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론 May 19. 2024

비싸고 맛없는 선물세트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어머니의 부업으로 숨이 트여 외식을 잦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게들에 두 번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특유의 언변으로 주변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의 상승과 함께 무례함이 터져 나왔다. 멱살잡이와 욕지거리는 물론, 지금의 내가 상종하지 않을 부류들의 언행을 필터링 없이 토해냈다.




어렸을 적 나와 2살 터울의 사촌형이 자주 집에 놀러 왔다. 죽이 잘 맞았고 관심사도 비슷해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서로 떨어지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적이 많았다.


그런 사촌형과도 맨발에 동네를 배회했던 기억이 있다. 형 앞에서 숙모 험담 하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보기 싫어 형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성급한 마음에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나와 발바닥이 까맣게 변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도 다투셨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즐거웠지만 뭔가 이상했다. 늘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되지 말라고 내게 말씀하셨지만 아버지와 같이 사는 이유는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신 다정한 어머니지만 허전함이 느껴졌다.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온라인 게임과 책 속에서 살아갔다.


PC방에 같이 가는 친구들도 생고 매일 오후를 함께 지냈다. 그러다 하나 둘 진학의 때가 되자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두려웠다.




우리는 왜 가족인 걸까. 나이만 가득 찬 애들만 가득한 채 마치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 선물세트 같았다. 형식적인 가족을 유지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축나고 있었다.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완전함에 가까워지는 안정감을 갖는 사람들을 다. '아, 이게 가족이구나. 내가 있던 곳은 가족이 아니었구나.' 부러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배울 점을 찾았다. 내가 겪지 못했기에 그들로부터 배워야 했다.


읽어보고, 다양한 예도 봤지만 정답은 없었다.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시간을 갖고 행복을 바라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혼자 나아가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혼자이고 싶지 않다.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뒤집어도 그릇에 붙어있을 정도로 끈끈한 삶을 살아가야겠다.


이 보다 중요한 삶의 이유가 또 있을까.

이전 13화 자전거 도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