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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r 17. 2024

미술, 핑계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는 미술을 좋아하셨다.

색에 대한 감각이 좋아 어렸을 적 상도 여러 번 타셨다.

지금은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하신다.


일과 중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격일제 근무이기에, 여가시간은 충분하다.

쉬는 날엔 술통을 붙들고 동네사람들과 어울린다.




활달한 성격의 아버지는 평소에 정중하고 재밌다.

그런 모습에 다가온 이들이 술잔과 함께 부딪혀 사라진다.

핀트가 나가면 들이받는 성격에 진저리를 친다.


자주, 할아버지를 탓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아 미술을 못했다고,

여태껏 방황하고 있다면, 이제 누구의 잘못일까?


간혹 미술 숙제 도와주신 한 두 차례를 제외하면,

아버지 손에서 붓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본인이 핑계라는 걸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등만을 자주 봤다.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하는 아버지 옆에 있고 싶어,

관심 있는 척, 식탁 의자를 들고 구경했다.


그의 술안주는 과거 회상이다.

'그래, 세상 탓이야, 부모 탓이야' 하며,

몸뚱이만 커버린 어린아이로 머무르고 있다.


아직도 아버지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어느 날엔 용기를 내 연락해 보았지만 공허했다.

그의 목소리는 하염없이 작고 나약해졌다.


객기와 젊은 치기도 빠지고 있다.

그의 노년이 기대되지 않는다.

붓과 함께하는 모습도, 기대하지 못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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