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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 사용법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화상

by 아론

많은 레슨을 받았었다. 어릴 적 수년간 묵묵히 다녔던 보습학원부터, 드럼, 바이올린, 테니스, 보컬, 피아노 등등... 그 와중에 들었던 생각은 늘 인정받고 싶었다는 마음이다. 학생으로서 선생보다 못함은 당연하며 먼저 배운 수강생들보다 못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저 사람들보다 잘하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면서 '취미'의 선을 넘어서려 안달해 왔다. 직업으로 임하는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 서고 싶다고 욕망해 왔다. 늘 그렇듯, 욕망은 욕구함으로써 망하게 한다고 깨닫는다.


칭찬받고 싶었다. 못하는 게 많지만 그 와중에도 연습해 온 자세나, 테크닉을 칭찬받고 싶었다. 하지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배우지,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난 이것을 몰랐고 배울수록 상처만 깊어졌다. 레슨으로 코칭받는 부분과 연습량으로 커버해야 하는 부분은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조화를 이룬다. 상처가 많아질수록 연습보다 코칭에 의지했다. 늘 그렇듯, 의존성이 너무 높아지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이번 11월의 시작이자 목표 '초심 찾기'


매일 1페이지의 글을 적고 있다. 언젠가 책으로 엮일지, 그저 일기의 역할로 남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조회수나 라이킷의 수를 살핀다. 쓰기 위해 적던 글이 읽히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 든다. 흔히 작가들과 가수들이 겪는 고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던 길을 멀찍이 바라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원점에서 시작한다 해도 괜찮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은 더 성장했고, 체력이 쌓였으니 멀리 갈 수 있다.


강신주 철학자의 강연 중, 쓸모에 대해 논하는 영상을 접했다. 쓸모없더라도 행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쌓고자 하는 생산성 있는 공부와 업무 외에 취미로 행하는 일들에는 쓸모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재밌기에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하게 된다. 이것들은 차츰 쌓여가다, 단상이 되고 계단이 되며 언덕이 될 것이다. 산처럼 쌓였을 때, 나의 부지런함을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는 게으른 사람이에요.'


지치고 힘들 때는 그저 쉬고 싶다. 영상이나 쇼츠를 보며 시간을 버린다. 유익함을 찾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채워지지 않는 재미의 항아리에 담긴다. 밑 빠진 독이란 것을 느끼지만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이때 드는 생각, '중독이란 무섭구나'. 이쯤 오면 내려놓을 법도 하지만 안된다. 관성을 끊어내려면 강한 억제력이 필요한데, 나에게 흐르는 도파민이 멈추질 않는다. 때론, 눈을 감아버린다.


11월에 들어서고, 대략 10일 정도 쉬었다. 아예 놓지는 못했고 잡을 듯 말 듯 손에 거머쥔 채로 지냈다. 덜어낼 것은 더욱 덜어냈고,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루었다. 후회와 원망보다 안심과 평온함이 감돈다. 난 내가 힘든 느낌을 잘 모른다. 어떻게든 해내려 안달하다 힘이 빠져 쓰러진다. 나에 대한 혐오감이 늘어나고 의지가 꺾여버린다. 그러지 않기 위해, 초심을 찾고 모든 일을 '취미'처럼 하려 한다. 과하면 질리고 적당히 하다 내려놓으면 다시 하고 싶어 진다. 열정의 공급과 수요를 적절히 블렌딩 하여 맛있는 커피와 위스키처럼 만들고 싶다. 이제 다시 신발끈을 묶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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