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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작품 해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열세 번째 이야기

by 늘 담담하게

히로키, 타쿠야, 그리고 사유리와 함께 했던 그 여름날,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여름날의 마지막에 히로키가 말한다. "그로부터 3년, 그날을 마지막으로 난 사와타리를 만나지 못했다."


그 장면 이후 3년 후라는 자막이 올라가고, 긴장이 높아가는 츠가루 해협 위를 무인 정찰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이 정찰기는 계속 비행을 해가고, 마침내 멀리 에조 중앙부에 있는 탑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같은 해 아오모리 시내라는 자막이 나온다.

미 NSA 소속 아오모리 군학교 전시하 특수 정보처리 연구실...

이 연구실에 미군으로 보이는 두 명의 장교가 나타난다.

여기서 연구실장으로 토미사와 츠네오가 등장한다. 그는 오카베와 오래전부터 친구였다.

토미사와 츠네오- 손님이 오셨네만 계속하게나


이때 앞에 있던 세 명의 연구원 중 한 명의 가슴에 달려 있는 명찰이 보이고, 거기에 시라카와 타쿠야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렇다. 타쿠야는 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타쿠야는 좀 더 지적이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토미사와 츠네오-1st 페이즈 종료. 다음으로 넘어간다.

시라카와 타쿠야 -예, 다음 여과 스테이지 2nd 페이즈, 개시합니다.



연달아 이어지는 장면들은 시라카와 타쿠야가 중심이 되어 평행우주, 분기 우주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면서 그 세계와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보이지만 결국 그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이 복잡한 과정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위키에서 설명하는 이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타쿠야의 설명, 오카베와 연구소장 토미자와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탑의 정체는 유니온이 평행우주에 관한 실험을 하던 중 폭주한 부산물로서, 평행우주의 물질과 현실의 물질이 치환된 것이다. 탑의 주변부도 크레이터와 같이 평행우주의 물질로 치환되어 있었는데, 주변부 이외에서 더 이상 치환이 되지 않는 이유는 평행우주의 정보가 탑이 아니라 기면증으로 잠들어 있던 사유리의 꿈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유리가 꿈에서 깨면 순식간에 지구 전체가 평행우주로 치환된다."


자, 여기서 평행우주라는 것부터 알고 가자.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세 번째 이야기에서 이미 설명한 평행우주를 다시 보자.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 또는 패러렐 월드( parallel world)는 평행 우주설에 의한 가상의 우주 모형으로, 같은 모습을 가지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수없이 많은 우주다. 어떤 우주(세계)에서 분기하여 그에 병행해 존재하는 또 다른 우주(세계)를 의미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 상에 위치한 다른 세계이다. 즉, '내가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는 다중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다중 우주는 여러 개의 우주가 있다는 이론이고, 평행우주는 동일한 차원의 우주만을 의미한다. 차원은 같지만 다른 세계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평행우주는 좀 다른 의미로 활용된다. 즉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worlds)는 작품의 중심 주제 중 하나로, 단순한 SF적 설정이 아니라 "기억, 꿈, 그리고 ‘다른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과학적 설정으로서의 평행우주

탑의 실험이 진행되면 이 세계의 물질 구조가 다른 세계의 구조로 치환되며, 점차 현실이 "다른 세계"로 대체되어 간다. 즉, ‘평행우주 간 간섭’이 일어나면 이 세계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험한 상태이다..

이는 물리학적인 의미의 평행세계라기보다, 다른 가능성이 침식해 오는 세계를 그린 SF적 장치이다. 그렇기에 본편 애니에서 미국은 에조의 탑을 위협의 수단 혹은 병기로 인식하고 있다.


(2) 상징적 의미로서의 평행우주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인터뷰에서 이 세계 설정을 “꿈과 현실, 기억과 망각의 경계”로 해석했다. 그러니까 히로키와 타쿠야가 사유리를 생각하며 꾸는 꿈속의 세계, 그리고 사유리가 탑과 연결된 채로 머무는 ‘잠의 세계’, 이 모두가 ‘다른 세계’, 즉 평행우주의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이 작품 속의 평행우주는 “만나지 못한 현실, 이루지 못한 약속, 잃어버린 기억의 세계”를 의미한다. 현실의 세계와 꿈의 세계(또는 다른 가능성의 세계)는 나란히 존재하지만, 서로 닿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 “구름의 저편(이룰 수 없는 곳)”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또 하나 본편 애니에서 평행우주는 단순히 과학의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 닿을 수 없는 관계”의 은유적 표현이다. 현실 세계의 히로키와 타쿠야는 성장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며 멀어지고, 사유리는 다른 차원(평행세계)에 갇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꿈과 기억 속에서 서로를 계속 찾는다. 즉, “평행우주”는 ‘서로의 마음이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 그러나 실현되지 못한 세계를 뜻한다.


