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하코다테
하코다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은 도시예요, 당신도 전에 하코다테 여행을 가봤으니 잘 알고 있겠죠? 그때가 언제였던가요? 꽤 오래전이었을 거예요. 그렇죠? 꼼꼼하게 돌아보는 게 당신의 여행 스타일인 것 같은데, 음, 그때와 비교해 보면 변한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꽤 있어요.
변한 것이라면 하코다테 역전부근에 새로운 상업건물들이 들어섰고, 몇몇 가게들과 호텔이 새로 들어섰거나 이름이 바뀐 거예요. 변하지 않은 거라면 여전히 운행되는 전차, 하코다테야마 전망대와 야경, 모토마치의 교회들, 럭키 삐에로의 햄버거, 고토켄의 카레, 그리고 아주 오래된 카페와 거리 풍경..
아, 당신은 카레를 좋아하죠? 그리고 카레도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당신이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는 그 사진들을 난 좋아하거든요. 그래요. 하코다테의 카레는 꼭 추천하고 싶어요. 겨울 모토마치는 대부분이 언덕인지라 많이 미끄러워요, 그래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야 해요. 하치만자카에서 항구를 바라보다 왼쪽 길로 조금만 걸으세요. 눈이 쌓인 길 왼쪽에 서양식 건물이 한눈에 들어올 거예요, 그게 바로 하코다테 공회당이에요.
여름이라면 이런 모습이에요. 그런데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달라지겠죠?
눈이 그친 뒤, 하코다테 공회당 앞에 서면 당신의 입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올 거예요. 미끄러운 길을 걸어서 조금 힘들겠지만 공회당의 오른편으로 올라가 보세요. 길보다 높고, 겨울이라 올라가기가 쉽지 않을 건데요. 공회당은 앞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공회당의 오른편 큰 나무 부근에서 보는 게 더 예뻐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그렇게 생각해요.
이를 테면 6월 초여름은 이런 풍경이에요. 하코다테 공회당은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이나 뒷면으로 가서 봐도 멋진 건물이에요. 그러면 가을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요?
늦가을의 풍경은 이런 모습이에요. 예쁘지 않나요? 여우가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감성적이지 않나요?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면 그 풍경은 또다시 바뀌어요. 난 같은 자리에서 본 하코다테 공회당의 풍경을 잊지 못해요. 당신은 어땠어요? 이미 어긋나 버렸지만 그 순간에 당신이 함께 있었더라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겨울밤에 하코다테 공회당 앞은 조용하답니다. 눈이 내리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공기는 차갑고 손이 시려오지만, 그 풍경 속에 한참 동안 서 있었어요.
다시 눈이 내리고 있어요. 하코다테 공회당 앞은 모토마치 공원이에요. 모토마치 공원에서 보는 석양도 꽤 괜찮긴 한데, 겨울밤에 그곳까지 돌아보기는 힘들어요. 잠시 눈이 그친 뒤, 하코다테 공회당을 보았을 때, 그때의 느낌이란...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고, 하얀 눈과 노란색이 왜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문득 여름날에 저 베란다에서 하코다테 항구 쪽을 내려다보았던 때가 떠오르네요. 저기에 올라가면 하코다테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거든요. 어떤 모습이냐면요..
이렇게요, 그런데 하코다테 공회당은 조명이 켜져 있을 때, 바깥에서 볼 때가 더 예뻐요. 뒤편에서 본모습도 난 좋았거든요
여름날에 공회당 복도에서 보면요, 옛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거든요.
자, 이제 모토마치의 교회들을 보러 가야 할 때예요. 이쯤 되면 바람도 제법 불 테고, 춥다는 느낌도 강해질 거예요.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어보자고요..
하리스토 정교회예요. 이 교회가 언제 누가 지어졌는지 그런 것을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세요. 사진 찍는 것 잊지 말구요. 똑같은 자리에서 보는 밤과 아침의 풍경도 달라요.
