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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y 05. 2024

시뻘건 김치자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아버지를 피해 학교를 자주 쉬었었다. 아버지의 행패에 지치신 어머니는 월세방을 구해가며 도망 다니셨다.


방학이 아닌 기간에는 사촌 형네 집에 가정학습이라는 이유로 머물렀다. 그러다 내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던 아버지가 학교까지 쫓아왔다.


나를 지키려 모습을 드러내신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마주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용서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고 아버지는 또다시 집안을 뒤엎었다. 반지하 우리 집 천장에는 던져버린 김치통 뒤로 시뻘건 자국이 흥건했다. 역시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지.




고등학교 2학년 때, 결혼 생활 18년 만에 어머니는 처음으로 친구분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셨다. 그날도 역시 아버지는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려 하였고, 집에 혼자 있던 나에게 온갖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말들로 나와 다투려고 하는 아버지에게 당신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그는 '널 위해 살고 있는데 그게 아버지에게 할 말이냐' 물었다.


태어나서 처음 눈이 뒤집혔다.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그는 주방으로 달려가 칼을 꺼내 들었다.


귓속에 시뻘건 김치자국처럼 쇳소리가 흥건했다.

그날, 아버지는 나의 삶 속에서 죽었다.




방문을 걸어 잠근 뒤, 문이 안 열리도록 장롱을 엎고 경찰을 불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연락이 안 되어 찜찜하셨던 어머니와 도착한 경찰들이 함께 집에 도착했다.


모호하지만 강하게 항변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와  중재하는 경찰관의 무심하고도 단호한 말들. 익숙했고 끔찍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볼 낯이 없어서일까,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전화 통화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연락은 없었다. 나의 삶 중 가장 끔찍한 인간은 아버지였다. 그렇기에 나는 반드시 좋은 아버지가 되기로 했다.


그저 원하는 것을 끝도 없이 밀어 넣거나 부자가 되는 길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어른으로써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삶을 알려주는 아버지. 내가 겪은 경험의 정반대로 달려간 곳에 목표가 있었다.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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