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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횡단 철도 여행

낭만의 히사츠선 여행

by 늘 담담하게


기차여행만큼 우리네 인생과 닮은게 어디 있을까? 목적지는 정해졌고, 그 여정의 도중에 수없이 지나치는 중간역들, 그 역에서 새로이 타고 내리는 사람들, 어떤 이와는 이야기도 나누고, 단순히 같은 열차를 타고 가는 이상의 관계도 맺지만, 어느새 그들은 또 다른 역들에서 내린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역에서 내려서 다른 기차를 기다리거나, 한참이나 그 역에서 머물기도 한다. 수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긴 것 같으면서도 길지 않은...기차여행.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혼자일때의 기차 여행은 깊은 외로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런 기차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기차여행이야말로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히토요시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그쳤다. 구마모토현에서 가고시마현의 경계인 쿠니미 산지를 통과해야 하는 히사츠선 여행을 앞두고 조금은 흥분된 상태였다.


20141204_093745.jpg 히사츠선 여행의 핵심, 이사부로산페이


사실 일본 철도여행을 시작할때부터 오랫동안 이 열차에 타보기를 기대해왔었다. 이 붉은색 열차의 이름은 이사부로 산페이いさぶろう・しんぺい이다. 원래는 히토요시와 요시마츠 구간을 운행하는 보통 열차이지만, 이후에는 관광열차의 기능을 했다. 1996년부터 운행한 이 열차는 사실 이름이 하나일것 같지만 히토요시에서 요시마츠로 갈때는 이사부로, 요시마츠에서 히토요시로 갈때에는 산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아래에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열차 이름은 히토요시-요시마츠 구간 건설 당시의 체신대신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郎))와 개업 당시의 철도원 총재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관동대지진으로 파괴된 도쿄의 재건계획을 했으며 남만주철도 총재를 지냈다.)에서 따왔다.


*주- 2025년 5월 현재 이 열차는 폐지가 되어 추억의 열차가 되어버렸다. 2022년부터 편성 중 양운전대 차량 1대가 후타츠보시 4047 개조에 차출되어 운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나머지 2대도 2024년 4월 26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새로운 관광열차 칸파치·이치로쿠에 차출되어 이사부로·신페이의 운행은 2023년 10월 4일부로 완전히 종료되었다.

竹下駅を通過するかんぱち・いちろく.jpg 칸파치 이치로쿠, 하카타-오이타 구간을 운행한다.


800px-JRK_140DC_Isaburou_Shinpei_inMasakiStation.jpg 이사부로 산페이호의 전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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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내부는 전부 큐슈산 원목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세련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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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의 열차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이 열차가 그냥 단순한 보통열차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보통열차이지만 보통열차가 아닌 열차, 그것이 바로 이사부로 산페이이다. 이런 열차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안들수가 없다. 철도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렇게 다양한 열차들이, 그리고 호사스럽기까지 한 열차들이 일본은 많다.



여기서 잠깐 야마가타 이사부로와 고토 신페이를 살짝 살펴보고 가자.

225px-Isaburo_Yamagata.jpg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 伊三郎 1858-1928)

메이지 유신의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죠슈번(야마구치현) 출신, 일본 군국주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사람이다. 그의 영향으로 일본은 군국주의화되었고 훗날 침략전쟁을 시작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야마가타 가문을 이어야 할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누나의 차남인 이사부로를 양자로 삼았다. 독일 유학 이후에 내무 관료로서 도쿠시마현, 미에현 지사, 지방국장, 내무 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1906년에 제1차 사이온지 내각에서 체신대신으로 입각하였다. 1908년에 체신대신을 사임한 이후에 귀족원의원에 선출되었다.. 1910년에는 조선통감부 부통감이 되었고 한일합방조약이후에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되었으며 중추원의장도 역임하였다. 1922년에 추밀원 고문관을 거쳐서을 거쳐서 1925년에 답례사로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파견되었다. 1996년부터 히사츠선에서 운행되었던 관광 열차 이사부로·신페이 호는 야마가타 이사부로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철도는 체신성의 관할이었는데 그가 체신대신에 재임하던 중에 히사츠 선이 건설되었고 야타케 제1터널의 편액을 그의 휘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그의 이력중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있다. 몹시 씁쓸한 일이다..)


