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한번째 이야기
저녁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 뒤이어 뉴스화면이 나오고, 긴급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캐스터의 방송 내용이 흘러나온다.
"지난 밤부터 금일 새벽에 걸쳐 츠가루 해협에서 42.15선까지의 완충지역에 걸쳐 미일군과 유니온군의 소규모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그에 대해 경시청은 국내 월터 해방전선 등 테러 조직에 의한 유니온 대사관 테러 행동을 경계하기 위해 ...."
이 뉴스를 들으며 신문을 읽고 있는 오카베, 그는 미국과 일본, 유니온 사이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남북의 정세는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타쿠야와 히로키의 벨라실러 제작은 계속되고 있었다.
오카베 -그야 너네들이 연료든 뭐든 돈만 내면 해준다지만 그래도 제트 원료는 비싸다구 ....그냥 레시프로나 초전동 모터로 하지 그래? 나머진 알지?
타쿠야, 히로키 - 네
오카베 - 그럼 잘 해봐
잠시 뜸을 들이던 오카베가 다시 말한다.
오카베 -근데 대체 왜 일부러 제트 엔진을 쓰려는 건데?
타쿠야, 히로키- 멋있잖아요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타쿠야, 히로키 - 겨우 그거야?
타쿠야 - 아니, 잠깐 다른 이유도 많았잖아
히로키 -아...그게 맞아...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타쿠야, 히로키 -모처럼 주웠으니까
타쿠야, 히로키 -그게 아니잖아
히로키 - 뭐였더라 그거 이중엔진으로 한 이유..좀 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구
타쿠야 - 아 생각났어
타쿠야,히로키 -변형시켜 보고 싶어서
타쿠야 히로키 - 그것도 아니잖아
타쿠야와 히로키의 이 어이없는 개그를 보다 못한 오카베가 일어나며 말한다.
오카베-뭐든 좋다만 니들 죽지 말거라. 나 귀찮다. 참 너네들 여름방학 되면 꼭 매일 나와라
여기서 오카베가 죽지 말거라 라는 말은 앞서 언급한대로 오카베는 유니온과 미일 사이에 긴장이 높아가고 이것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 에조의 거대한 탑으로 벨라실러를 타고 가려는 두 소년에게 일종의 경고를 한 셈이다.
이미 세번째 이야기에서 설명했던대로, 우뚝 솟은 탑으로 가겠다는 두 소년의 낭만적인 소망에 대해 좀더 현실적인 어른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오카베의 입장에서 이런 염려는 당연한 것이다. 오카베는 과거 자신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것처럼 똑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두 소년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었지만 앞서 히로키의 독백에서 보듯 두 소년의 평화로운 일상을 둘러싼 세상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어 여름방학이 곧 시작된다는 칠판의 글씨가 보인다. 이 날은 7월 18일이고, 앞으로 여름방학까지는 6일 남았다는 낙서, 그리고 여름 방학은 7월 24일부터 8월 12일으로 쓰여져 있다.
그리고 음악실에 모인 세 사람, 이 날 히로키와 타쿠야는 사유리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싶어 했다.
사유리 -저기 나 그다지 잘 못해
타쿠야 - 괜찮아. 이런 거 바로 앞에서 본 적이 없거든. 들려줘
히로키 - 나도 듣고 싶어
이 장면을 왜 집어 넣었을까? 이 음악실에서 사유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히로키와 타쿠야가 듣고 있는 이 평화로운 풍경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세 사람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따스한 여름날의 추억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 명이 함께 했던 행복한 시절의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나온 음악은 ost의 9번 곡 사유리의 선율 サユリの旋律 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Dg2rhLnTeY&list=PLu75ZRVqpqU6H9cX7ArfWwj8t8y6CfAok&index=9
이 작품은 수차례 언급했듯이 구성이나 이야기 전개에 있어 비판할 점들이 많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후 작품들을 포함해서 이 처럼 사춘기 시절의 한 때를 애틋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시절을 대부분 잊어가게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시절에 느꼈던 애틋한 감정들 혹은 아주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던 그 일상들이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 다시 되돌아보면 정말 소중했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사유리의 선율을 따라 작품의 시선은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교정으로 이끌어간다. 오래된 목조 교사, 삐걱거리는 복도를 지나는 여학생들, 한가로운 오후, 강당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 시청각실과 음악실 등의 열쇠들, 그리고 즐거운 하교길, 기차안에서 사소한 대화들..
물론 그 시절을 너무 낭만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나 하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의 감성은 사춘기 시절에 만난 세 사람의 우정,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다섯번째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했던 촬영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는 중학교는 사실 나가노현 우에다시에 있었던 구 니시시오다니 소학교旧西塩田小学校이다. 이 학교는 1996년에 폐교가 되었지만 오래된 목조 교사이었기에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들이 지금도 이 학교를 방문한다.
2025년 현재 이 학교를 방문할때는 반드시 우에다시에 사전 방문 신청을 해야 하고, 애니에 등장하는 옛 교사 건물은 안전 문제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최근 이 학교를 방문했던 이웃 블로거가 지난 4월에 가서 촬영했던 사진들을 보내주셨다. 그 분은 9년전 내가 쓴 글을 읽고 이 학교를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9년만에 다녀왔다고 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해석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사진들이 이웃 블로거가 보내주신 사진들이다.
두 소년이 이야기를 나누던 수돗가는 이렇게 남아 있다. 애니상에 나왔던 모습은 이제 볼수가 없다.
타쿠야와 히로키가 우유를 마시는 장면의 배경이 되었던 수돗가
옛 수돗가 모습
현재 구 소학교 건물은 이후 개교한 사쿠라 국제 고등학교 내에 있다.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