여름이라면 이런 모습이에요.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이에요.
겨울 아침, 정교회
거기서 조금 더 내려오면 카톨릭 모토마치 교회 앞이에요, 이 언덕길이 다이산자카예요. 눈이 다시 내리네요.
겨울에, 눈 내리는 날에 이 언덕에 서면, 하치만자카에서 느껴지던 그 감정이 떠올라요, 언덕길 아래,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만 같은.... 뭐 현실에서는 아무도 없지만요
다른 계절에 가면 이런 모습이에요. 이곳은 말이에요, 늦가을의 풍경도 괜찮아요.
있잖아요, 다이산자카는 가을이나 겨울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혹시라도 가을 홋카이도를 가게 된다면 가을날의 청량한 공기 속에 이 언덕을 걸어보세요.
여름이라면 이런 풍경이에요. 왜 이렇게 하코다테에 가면 같은 자리에서 각각 다른 계절의 풍경을 보게 되는 걸까요?
눈이 내리는 날, 하리스토 정교회, 성 요한 교회, 카톨릭 모토마치 교회를 돌아보는, 나는 이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눈이 내렸다가 그치고 또 내리고,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요.
아, 잉글랜드 영사관도 빼놓을 수가 없어요, 봄도 괜찮고, 초여름이면 이 영사관에 장미가 피어나고, 한 여름이면 수국이 만발해요.
잉글랜드 영사관은 장미가 피는 6월 여름과 눈이 내린 겨울이 가장 예쁜 것 같아요.
자, 겨울 모토마치 언덕에서 내려와 베이에리어 반대편 쪽으로 가서 보면 크리스마트리가 더 예쁘게 보여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더 멋질 거예요. 물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아, 하코다테야마 전망대에서 보는 겨울 하코다테 시가지와 고료카쿠 전망대에서 보는 고료카쿠의 겨울 풍경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맞아요, 꼭 가봐야 돼요. 다만 하코다테야마에 올라갈 때는 눈이 안 오기를 기도하세요, 눈보라가 치면 야경은 그야말로 꽝이에요.
그리고 눈 오는 날 전차를 타면요,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 있죠, 저기 눈보라를 뚫고 전차가 오네요. 당신도 탔었던 저 전차.. 주지가이에서 전차를 탄 뒤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예전 그 사람도 이 전차를 탔을 텐데.. 그 사람은 어떤 풍경을 보았던 걸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 풍경을 그 사람도 보았을까?
전차 안으로 들어서면서 모자와 장갑의 눈을 털어내며, 눈 내리는 거리 풍경을 보았을 때, 당신 생각을 더 하게 되었어요
다시 하코다테 역 앞으로 돌아오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아주 오래전 눈이 가득 내리던 날, 이 풍경을 보다가 삿포로로 가는 야간열차 하마나스를 탔었지요. 이제는 사라진, 지금의 여행자들은 알지 못하는 전설 같은 야간열차 하마나스...
수도원도 빼놓을 수 없지요. 여자 수도원만 가도 괜찮은 겨울 풍경을 볼 수 있어요.
겨울 남자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에요. 여기를 가게 되면 밤에 가야 해요.
있잖아요, 비록 우리가 함께 겨울 하코다테를 갈 일은 없겠지만, 당신은 크리스마스 무렵의 하코다테를, 혹은 한 겨울의 하코다테를 꼬옥 가봤으면 해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하코다테의 풍경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에요. 하코다테는 한 계절에만 가볼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풍경을 보는데 왜 이리도 다른 감성이 느껴지는지..
그때에 당신도 이 언덕에 서서 와 예쁘다고 말할 거예요. 함께 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내가 그동안 수없이 보았던 하코다테의 겨울 풍경을 당신도 꼭 볼 수 있었으면... 그래서 당신의 추억에도 겨울 하코다테의 따뜻한 풍경들이 예쁜 추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랄게요... 그게 내 진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