640PX-1.JPG (고토 신페이後藤 新平 1857-1929 이와테현 출신으로 의사이며 관료, 정치가)

고토 신페이는 스카가와 의학교를 졸업하고 1881년 아이치현 병원장 겸 아이치 의학교장이 되었으며, 1883년에 내무성 위생국에 들어갔다. 독일 유학을 거쳐 1892년에 위생국장으로 승진하였다. 1898년 타이완 총독 고다마 겐타로에 의하여 타이완 총독부 민정국장(훗날 민정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의 경력중에 특이한 것은 보이스카우트 일본 연맹 초대 총장, 도쿄방송국 초대 총재등이다. 히사츠선 개설 당시 철도원 총재로 재임하고 있어 그의 이름을 열차명에 쓴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히토요시역에서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08분이었다. 히토요시역을 빠져나온 열차는 산악지역으로 들어서고 천천히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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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요시 역에서 출발한 뒤 17분쯤 지난 뒤 오코바역大畑駅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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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개업한 역이다. 창문만 최근에 다시 리뉴얼했을뿐 목조 역사 자체는 개업 당시 그대로이다. 100년이 넘은 역이 이렇게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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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내부와 외부에는 이곳에 찾아온 이들이 남기고 간 이들의 명함으로 빼곡한데, 이 곳에 명함을 남기면 출세를 한다고 설명하지만 그건 믿거나 말거나이다. (홋카이도 아바시리 부근의 기타하마역에도, 홋카이도 오비히로의 구 행복역에도 명함을 꽂고 온바 있지만 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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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 청춘 18티켓의 포스터에 등장하기도 했었다. 역의 이름은 예전에 이 부근에 커다란 화전이 있어서 그렇게 불리워졌다고 한다. 개업 당시 달리던 증기 기관차를 위해 마련된 신호소와 급수소의 역활이 컸다. 사실 지금도 역 주변에는 인가가 없고, 오코바 마을까지는 도보로 1시간 가까이 걸린다.

18-2004s.jpg?type=w2 2004년 청춘 18 깃푸 광고 포스터에 등장한 오코바역, 청춘18 포스터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쓸 예정이다.

히토요시역을 출발해서 4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연속적으로 경사면을 올라온 증기 기관차는이 역에서 급수를 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기관사들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터널에서 승객들도 손과 얼굴이 그을어져 있었기 때문에 승강장에있는 샘물 세면장에서 씻었다고 한다.

800px-Okoba-sta.jpg 승객들이 손과 얼굴을 씻은 세면장, 근대화 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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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남아 있는 물이 솟아나는 용수대, 그리고 물을 보관하던 급수탑, 남큐슈 근대화산업 유산군으로 지정되어 있다.)


히토요시역에서 오코바역까지 올라온 옛날의 기관차는 약 1톤의 석탄을 소비하고 분당 250리터의 물을 보일러에 공급했다고 한다. 이 역에서 잠시 휴식을 열차는 더 험한 산지에 있는 미타케역을 향해 출발하게 되는데 이 역에 스위치백이 있는 것은 경사 도중에 평평한 장소를 마련해 거기에 정거장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 히사츠선에 대해 설명했듯이 이 구간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스위치백과 루프방식의 선로가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오코바역이다.


이 오코바역에 정차한 이유는 바로 이 역이 일본 최초의 루프선 역이기 때문이다. 히사츠선의 여러 볼 거리 중 하나인 스위치백이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스위치백에 바로 루프 모양의 선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루프선이 끝나는 곳에는 다음 역인 야타케역이 있다.


