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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pr 07. 2024

가자, 길을 만들러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아버지와 마주한 적이 없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별거하고 계시지만 혼인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게 하기 싫다고 하시기에, 이따위 아버지는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다.


실제로는 계시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한부모 가정도 아니었고 돈도 없었지만 기초생활 수급자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완벽한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였다. 왜인지는 아직도 말씀을 못 들었다.


어머니의 부업으로만 생계를 이어갔다. 일찍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 처했고 선취업 후진학을 밀던 당시의 특성화고 제도와 합이 맞아 고교 졸업 후 회사에 들어왔다.


그저 아버지가 무서우신 걸까, 지금 상태로도 만족하시는 걸까. 아들의 앞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당한 방법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신다. 나를 사랑하신다 하셨는데, 아들을 위한 지원은 일절 없었다.




돈에 절절 매시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곁에 두었던 인문학 책들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내 손에 떨어지는 월급에 중요했다.


선취업은 했지만 후진학은 못했다. 선진학 후취업도 어려운 걸 보면 당시 '취업률을 높이고 싶었던 정책들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 누구도 대학과 취업 뒤에 무엇이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태어나면서 집안이 기울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자애롭지만 자식에 강박을 가지시는 어머니, 돈 때문이 아니면 연락도 하지 않는 가족들 사이에서 늘 외로웠고 의지할 어른이 없었다.


묻더라도 피상적인 답만 흘러나왔기에 어느샌가 친가도 외가도 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기에 전입 신고도 못하는 전세계약에 10년을 넣어야 본전이 되는 보험에도 들었다 위약금을 왕창 쏟기도 했다.


그래도 해야 했다. 힘들었던 매일은 죽지 않을 만큼의 시련들이었고 니체의 말처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계획했다면 일단 손을 뻗었다. 짧은 손해보다 긴 이익을 따라갔다.


복싱 선수처럼 성취의 잽과 스트레이트를 이었다. 틈틈이 훅과 어퍼컷을 준비했고 분기, 반기마다 취득한 자격증과 TF활동, 공모전 사내 시상 등으로 커리어를 이었다. 그리고 '후진학'도 준비하고 있다.




입사 면접 때 인사팀 상무님께서 '왜 학교보다 회사를 먼저 오는지'를 물으셨다. 트렌드였던 압박면접의 일종었고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대답을 지킬 날이 가까워져 간다.


올 해에 예정된 기술사 시험과 대학원 진학을 멋지게 마무리해야겠다. 금수저, 은수저 없으면 인도식으로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글이 필요한 이들을 만나는 순간을 앞당겨야겠다.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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