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료일지
진료는 가벼운 인사와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 시작된다. 한 주간을 정리하는 시간.
크고 작은 일들을, 그리고 크고 작은 생각들을 늘어트린다.
그중 우울함을 느꼈거나 공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편했던 상황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환경에 따라 인간은 많은 변화를 겪는구나, 싶었다.
나보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여겼던 지인이, 나보다 좋은 환경 밑에서 나아가는 모습에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다.
그분은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삶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했다.
다만,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왜 나는 저들보다 더 노력해야 비슷한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삶이라는 거대한 불평등 속에서 나는 조금 더 걷고 뛰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닐까?
항상 타인이 부러웠고, 나의 부족함이 부각되게 느껴졌다.
내 장점은 버린 채, 단점만 생각하며 나아가려니, 늘 발목을 붙잡는 후회와 미련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왔고, 어떻게도 바꿀 수 없었던 조건들은 말 그대로 어떻게도 바꿀 수 없었다.
누군가의 잘못에 의한 과정과 결과가 아님을, 알고만 있었고 수용하지는 못했다.
부모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자라지 못했지만, 결핍으로부터 성장 동력을 얻어왔고 제법 잘 이겨내 왔다.
진로문제도 직접 결정해야 했지만, 덕분에 나에게 더 적합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가족들과 따뜻한 추억이 별로 없지만, 내가 겪지 못한 따뜻한 기억을 나눌 가족을 꿈꾸게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결핍들을 통해 더욱 성장해 왔다.
아프고 쓰라린 기억들 덕분에 선택에 따른 책임과 무게를 알게 되었다.
가족 중 어른이 없었기에,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단단하고 야무진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을 조금씩 다듬는 과정이 진료 내내 이어졌다.
불필요하게 튀어나온 자아의 모양을 바꾸는 과정이랄까.
첫 번째 진료에 이어 두 번째 진료도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정말 마음이 편해졌고 다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싶은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