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 당연하길 바라는 건 어렵다
최근 당한 교통사고로 목과 허리의 근육통이 심해졌다. 법을 방패 삼아 요구하여 받아낸 보험으로 열심히 병원에 다닌다. 도수치료, 물리치료, 재활 관련 운동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허리에서 뭉클하는 기분 나쁜 느낌이 감돈다. 의사 선생님은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정 아프시면 신경주사를 권한다고 하셨지만 내키지 않았다. 어릴 적 척추에 꽂아 넣었던 신경주 사는 너무 아팠다. 당시 생각했다. '아, 진짜 이 고통을 잊지 말고 꼭 건강 챙기자.' 물론 지금의 터져버린 허리디스크는 내 잘못이 아니지만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다. 내가 챙기고 싶다고 챙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로 지쳐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10월 중순부터는 여유가 생겨 클라이밍, 테니스,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이어나갔는데 도수치료와 물리치료가 들어가니 빈틈없이 꽉 차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일정을 다시 조율하며 우선순위를 매겼다. 일단, 몸이 먼저이니 바이올린과 테니스, 클라이밍이 밀리고 도수치료가 가장 우선순위에 올랐다. 도수치료와 진료, 이어지는 물리치료까지 3종 세트를 하면 족히 2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도수치료는 근육을 풀어주면서 아픈 부위 주변 운동을 진행하기에 끝나면 나른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 운동을 하던 악기를 연주하던 억지로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취미를 취미로 하지 못하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갓 시작한 소중한 취미들인데...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말처럼 이 상황을 이겨나가려고 이동 중이거나 회의 중에는 틈틈이 몸을 풀어주며 알차게 보내려 한다. 하지만 빈틈없이 하루를 보내면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보다 힘들고 지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하루에 겪을 수 있는 통증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걸까. 대학교 졸업준비와 과제준비도 밀려있고 그간 연기해 왔던 봉사활동들도 납기가 다가오고 있어 자괴감이 계속 차오른다. 이럴 때 가장 편한 건 자기혐오다. '내가 못해서 그런 거고 내가 이렇게 만든 거야'라는 식의 인정을 곁들인 자기혐오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진다. 나이가 차면서 느끼는 건, 예전에는 이런 마음이라는 사실만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점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지친 마음을 치유할 시간이 충분하리만큼 지나지 않고 다시 시작하면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변한다.
사고를 당한 날, 어머니께 연락드리지 않았고 지금도 모르신다. 그저 통화 중에는 어머니 건강만 여쭙고 간단히 용건과 그간의 소식을 나눈다. 치료는 의사와 나의 몫이며 아신다고 하여도 늘어나는 건 걱정과 수심뿐이니까. 훗날 아신다면 실망하실지도 걱정이 더 늘어나실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진실이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듯, 이번에는 진실을 나만 갖고 있으려 한다. 조금 서글프기도 하지만.
건강을 챙기다 보니 몰랐던 근육과 근막들의 통증을 느낀다. 나한테 오리발건이라는 부위가 있었구나, 기립근과 전완근은 또 뭘까 싶다가도 열심히 풀어주며 낑낑댄다. 문득 든 생각인데,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내가 겪고도 몰랐던 고통과 통증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무덤덤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릴 적의 나는 무슨 일이든 일단 해보자 라는 생각이 강해서 주저했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경험을 많이 해봤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처가 많았다. 툭툭 털고 지나갔지만 종이에 베인 상처처럼 당장에는 모르고 나중에 터지는 경우가 많았다. 클라이밍을 하며 생긴 지금의 굳은살처럼 나중에 알고서 마음이 적적했던 때가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도 마음과 몸이 굳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