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기억, 심야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과 DJ, 엽서로 보내는 사연과 신청곡 그리고 아름다운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 백혈병... 그리고 영원한 이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멜로 영화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한데 모아 놓은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Little DJ〜小さな恋の物語(2007년 개봉, 리틀 디제이, 작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2007년도에 발매된 오니츠카 타다시(鬼塚忠 1965- )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소설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다. 원작과 다른 점은 원작은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영화에서는 중학생이 주인공이고 배경도 원작은 요코스카이지만 영화는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순애보 영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같은 줄기의 영화로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일본 영화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나가타 고토가 감독을 맡은 이 영화에 당시 차세대 주연배우로 주목받고 잇던 카미키 류노스케神木 隆之介와 후쿠다 마유코福田麻由子가 각각 중학교 1학년의 남학생과 중학교 2학년의 여학생으로 분해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와 같은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펼쳐 나간다.
(주인공 타로역의 카미키 류노스케, 타마키역의 후쿠다 마유코)
카미키 류노스케는 애니 너의 이름의 남자 주인공 성우 역할을 했고, 후쿠다 마유코는 일드 백야행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청곡이나 사연이 담긴 엽서 한 장 오지 않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PD 타마키. 그녀는 청취율 문제로 한 달간 휴가를 가지게 되면서 자신에게 라디오 PD의 꿈을, 라디오의 재미를 알게 해 준 한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77년 중학교 1학년 생 타카노 타로는 야구와 야구 중계방송을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성실한 아빠와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에 무엇하나 부러울 게 없었던 이 소년은 야구경기를 하다 갑자기 쓰러지게 되어 이모가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게 된다. 검진결과 내려진 그의 병명은 백혈병.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충격을 준다.
그렇게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지만 그의 부모는 그 사실을 숨기고 타로는 그 병원에서 입원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입원생활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삶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
우연찮게 병원장이 점심시간에 하는 병원 내 방송을 맡아.. 그는 DJ로서 음악을 틀어주고 입원환자들의 사연을 받아 방송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뮤직익스프레스를 흉내 내어 이름 지은 사운드익스프레스란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울한 병원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꿔버렸고.. 환자들과 의료진 또한 그의 방송을 기대하게 되는데 어느 날 교통사고로 입원한 1년 연상의 중학생 우미노 타마키를 만나게 된다.
그의 가슴에도... 그녀의 가슴에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픈 사랑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
한 살 연상의 아름다운 소녀... 우미노 타마키.... 그녀만 보면 가슴이 떨리는데... 저 나이 때는 왜 그렇게 연상의 여학생에게만 마음이 끌렸던 걸까?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고백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같은 병실의 스테츠키(배우 마츠시게 유타카, 고독한 미식가의 그분)는 어느 날 밤 그에게 말한다.
"어떤 여자한테 진심으로 반했어.. 그 뒤로 뭘 해도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서... 일 끝나고 굴에서 나오잖아.. 밤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워.. 그러면 마음은 괜히 슬퍼져서 오늘 밤처럼 잠 못 들고 했어... 쉬는 날 만나게 되면 좋아한다고 고백하려고 했어"
젊은 시절.. 도야마현의 쿠로베 협곡을 막는 댐공사에 참가했던 스테츠키는 인부들을 대상으로 술과 몸을 파는 창녀였던 한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했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어린 타로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고백했어요?"
"아니..."
"뭐예요?"
"죽었어... 심장병으로.. 내가 만나러 가지 못하는 사이에....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말해.. 후회한다. 남자란 말이야... 좋아하는 여자는 못 잊게 되어 있어.. 잊는데 3년은 걸리지...."
"스테츠키상도요?"
"바보.. 난 20년이야..."
"그렇게까지 오래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근데 아냐..."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자였어"
"목소리?"
"목소리라는 건 언제까지고 남는 거야...
그녀 앞에 서면 언제나 말문이 막히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가고... 타마키는 퇴원해 버리고 그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이제 서서히 자신의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게 된 소년.
그는 어느 날 문병 온 타마키와 함께 생의 마지막 데이트를 감행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보러 간 영화 라스트 콘서트... 영화 속의 주인공 스텔라도, 그가 앓고 있는 백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본 타로는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날의 그 행복했던 외출은 위태롭기만 했던 그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게 하고 갑자기 쏟아진 비로 병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냈던 그는 결국 쓰러지고 만다. 병원으로 실려온 그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타로의 아버지는 문득 아들의 옷 속에 끼워져 있던 편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조심스럽게 열어본 그 편지... 비로 인해 잉크가 번져 버린 그 편지에 담긴 사연은.....
"잘 있나요? 난 잘 있어요... 학교는 어때요? 타마키가 3학년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생이 되어도... 가끔은 나를 떠올려 주세요... 나는 타마키를 잊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타마키도 나를 잊지 말아 줘요...."
