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제22회 장애인과 함께하는 문예글짓기 대회'에서 국회 국방위원장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글로는 처음 받는 상이었고, 여행다운 여행을 다니지 못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로 했다.
마침 최근에 차를 바꾸신 어머니는 아침부터 설레하시며, 부업도 미리 휴일을 빼놓으셨고 닭볶음탕과 반찬을 바리바리 들고 오셨다. 시상식은 오후 4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릴 거라 예상되어 2시 반 정도 출발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차가 많이 막혔고 오후 4시에는 아직 고속도로 중간이었다. 협회에는 모든 직원들이 시상식에 가 있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전화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행사가 끝난 5시 반에 도착했고, 서둘러 뛰어 올라갔지만 이미 다음 행사 준비 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분께 문의했지만 이미 다 끝나버렸다.
도착해서 시상식에 참석한 후 명동 구경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려 했건만, 모든 계획이 어긋났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명동교자'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내 눈치를 살피시던 어머니는 애써 기분을 내려는 듯하셨지만, 울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차가 많이 막혔다. 어쩔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담당자분께 연락이 닿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상은 직접 수령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으신 어머니는 계속 자책하셨다. 더 똑똑했어야 했다거나, 차가 아니라 다른 교통편을 이용했어야 했다던지.
어머니께 여쭈었다. '왜 슬퍼하시는 건가요?' 이유는 수도 없이 튀어나왔지만, 실상 그건 또 다른 경우의 수였고 잘못한 게 아닌 미흡했던 부분이라 조정하고 다음엔 그러지 않으면 된다. 이유가 너무 많아지면 핑계인 경우가 많다.
그 정도로 차가 막힐지 몰랐고 하이패스 카드가 없어 하이패스를 못썼고, 조금 더 일찍 출발하지 못했고, 아침 일찍 교통 상황을 살피지 않았던 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많다.
다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해서 수상이 취소되는 게 아니다. 이미 나는 수상이 확정되었다. 축하받는 자리가 사라졌을 뿐.
이 또한 하나의 경험이고 다음엔 좀 더 잘 다녀오자라는 말씀을 나누었다. 어머니의 자책하는 습관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오히려 불쾌하기만 할 기억을 경험으로 매듭지어 주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한 잘못 여부를 따지고 없다면 개선하고 더 좋은 상황으로 만들 방법을 찾기. 그리고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은 내려놓기. 요즘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주로 나눈다.
어른이 되는 방법은 알려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머니의 아이 같은 부분을 가다듬고 나 또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에, 이것도 또 다른 부상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나는 출발부터 엄청난 상을 받지 않았는가. '어머니의 밥상'이라는 상을.
그리고 '왜?'라는 의문을 항상 들고 다니기로 했다.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그리고 덜 슬퍼하며 삶을 '경험'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