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던 해, 라식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되었으나 병원은 이듬해 사라졌다. 강남 한복파에 위치했던 그 병원은 어디로 갔을까. 덕분에 항상 1.2 이상의 시력이 유지되나 밤에는 빛이 퍼져 보인다. 렌즈에 지문이 묻은 것처럼,
운전이 잦았던 20대 초반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특히 밤 중에는 신호등이 퍼져 보이고 건너편 차의 전등조차 버겁게만 느껴졌다. 왜 이런 눈을 가진 걸까, 한탄스럽게 느껴졌다.
뚜벅이 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부터, 오히려 뿌옇게 보이는 세상이 좋아졌다. 멀리까지 빛 축제에 가지 않아도 가로등마저 나에게는 아련하게 느껴졌다. 사막의 아지랑이 같은 느낌이랄까, 좋았다.
가끔은 일부러 눈덜미를 찡그리고 밤거리를 걷는다. 나만이 눈에 필름을 섞은 듯한 그 공기가 좋다. 역시 바라보기 나름인 걸까, 세상은.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아득함이 오히려 좋은 요즘이다.
너무 선명하게만 보이는 세상이 버겁다. 나를 위해 자주 쉬어가야 한다. 부쩍 흐리멍덩하게 보이는 나의 눈이 고마워지는 중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