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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횡단 철도 여행

레트로 철도 여행, JR 히사츠선

by 늘 담담하게


오코바역에서 출발해서 9.5km쯤 가면 야타케역矢岳駅이 나온다. 이 역은 JR히사츠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으로 표고 높이는 536.9m이다.


image.JPEG?type=w966 야타케역

야타케역은 1909년 11월 21일에 개업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넘은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 역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오랜 역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니, 그리고 이 낡은 목조 무인역을 관광자원화하여 수많은 이들을 계속 불러 모으고 있다니.. 일본의 관광 산업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영악하다. 주변의 몇 가지만 정리하면 당장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속극 한편 정도는 찍을 수 있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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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봐도 그렇지 않은가? 역 정면에 작은 마을과 논밭이 있다. 철도 개통까지는 육지의 섬 같은 곳이었는데 철도의 개통과 동시에 마을이 생겨 이미 다이쇼 시대 중반에는 철도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락 판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가고시마현 센다이 주변으로 히사츠오렌지 철도의 개통과 함께 히사츠선의 이용자가 감소하자 현재 마을은 인구가 줄어들어 야타케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고 말았다. 야타케역에서 조금 지나 남쪽의 건널목 부근에 구마모토현과 미야자키현의 경계가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남쪽에 야타케 제1터널이 있다.


길이 2,096.17m의 이 터널은 개통 당시 그야말로 난공사였다. 이 터널은 히사츠선에서 가장 긴 터널이다. 가고시마로 통하는 철도는 현재의 가고시마혼센, 히사츠오렌지 철도에 해당되는 해안 노선이 처음에는 검토되었지만 해안 부근의 선로는 전시에 적의 공격을 받기 쉽다는 이유로 군부가 반대하여 히사츠선이 먼저 건설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 구간은 가고시마본선으로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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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의 북쪽은 히토요시까지 1908년 6월 1일에 개통되었고, 가고시마현 측의 구간도 요시마츠까지 1903년 9월 5일에 개통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요시마츠에서 히토요시 구간인데 1906년 9월에 야타케 제1터널의 공사가 착공되었지만 외딴 산속인지라, 자재의 반입이 쉽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수분이 많은 응회암층 때문에 지하수가 계속 터져 나와 자재를 나르던 말들이 휩쓸려 가는 등 어려운 난공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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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어려움 끝에 마침내 1908년에 갱도가 관통되고 1909년 11월 21일에 히토요시와 요시마츠 사이가 개통되었다. 이에 따라 가고시마 본선은 전 노선이 개통되었고 규슈와 혼슈의 경계지점에 있는 간몬 해협의 연락선을 이용하면 혼슈의 최북단인 아오모리에서 가고시마역까지 일본을 횡단할 수 있는 철도가 이어진 것이다. 어찌나 터널 공사가 어려웠는지 터널 북쪽 편에는 당시의 체신장관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쓴 天険若夷, 남쪽 편에는 당시 철도원 총재 고토 신페이가 쓴 引重致遠이라는 글자가 세로 1미터, 가로 2미터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이 말을 풀어보면 천하의 험한 곳을 평지인 것처럼 한 덕분에 무거운 화물을 멀리 나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로 관광열차 이사부로 신페이호가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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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케1.jpg 왼쪽이 마사키역, 오른쪽이 오코바역을 알리는 표지판

한국이든 일본이든 이런 시골역의 플랫폼에 서 있게 되면 뭔가 아련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기차 여행자의 감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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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에는 히토요시시 SL 전시관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1972년에 만들어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예전 이 노선을 달렸던 증기기관차를 전시해 놓고 있는 것이다.

D51_170.jpg 전시되어 있는 D51170 증기 기관차

일본 각 지역에 아직도 운행하고 있거나 혹은 이렇게 전시되어 있는 증기 기관차가 있는데 언젠가 코레일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한국에도 이런 증기기관차가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없다" 이다. 해방 이후 한국 전쟁과 그 이후 시기에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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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EG?type=w966 야타케역의 표고를 알려주는 표지석.



오래전 이 험한 산지를 달리던 열차였을까?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기관차, 이 기관차와 전시관, 그리고 야타케역은 2007년 남규슈 근대화 산업 유산군에 선정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바쁘게 사진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여승무원이 빨리 승차해 달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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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재촉에 다시 바쁘게 열차를 올랐다. 열차가 서서히 움직여 출발을 했고, 앞서 설명한 야타케 제1 터널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나는 히사츠선 안내책자를 보면서 카메라를 준비했다. 터널을 통과한 직후 열차가 잠시 멈춰 서는데 차창의 왼편 쪽이 바로 일본의 3대 차창 중의 하나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일본 3대 차창은 이 히사츠선을 비롯하여 나가노의 시노노이선(長野の篠ノ井線)과 홋카이도 네무로 본선 구선(根室本線旧線)을 말한다.


