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히메현 시모나다역을 가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에히메현 요산선 해안가에 있는 무인역 시모나다역下灘駅이다. 철도 왕국이라고 하는 일본은 각지를 연결하는 수많은 철도 노선과 역들이 있는데 그 많은 역들 중에서 철도 덕후들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역들이 있다. 일본 최북단역 왓카나이역, 최동단역 히가시 네무로 역 같은 동서 남북 각 끝지점의 역들이라든지, 시모나다역처럼 바다가 보이는 역이라든지, 아름다운 건물역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 시모나다역은 바다가 보이는 역들 중의 하나로, 바다를 눈앞에 둔 무인역으로, 쓸쓸한 느낌이 강한 역이다. 이 역을 찾아가기로 한 것은 바로 위의 사진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진은 1999년 겨울, 청춘 18 깃푸 광고 포스터에 사용된 것으로 사진 오른쪽에 쓰여 있는 광고 카피는 "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고등학생인 내가 내렸다"
*청춘 18 깃푸는 사용 대상이 주로 학생층이어서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에만 발매된다.
시모나다역下灘駅은 JR시코쿠 관할 요산선予讃線에 있는 역인데, 철도 노선도를 보면, 마쓰야마에서 무카이바라역向井原駅을 지나 왼쪽 편으로 돌아서 이요오즈역伊予大洲駅까지 가는 노선에서 네 번째 역이다.
JR 요산선의 노선도, 요산선은 JR 시코쿠의 간선 노선 중 하나로, JR 시코쿠의 노선 중에 가장 긴 노선이다. 카가와현의 다카마쓰시에서 에히메현의 우와지마시를 잇는다.
일본의 시모나다역을 소개하는 글은 이렇게 나와 있다.
"마츠야마역에서 보통 열차에 흔들려 약 1시간. 홀로 서 있는 홈은 낡은 가건물과 벤치. 무엇 하나 가로막는 것이 없는 세토 내해의 조망. 시모나다 역에 있는 것은 유일무이한 포토제닉 장소입니다. 낮에는 감청, 황혼 때는 자줏빛으로 물드는 시야. 그리고 현지인이 기른 사계절의 꽃들. 언제 찾아가도 가슴 설레는 정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에도 사용되고 있어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가 보이는 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츠야마역에서 보통 열차로 약 1시간. 개수는 1~2시간에 1개. 무인역"
이 역이 처음 개업한 것은 1935년 6월 9일, 당시에는 바로 앞 역인 이요카미나다역에서 한 정거장을 더 연장해서 시모나다역까지 노선을 개업했다. 그래서 당초에는 시모나다역이 종착역이었지만 4개월 후인 1935년 10월 6일에 시모나다역에서 다시 이요나가하마역까지 추가로 연장선이 개통되는 바람에 종착역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 후 일본의 시골 철도노선이 다 그렇듯이 이 역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데 1986년, 무카이바라역에서 우치코를 거쳐 이요오즈까지 새로운 철도노선인 우치코선이 개통한 뒤로, 이곳은 더 이상 특급열차가 다니지 않게 되고 보통열차만 운행하게 되었다.
현재의 시모나다역은 1개의 승강장만 있지만 원래는 승강장 양쪽으로 노선이 있었다. 무카이바라역과 이요오즈사이의 새로운 노선이 신설된 후 역사 쪽의 철도노선을 철거했지만 처음 이 역이 개업할 당시 종착역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역구내는 넓은 편이다. 시모나다역은 2019년 기준 하루 이용객이 78명으로, 보통열차만 정차하는 역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역의 승강장에서 바로 바다를 볼 수 있기에, 고즈넉한 분위기와, 여행의 쓸쓸함, 낯선 곳의 설렘등을 잘 표현할 수 있어 청춘 18의 포스터 배경 사진으로 여러 번 등장했고, 철도 마니아가 많은 일본에서는 감성적인 철도 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해져 철도 마니아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와 같은 장소이다.