결말 부분에서 히로키가 사유리를 깨우기 위해 탑을 파괴하는 장면은 ‘평행세계(꿈, 환상, 다른 가능성)’를 버리고, 현실의 세계—즉, 지금 이 순간의 “약속된 장소”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상징한다. 그 순간, 사유리는 깨어나지만 "무언가를 잊어버렸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른 세계(평행우주)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것, 즉 현실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결말부에 가서 다시 한번 이야기하기로 하자.


다음 장면에서 등장하는 여성이 이전 글에서 설명한 바 있는 카사하라 마키이다. 토미사와 연구실에서 뇌과학을 연구하는 젊은 연구원으로 연하의 타쿠야에 마음을 두고 있는 상태이다. (다시 앞부분을 되돌아 가서 보자. 중학교 내내 타쿠야는 수많은 여학생들로부터 고백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토미사와 - 아 마키 양, 난 내일부터 도쿄 출장 가니까

마키 - 연구 보고회였죠?

토미사와 - 그 일도 있지만 그 열쇠를 찾은 모양이야

마키 - 열쇠라면 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토미사와 - 아, 자네들 뇌과학팀이 바빠지겠구먼


여기서 열쇠(?)라는 부분에 밑줄 쫘악 그려두자. 그 열쇠가 어떤 것인지는 곧 알수 있다.


마키-요새 군인들이 자주 오네

타쿠야 -슈츠를 보니 아마 NSA에서 나온 걸 겁니다.

마키 -NSA?

타쿠야 - 국가 안전 보장국

마키 - 요즘 테러 소문이 많더라니


마키 -오늘은 잘 됐어?

타쿠야- 아직 멀었습니다. 겨우 눈에 보이는 정도의 치환이 전부라.. 유니온의 탑엔 발끝에도 못 미쳐요.

마키 - 그거야 어쩔 수 없잖아. 원체 기초 물리부터 크게 뒤쳐졌으니.. 에조의 그 고공사진 나도 봤어.

마키가 말한 에조의 고공사진

타쿠야 - 알 수 없는 건 왜 탑 2KM 반경에 머물러 있느냐는 겁니다. 공격이 목적이라면 그래선 소용없겠고 말이죠.


마키 -무슨 사고로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그런 실험 시설인 걸까?


타쿠야 -어쩌면 이상 변환 자체가 설계자도 의도 못한 기능이 폭주한 건지. 토미사와 교수님은 탑의 기능을 억제하는 어떤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보고 있어요


자, 이렇게 타쿠야와 마키의 대화를 언급하는 것은 이 대화 내용에 중요한 것들이 역시 숨어 있기 때문이다. 왜 탑의 영향이 2KM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무슨 사고로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건지 라는 말에 밑줄을 역시 그어두자.


마키 - 있지. 시라카와 내일은 뭐 해? 고등학교도 쉬지?

타쿠야 - 조금 조사해 볼 게 있어서요.

마키 - 도서관에 가?

타쿠야- 아뇨 아는 사람 공장에 좀.




오카베 - 구경? 여기가 무슨 견학 시설인 줄 아냐? 어? 뭐라고?


오카베 -여자? 몇 살인데?

타쿠야 - 알게 뭐예요. 그래도 뭐 예뻐요, 아마도...

오카베 - 좋았어. 그럼 기다리고 있으마.


마키는 데이트라도 할 생각으로 타쿠야에게 내일 뭘 할 거냐고 물었지만, 타쿠야는 오카베의 공장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키는 타쿠야와 함께 오카베의 공장으로 가겠다고 한다. 3년 전 사유리가 그러했듯이..


오카베 타쿠야와 전화를 끊은 직후 장면에서 오카베의 곁으로 미군으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오고 오카베는 그를 공장 안으로 안내한다. 이 역시 후반부의 복선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다음날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마키 -안테나 한번 엄청난데요?

오카베 - 헤헤헤 약간 비합법적인 것들도 섞여 있지만요. 이거 꽤 재미있는 데랑도 이어져 있다고요.


