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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 사용법

비사회적 인간

자화상

by 아론

웃으면서 출근한다. 새 옷은 회사에 가장 먼저 입고 간다. 내 자리를 깨끗하게 닦고 정리한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책상에 커피와 물이 담긴 텀블러를 얹고 업무를 시작한다. 중간에 어떤 일이 생기거나, 보고서 작성이 생겨도 군말 없이 처리한다. 자료를 찾아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 없이 구글링과 위키백과를 찾는다. 보이지 않는 방향의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지루한 업무를 쳐낸다. 단순 반복 업무는 지겹지만 기쁘게 해치운다. 사름들과는 과도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 선은 서로가 주저하며 다음 주제가 떨어졌음을 느낄 때 날카로운 칼로 선을 긋고 자연스레 업무에 복귀한다. 퇴근 시간에는 굳이 잔업시간을 늘리며 수당을 더 챙기려 하지 않는다. '삶에도 시작이 있으면 죽음에 이르듯, 출근을 했다면 당연히 퇴근해야 하니까' 나의 회사 생활의 작은 모토다.


퇴근 후에는 병원에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바이올린을 배운다. 굳이 쓸데없는 자리는 만들지 않지만, 적당한 사회적 모임은 즐긴다. 배울 점이 없거나 새로움이 없는 사람과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은 서로를 슬라임처럼 주욱 늘어트리기에 밀도가 낮은 사람과는 질이 낮은 시간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주로 사람은 인성을 많이 보고, 상대의 감정이나 마음을 비교적 잘 파악하는 편이다. 눈치가 좋지만 마음을 위탁하기도 한다.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상대에게 위탁하려 들다가 간간히 실수한다. 또다시 혼자가 되고서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 고독이다.


놀 때는 제대로 논다. 노래방에 가서도 좋아하는 인디 음악이나 힙합을 거리낌 없이 부른다. 아, 물론 회식자리에서는 안 한다. 밥 먹고 바로 사무실로 올라가는 동료들에게 산책을 이유로 잠시 바람을 쐰다. 끄적이는 글이나 금이 간 멘털의 치유의 시간이다. 윗사람들의 짜증을 견뎌내고 후배들에게 내색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게 하려면, 내가 후대에 남기고 가는 것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배들로부터는 쓸데없는 말이나 반박을 즐기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단점을 수집하고 나에게 빗대어 입지 않는 옷처럼 과감하게 버린다.


하고 싶은 일들과 취미를 갖고 있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퍽 즐겁다. 물론, 의미 없는 일들에는 한숨이 쉬어진다. 가족관계는 오프로드처럼 거칠다.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가꾸며 즐기는 나는 반사회적 인간보다는 비사회적 인간이고 싶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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