처음 개업당시에는 역의 승강장 바로 앞이 바다였지만 그 후에 매립이 되었고, 사진에서 보듯 국도가 개통된 뒤로는 역과 바다는 조금 떨어져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특별히 문제가 없다. 역 주변에는 1-2채 정도의 민가가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역 앞에 있었다는 담배가게도 철거된 지 오래이고, 역에서 서쪽으로 1km쯤 가면 작은 항구가 있고 거기에 관공서와 학교가 있다.
시모나다역은 그 유명세 때문에 청춘 18 깃푸에 3번 등장했는데 다음이 나머지 사진들이다.
2001년 겨울 광고이다. 1999년 겨울 광고부터 3년째 겨울 광고에 등장했는데 3년 연속 등장하기란 쉽지 않은데, 카피 내용도 도전적이다.
"전략, 일본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전략前略이란 것은 편지나 글의 서문을 생략하는 것을 말한다. 이곳이 어디인지,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는 그런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2000년 겨울 광고 포스터의 사진이다. 이 무렵의 포스터는 역 안에서 플랫폼에서 나가는 사진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당시 시모나다역의 사진의 배경 역시 플랫폼으로 나가는 입구 사진이다.
카피는 " 무심코 내려버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현재의 역사는 예전의 목조 역사가 철거된 이후 건립된 것으로 역사는 있지만 표를 판매하지도 않고 딱히 역사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인역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비록 이제는 무인역으로 남아 있지만 이 역은 이름 없이 잊히는 그런 무인역만은 아니다. 이미 설명한 대로 청춘 18 깃푸의 배경 사진으로 자주 등장한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기무라 타쿠야의 히어로 특별 편에서 기무라 타쿠야가 임지를 떠나는 장면에서도 촬영되는 등 CF나 영화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2007년 8월 8일에는 더 베스트 하우스 123에서 일단 내려보고 싶다 일본의 아름다운 무인역 베스트 3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참고로 1위는 시즈오카현 북부지역에 있는 이다선의 코와다역이었다.)
첫 번째 사진에서 여성이 시모나다역에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사실 인적이 드문 바닷가 무인역에 이렇게 어리고 예쁜 여성이 혼자 앉아 있는 경우는 백만분의 일도 안된다. 지금까지 내가 다녀온 이런 역들의 여행에서 경험한 바로는 연인과 함께 여성이 오는 경우는 있어도 여자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상하리만치 이런 곳에 내리는 여행객은 거의가 남성들이다. 현재 이 역에는 이요나다모노가타리라는 관광열차가 운행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김동영의 에세이 나만 위로할 것에서 보면 그의 여행의 배터리는 슬픔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낯선 무인역에 내리는 것은 기쁨이라기보다는 슬픔이다. 즐거움보다는 쓸쓸함만이 남아 있는 이 역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여행의 피로와 함께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드는 쓸쓸함과 슬픔이다.
흔히 기차여행을 삶과 비교하곤 하는데, 언제 어디서 멈출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타고 가는 열차 또한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군가 내 곁에 앉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호감을 가질 때쯤이면 그는 내려버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앉고 나 또한 어디선가 내렸다가 새로운 열차를 갈아타고 가는, 그것이 바로 인생과 같은 것이다.
시모나다역에서는 특별히 말을 건넬 사람도 없고 그저 혼자서 바다를 보는 것만이 전부였다. 맑은 날이면 바다 저 끝으로 사라지는 태양과 함께 붉은 석양이 아름답다. 붉게 물드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혼자서 보게 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말없이 바다만 보게 된다. 그러다 시계를 본다. 어느샌가 내가 타야 할 열차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보통열차를 타게 되면 열차는 나를 마쓰야마까지 이끌고 갈 것이다.
언젠가 다시 또 오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부디 그때에는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이들과 함께 이 역에서 내렸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안고 이 역에서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