여기서 먼저 루프선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고 가자. 루프선이란 산악지대를 지나는 철도 또는 도로의 구배를 극복하도록 만들어진 형태의 선로 또는 도로를 말한다. 철도에 적용하는 경우가 흔하며, 도로의 경우는 철도에 비해 매우 급한 구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도로에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철도인 경우에는 스위치백의 대안으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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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철도는 그 특성상 경사면에서 추진력이 약해지는데 추력이 강하지 못한 증기기관차라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산간 지역에 철도를 건설하는 경우에는 가파른 경사를 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철도의 창업기에서 제 2차세계대전직후 정도까지는 토목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교량및 긴 터널의 건설이 어려워 가급적 자연지형을 이용한 경로가 선정 되었다. 루프 선은 스위치백과 함께 함께 경사 완화로 효과적인 방법이며, 산간 지대를 관통하는 노선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루프 라인은 필연적으로 곡선이 많아 역간 거리도 길어진다. 따라서 이용면에서 불리하며, 선로 유지 보수의 번거로움도 심한 편이다. 그리하여 제 2 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한 토목 기술의 발달로 산간 지역의 교량 고가교와 장대 터널의 건설이 쉬워짐에 따라 당연하게 루프 라인을 채용하지 않아도 선로를 이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스위치백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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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기본적인 스위치백의 개념도이다. Switch-back. '뒤로 방향이 바뀐다'는 뜻은 미국식 영어로 영국식 영어로는 그냥 Zig-zag rail이라고 한다. 열차가 앞으로 일정량 전진했다가 도로 후진하며 다른쪽 선로로 경로를 바꿔 빠져나가는 구간을 칭한다. 주로 급경사 극복의 용도로 쓰였을 때 '스위치백'이란 용어를 쓰이는데 자동차와 달리 열차는 쇠로 된 레일 위에 쇠로 된 바퀴가 굴러가는 특성상 마찰력이 작아 그만큼 제동 거리가 길고 미끄러지기도 쉽다. 물론 최소 40톤이 넘어가는 차량 덕분에 평소에는 그걸 체감하지 못하지만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을 지날 때 위와 같은 이유로 제동이 잘 걸리지 않거나 크게 떨어져 바퀴가 헛도는 공전 현상이 잘 일어난다. 때문에 인클라인(케이블로 운행하는 철도, 도야마 알펜루트의 열차)을 제외하면 일반 열차가 가파른 산악 지형을 다니기엔 한계가 있지만, 만약 이 지형에 지그재그로 선로를 개설하면 앞으로 왔다 뒤로 가야 함으로써 몇몇 불편함이 생길지언정, 그만큼 경사도 완만해져 일반 열차가 다니기 힘든 지형에서도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해진다. 이제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을것 같은데 이 루프선과 스위치백을 오코바역에서 볼수 있다. 항공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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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이 히토요시 방향이다. 왼쪽 상단의 터널을 빠져나온 열차는 오코바역으로 들어왔다가 스위치백을 통해 왼쪽 하단부분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루프선과 스위치백 시스템을 살려볼수 있다. 이 구간에서 운전사는 앞에서 뒤로 다시 앞으로 오가며 열차를 진행시킨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고 한국에서도 사라진 이 스위치백을 일본에서 보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매우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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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역인 야타케역 방향으로 올라섰을때, 잠시 속도를 줄여서 오코바역을 보게 해주었다. 렌즈를 당겨 촬영한 오코바역의 모습이다. 루프선과 스위치백을 좀더 자세히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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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느낌은 뭔가를 해낸 것 같은 엉뚱한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그저 여행자에 불과하고 앞뒤를 바삐 오가는 열차 운전사를 재미 있게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렇게 해서 가파른 산을 넘어가고 있었기에 그 여정에 동참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런 말도 안되는 느낌을 가진 것이다. 이제 열차는 이 노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야타케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때 코레일에 근무하는 많은 직원 분들이 이 히사츠선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철도 여행 매니아라면 히사츠선을 꼭 여행봐야 할 철도 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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