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한 번 기억하면 잊지 않는다고 한다. 새끼 코끼리 발목에 족쇄를 채운 후에는 평생을 어렸을 때의 공간만을 돌아다닌다는 말은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라 할지라도 어렸을 때의 공간만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부정적인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강화시킨 나쁜 습관들이 그렇다.
코끼리와 인간의 유사함은 제삼자가 보듯 자기 객관화가 어렵다는 데에 있다. 지나고 보면 그때의 기억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메스껍고 역하게 남아버렸다.
나는 오이를 싫어한다. 향이 무척 메스껍고 역하다.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오이밖에 못 먹는 상황이라면 끼니를 굶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 (어르신들께서 권하실 때 참 난감하다.)
기억에 없는 이유는, 어머니께서 나를 임신하셨을 때 오이를 한 번도 드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진짜 원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잘 먹는 음식들을 전부 다 어머니 뱃속에 있던 10개월에 드셔보셨을 리는 만무하니까. (게다가 나는 육류를 좋아하지만 어머니는 닭 외에는 입에 잘 대지 않으신다.)
기억나는 첫 번째 이유는 유치원 때였다. 젓가락질을 잘했는지도 까마득한 어린이집에서 점심시간에 오이를 안 먹는다고 일어서서 바지를 벗고 벌을 서게 했다. 아직도 나와 같이 편식하는 몇몇의 아이들의 눈에 서린 공포가 기억 한편에 남아있다.
두 번째 기억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다. 늘 남자답기를 바라며 강약약강을 삶의 모토로 살아온 그는 밖에서는 정중한 척, 친절한 척하다가 집에 오거나 술을 마시면 돌변하곤 하는 못난 인간이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던 나를 거실로 불러내어 오이를 왜 안 먹느냐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자 더 먹기 싫어졌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는 한 번만 먹어보라는 식으로 부추겼다. 억지로 반 정도를 숨을 참고 먹다가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중재로 나머지 반은 안 먹게 되었지만, 이후로 오이에 대한 반감은 더욱 심해졌다. 지금도 오이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이유였던 어머니의 말씀 또한 나를 변호해주려고 한 어머니의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는 먹지 않던 음식을 지금은 곧잘 먹는다. 고추 장아찌나 애호박 볶음, 호박전과 가지볶음 같은 것들을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다. 다만 오이만큼은 먹을 바에 끼니를 거르고 싶을 정도로 먹기 싫다.
아마도 기억에 남은 나쁜 경험들이 내게는 코끼리 발목에 남은 족쇄 자국처럼 남아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억지로 먹는다던지 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도, 좋은 경험들도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