열차가 멈춰 서고 승무원은 일본의 3대 차창 중의 한 풍경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런데, 처음 본 느낌은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풍경일까 싶은 실망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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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마연산과 에비노 고원의 풍경이라고 하는데 날씨가 좋으면 멀리 사쿠라지마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의 3대 차창은 무슨 장엄한 풍경이라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보는 평야지대의 모습들이다. 이 세 곳의 공통점은 일본에서도 자연환경이 깨끗한 곳으로 유명한 곳들이고, 전망이 탁 트이며 공기가 좋은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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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장의 사진이 나가노현 시노노이선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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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의 차창, 홋카이도 네무로 본선의 카리카치고개 부근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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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진이 바로 비교적 날이 맑을 때의 히사츠선 야타케 고개 부근에서 본 풍경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면 정말 시원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3대 차창이라고 이름 붙여도 그리 이상할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난 뒤 그냥 그대로 난간에 기대어 이 풍경을 보았다. 사진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남겨둘 생각이었다. 사진은 사진대로 남겠지만.. 내 기억 속에 새겨진 풍경은 오랫동안 더 아름답게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역 정면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산기슭의 고지대에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야다케역의 역장 관사가 남아 있다. 1906년 6월 신문에서 관사건설이 진행 중이라고 게재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완성은 그보다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이곳에는 20호에 이르는 관사가 늘어서 있었다. 이 목조관사들은 일본 전국에서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메이지 시대의 철도 관사로서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3년 7월 1일에 국가의 등록 유형 문화재에 등록되었고 2019년에는 호텔로 리모델링되었다.

20190723_yatake02.jpg 리모델링된 호텔


잠시 후 다시 열차는 움직였다. 계속 이곳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는 일... 열차는 다음 역인 마사키역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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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도를 보면 내 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히토요시역을 출발해서 루프선과 스위치백이 있는 오 코바역을 들렀다가 다시 야타케역을 들르고, 다음 스위치백시스템이 있는 마사키역으로... 그리고 그다음 역이 이사부로 신페이호의 종착역인 요시마츠이다.


JR마사키역真幸駅은 미야자키 현에서 처음으로 생긴 역이며, 히사츠선에서 유일한 미야자키현의 역이다. (이 역이 있는 곳이 미야자키현 관할이다) 역의 이름에 행복 행자가 쓰여 있어 진정한 행복에 들어가는 통로라는 입장권등으로 인기가 있다는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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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구내에 설치된 행복의 종, 일본을 여행하면서 수없이 본 행복의 종, 후라노의 히노데 공원에서도, 네무로로 가는 길에 있는 해안가에서도 수없이 행복의 종을 울려봤지만.. 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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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것은 있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여행길에 나설 수 있고, 그 여행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것이 이런 종들을 울렸다고 해서 그리 된 것은 아니겠지만.. 행복이라면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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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다면 이런 무인역에 앉아서 편지라도 한 장 쓰련만...

마사키역1.jpg 2025년 6월 현재 이 역에는 3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이 마사키역은 히사츠선중에서 산의 선이라고 불리는 가파른 구간에 통과하기가 어려운 역 Z자형의 스위치백 구조로 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역의 이름과 반대로 이 역 주변에서 많은 재난들이 있었다.


1945년 8월 22일, 전쟁이 끝나고 다수의 재향 군인을 태운 열차가 마사키역과 요시마츠역 사이의 산신 제2터널 山神第二トンネル에 갇혀 있었다. 미군의 공습으로 가고시마 본선과 닛포본선의 주요 교량이 다 떨어져 나가 히사츠선이 유일한 운전 경로가 되어 수많은 이들이 이 열차에 탑승했고, 그 때문에 평소와 달리 추가 차량이 붙어서, 가뜩이나 추력이 약한 증기기관차가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가 멈춰서 버린 것이다.


열차의 앞부분은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연기가 나오는 부분은 터널안쪽에 있어 계속 연기가 터널 안의 객차로 뿜어나갔고, 열차의 지붕까지 있었던 이들은 그 연기를 참을 수가 없어 터널을 걸어 탈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기관사가 열차를 후진시키는 바람에 연이어 사람들을 치어버렸고 모두 53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객차의 지붕까지도 주렁주렁 올라탄 승객으로 초마원 열차인 데다 열량이 낮은 석탄, 정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기관차라는 악조건과 좁고 대피장소가 적은 터널, 승객에 대한 안내미비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한 사고이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이 문제였다. 결국 1963년에 이 참사에 희생된 군인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지고 해마다 8월 22일이면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재난은 1972년 7월 당시 엄청난 호우가 이 지역에 내려서 역의 뒷산 8부 능선부근이 붕괴되었고 그로 인한 토사가 쏟아져 내려 마사키역과 주변 마을을 집어삼켰다. 이 사고로 인해 4명이 사망했다. 당시 흘러내린 토사량이 어마어마해서 주변 1.5km까지 퍼져 있어서 유인역 시절에는 매일 역무원이 그 토사들을 치웠다고 한다. 이러한 애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마사키역을 뒤로하고 열차의 종점인 요시마츠를 향해 열차는 움직였다. 히토요시를 출발해서 요시마츠에 이르는 여정은 마치 1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요시마츠역.jpg 요시마츠역

100년이 넘은 목조역들, 낡은 역사에 깃든 사연, 역의 이름과 주변의 풍경, 이제는 시간 저 너머로 사라진듯한 풍경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내게 있어서는 행복한 여행이었다. 열차가 요시마츠역에 도착했다.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내가 타야 할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시마츠역에서 바꿔 탈 열차는 하야토노가제(하야토의 바람)라는 이름의 열차이다. 하야토노가제를 타고 요시마츠를 출발해서 하야토를 거쳐 가고시마에 도착하는 여정은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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