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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pr 01. 2024

등잔 밑이 어둡구나

6년 전, 어머니께 신용카드를 드린 후 사용하신 금액을 송금주시도록 했다. 생활비 목적으로 쓰실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드렸지만 어리석은 판단이었음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청구되는 금액을 매번 확인하는 것보다는 우선 자율적으로 쓰시도록 두었다. 다음 달에 찍힌 청구 금액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어머니 혼자 쓰시기에 많은 돈이라 사용처를 여쭙고 송금이 가능하신지만 확인하고 다음 달이 되었다.


120, 150, 200만 원으로 조금씩 늘어가자 어머니께서는 조금씩 송금일이 늦어지곤 하셨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셨지만 끝내 천만 원 가까이 돌려받지 못하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머니와 청구서를 놓고 대화를 시작하자 몇 분 지나지 않아 분위기는 심문처럼 흘러갔다.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의 생활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를 키우신 분이시니 어련히 잘하시리라 생각했다.


말씀을 들어보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부터 문제일까. 불필요한 지출이 너무 많았고 그 행방에 대해서도 적확하게 말씀하지 못하셨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성장과정을 돌아봤다.


집안이 망하고 어머니는 도망치듯 가정을 꾸리셨다. 한량인 아버지와 구박만 하는 시집 사이에서 어머니는 강해지시거나 강한 척을 하셨어야 했다. 몰라도 질문하지 않고 성장한 신입사원처럼 되었다.


카드를 돌려받고 공과금만 자동이체를 내쪽으로 돌려놓되, 어머니의 카드를 만들어 드렸다. 카드 대출로 인해 신용등급이 떨어지셔서 아버지 카드를 주로 사용하고 계셨기에 은행에 함께 방문했다.


은행원에게 간단한 서류 작성을 한 후 수십 년 만에 어머니의 카드가 세상에 나왔다. 조금씩 신용등급을 회복하려면 어머니 명의로 된 실적을 쌓아야 하기에 꼭 사용을 당부드렸다.


눈물을 글썽이시던 어머니를 뒤로,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직 내가 모르는 비밀들이 많이 숨겨져 있구나, 가족도 계속해서 의심해야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꼈다.


무거운 상태로는 먼 길을 떠날 수 없다. '차라리 혼자가 낫나' 읇조리며 계속 떨어지는 반창고를 가슴 한편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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