여기서 오카베의 말을 잘 살펴보면 비합법적인 것들은 그가 이끄는 테러조직인 월터 해방전신을 말하는 것이며 꽤 재미있는 데랑 이라는 것은 비밀리에 미군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 언급하지만 이 고양이의 이름은 쵸비이고, 다음 작품인 초속 5센티미터에도 등장한다.

고양이 쵸비와 어울리는 타쿠야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키, 애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오카베 - 그럼 마키 양은 뇌 연구가 전문이신가요?


마키 - 네 기억이나 수면, 꿈이라든가요.

공장 직원 - 타쿠야랑 같은 연구실 이랬죠? 너 탑 연구하는 거 아니었냐?

타쿠야 -네 제가 연구하는 부분은 탑이고요. 설명드리기 좀 어렵네요. 둘 다 평행세계에 대한 연구죠


오카베 - 평행세계?


마키 - 음 사람이 밤에 꿈을 꾸듯이 이 우주도 꿈을 꾸거든요. 이런 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이 세상이 꿈속에 숨기고 있는데 우린 그걸 평행세계 또는 분기 우주라고 해요. 제 연구는 그 평행세계가 사람의 뇌나 꿈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거예요. 유니온의 그 탑도 같은 걸 관측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해요 기술적으로 평행세계 관측이 가능해진 데다 생물의 뇌도 태고적부터 무의식적으로 그걸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양자 레벨로서 뇌 속을 오가는 분기 우주의 정보가 어쩌면 사람의 예감이나 예지의 원천일 수도 있겠죠. 제 연구는 그런 거예요.


오카베 -에헤, 우주가 꿈을 꾼다니 왠지 로맨틱한데요?

직원, 타쿠야-그게 로맨틱해요?


오카베 -근데 마키양도 참 대단하시군요. 이렇게도 젊은 신데도 정부 사문 기관의 연구원이라니.

마키 - 아니 뭘요. 그렇지만 저 탑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보람이 있어요(이 말에 타쿠야는 놀란다.)

오카베 -저도 그래요, 실은 무척 좋아했죠.

마키 - 그렇지만 정말 대단한 건 시라카와랍니다. 최연소 외부 연구원에 최고 노력파거든요. 전부터 멋지다고 느끼는 중이에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연정을 표현할 줄이야...)

타쿠야- 아, 아뇨. 제가 뭘요


마키 -저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죄송해요 왠지 저 혼자만 먹은 것 같네요

오카베 -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오카베 - 타쿠야, 시내로 가냐?

타쿠야 - 예. 마키상 데려다주고요

오카베 - 나도 태워주라.

마키, 타쿠야 -네에?

타쿠야 - 알았어요


자, 마키와 오카베, 그리고 타쿠야의 대화 속에서 마키가 타쿠야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마키가 탑을 좋아한다는 것은 타쿠야도 처음 듣는 말이고, 오카베가 탑을 무척 좋아했다는 말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소설판에서 오카베가 탑에 대해서 말한 것을 다시 되돌아보자.


요 25년 동안 저 탑은 일본인의 일상 풍경에 동화했다. 탑은 온갖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어. 국가의 상징, 전쟁의 상징, 민족의 상징. 혹은 절망, 혹은 동경, 어떤 상징인지는 세대에 따라 다르고 입장에 따라서도 달라지지.. 그러나 공통된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누구나 저것을 손이 닿을 수 없는 것...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야... 탑이 있는 한 이 나라는 분단된 채로 남아 있을 테지, 분단된 가족은 분단된 채로 살아갈 테고...."


지금까지 등장한 히로키, 타쿠야, 사유리, 오카베, 그리고 마키까지 한결같이 탑에 대해 동경하거나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탑은 세대에 따라 다르고 입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오카베의 말은 각자 다른 시선으로 탑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 소녀 혹은 20대, 그리고 장년 세대인 오카베까지 탑에 대한 감정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로키, 타쿠야, 사유리는 탑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마키는 단순한 호감에 머물러 있었으며 오카베는 매우 현실적인 절망의 대상으로, 그리고 분단된 가족(자신의 아내가 유니온에 있기 때문에)의 처지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본편 애니는 중반부를 지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사유리가 사라진 그 여름날과 도쿄로 떠난 히로키에 대해, 그리고 사유리가 어떻게 3년을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