하거나 비슷한 콘셉트로 피드를 따라 올리면 왠지 내 인스타그램에도 유입이 늘 것 같아서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해쉬태그를 여러 번 바꿔보기도 했다. 돈을 써서라도 팔로워숫자가 많으면 왠지 더 장사가 잘될 것 같아서 유료로 유령 회원을 늘려준다는 사이트에 드나들며 끙끙 앓다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바로 다른 유명 인플루언서와 콜라보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내가 3,000명이니까 나보다 약간 많으면서도 소비자가 비슷한 연령대의 타깃을 가진 계정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아동복을 판매하는 5,000명 계정을 가진 인플루언서의 계정에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1년 전부터 꾸준히 관찰 아닌 관찰을 해오던 계정이 있었다. 그 집은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나랑 성별만 다르고 나이도 같은  똑같이 제작상품도 한두 번 진행했다가 도매 상품을 팔기도 하는 나와 결이 비슷했다.


우리가 잠깐 뭉치면 서로의 자원을 나누고 성장을 적극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감자(가칭)라는 아동복을 팔고 있어요. 혹시 시즌제로 같이 제작상품을 팔아보는 건 어때요?"


우리가 사는 곳은 차로 불과 15분도 안 떨어진 곳으로 만나기도 어렵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제안을 한 번에 수락한 그녀와 나는 일주일도 안되어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제작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비슷했다. 또 지금까지 혼자 운영하며 힘들었던 애로사항들도 함께 공유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예상대로 나와 결이 비슷했지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직업이 있는 워킹맘이었다.


이미 회사를 다니면서 이 일은 부업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이 나랑 달랐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 혼자 정말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인스타그램도 키우고 아이 양육도 하면서 삶의 수레를 나보다 더 힘들게 굴리고 있는 그녀가 위대해 보였다.


당시 그녀는 <고구마(*가칭)>라는 계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감자>와 <고구마>의 계정을 합쳐 우리는 <감 X 구마>라는 명칭으로 컬래버레이션 이름을 만들었다.


마치 유전자 조작에 의해 호박과 고구마가 합쳐져 탄생한 <호구마> 느낌의 이름이지만 꽤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만났던 때는 여름을 지나 추석시즌을 앞두고 있을 시즌이었다. 도매시장에는 하나 둘 아동용 한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나는 그녀에게 추석 전 아동용 한복 판매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딸만 있는 나는 마침 남아 모델이 없어 한복처럼 남, 녀 구분이 없는 의류는 판매가 애매했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여아모델이 없어서 한복판매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그녀도 내 아이디어에 적극 찬성했다.

  

우리는 그 길로 남대문 시장에서 다음 약속을 잡았다. 서로의 팔을 앞으로 뻗어 X자를 엇 갈려 만들며 동시에 "감구마 크로스!!"를외쳤다.


그 때의 우리는 마치 유비가 장비와 관우를 만나 복숭아밭에서 도원의 결의를 맺은 것처럼 웅장하고 단단했다. 감자와 고구마의 대환장 컬래버레이션이 막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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