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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pr 21. 2024

만약은 없다지만, 하지만

고모 이야기

기억나지 않는 어린 나를 고모는 무척 예뻐하셨다고 한다. 사촌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처럼 사랑해 주셨지만, 그 기억은 나에게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고모는 내가 여섯 살 즈음에 이혼과 함께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정을 떼려고 했는지, 떠나기 전날 나에게 험한 말을 하고 떠났음을 전해 들었다. 다행히도 기억에는 없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색이 되어 나를 태우고 충남 홍성을 향해 달렸다. 그의 처음 보는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에게는 6년 만에 아버지는 여동생과 재회였다. 여전히 고모는 나를 사랑해 주셨고, 갓 태어나 걸음마를 하던 사촌동생과 처음 만났다.


고모는 몇 해가 지난 후 그곳을 떠났지만 이번에는 우리와 연락을 끊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함께 모인 자리에서 고모의 젊은 날의 기억을 들었다.


20대의 고모는 거울만 보면 다 부수고 다녔다고 한다.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고모는 가족을 사랑하고 타인을 아낀다. 본인의 어두운 과거를 타인에게 말할 만큼 강한 모습을 가진 어른의 모습이다. 그런 고모의 모습에서 정처 없이 방황했던 세월이 느껴졌다.




고모와 함께 자란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두 사람은 비슷한 삶과 각자의 방황을 겪었다. 본인의 삶을 책임지려 했다면 아버지는 고모처럼 살았을까,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한 인간이었을까.


운명은 개척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조차도 정해졌다 말하는 이가 있지만, 방바닥에 누워 술만 마신다고 시간 외에 지나가는 것은 없다. 어른으로써의 삶은 주변에서 도울 수 있지만 본인의 몫이라 생각하고 발을 내딛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고모는 혼자 나의 사촌동생인 딸을 키워냈다. 사촌동생도 방황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겠지만, 내가 본 가족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살지 않을까 싶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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