죽음을 눈앞에 둔 소년의 안타까운 마음... 사랑하는 이에게서 잊히지 않고 싶은 그 절절함에 그의 아버지는 소리 죽여 흐느낀다. 혼수상태를 오가던 소년은 잠시 기력을 되찾고 그는 온 힘을 다해 마지막 고별 방송을 한다. 그를 아껴주던 의료진과.. 그의 부모... 그리고 그의 삶에.... 그리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타마키에 대한 감정을 마침내 고백하게 된다.
"저는 우미노 타마키를 좋아합니다. 계속 좋아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입니다."
그의 가슴 아픈 고백에 그녀의 대답은..........................
바로 첫 키스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신청곡을 하나 말하는데... 연하의 남자친구라는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곡은 끝내 방송되지 못하고 만다... 그 날밤... 그의 상태는 갑작스럽게 악화되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회상에서 돌아온 타마키는 타로의 기일에 타로의 집을 방문한다.
그때까지도 모든 게 그대로 남아있던 타로의 방에 들어간 타마키는... 우연히 그 연하의 남자친구라는 노래가 담긴 레코드판을 주워 들게 되는데... 그 레코드와 함께 있었던 것은 타로의 엽서.... 그 엽서를 읽어 내려간 타마키는 울음을 쏟아내고야 만다.
그 엽서는 바로 타로가 죽던 그날밤... 그녀가 말한 곡을 그녀와 그가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뮤직익스프레스로 사연을 적어 신청했던 엽서였다.
타마키가 신청했으나 끝내 틀어주지 못한 노래, 그날밤 타로는 온 힘을 다해 신청엽서를 썼고 라디오 익스프레스에서 그 노래를 틀어주기 바랐다. 방송국으로 되돌아간 그녀는 15년 전의 DJ를 찾아내어 15년 전 타로가 자신을 위해 보냈던 그 사연을 첫 번째로 방송으로 내 보내게 된다.
""그럼 바로 첫 리퀘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실로 15년의 시간을 넘어 어떤 남자아이의 리퀘스트입니다. 오 자키상. 안녕하세요 저는 DJ를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신청한 곡을 제 방송에서 틀고 싶습니다만 조금 사정이 생겨서 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분합니다. 그녀는 매일 오자키상의 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어리광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부디 제 대신 그녀의 신청곡을 틀어주시면 안 될까요? 평생의 소원입니다. "
15년 만에 타로의 안타까운 사연과 사랑은 그녀에게 다시 전달되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2006년 9월에서 11월 사이 하코다테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하코다테의 가을 풍경들이 화면에 가득 펼쳐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하코다테를 살펴보면 영화에서 주인공 타로가 입원했던 다카자키 기념병원... 이곳은 하코다테시 북동부지역 해안가에 있는 미나미카야베 시립병원에서 촬영했다.
실제의 병원 모습이다.
영화에서 타로에게 죽음이 뭔지를 처음 일깨워준 유우키상의 장례식 장면을 찍은 곳은 바로 하코다테시 외국인 묘지 근처였다.
역시 실제의 모습이다. 하코다테 외국인 묘지는 1854년에 하코다테로 들어온 미국 해군 중 수병 2명이 사망하여 매장한 것이 이 묘지의 시작이었다. 이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곳에 묻히는데 사망자의 국적 또는 신앙에 따라 구획이 나뉘어 있다.
타로와 타마키가 함께 했던 생애 마지막 데이트.. 그들이 영화 라스트 콘서트를 보았던 곳은 하코다테 공민회관이다.
하코다테 공민회관은 1947년에 건축되었고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하코다테 시의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영화에서 타로가 올려다보는 곳이 바로 하코다테야마의 전망대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로프웨이를 타고 하코다테야마 전망대에 올라간다.
하코다테야마 전망대에 오르게 되면 보게 되는 하코다테의 야경....
그런데 두 사람이 비를 피해 밤을 보낸 곳은 하코다테 야마 뒤쪽에 있는 포대이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후... 막부군과 신정부군과의 전쟁이 벌어졌던 하코다테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타마키가 떠오르는 태양을 타로에게 말해주며 서 있던 장면... 하코다테야마의 뒤편 쪽이다... 이곳은...
실제의 이곳의 모습이다. 멀리 하코다테시의 모습이 보인다.
타로와 타마키가 영화관으로 가던 장면에 등장한 하치만자카... 하코다테의 수많은 언덕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언덕이다.
이 하치만 자카의 겨울, 12월 일루미네이션 때 모습이다.
이 언덕의 여름날의 모습.....
15년 후 라디오 방송의 pd가 된 타마키가 타로의 집을 찾아오던 장면에서 등장하는 모토이자카 언덕, 올라오는 택시 너머로 동상 같은 게 서 있는데 그게 바로 메이지 천황의 동상이다. 그가 처음으로 홋카이도에 방문한 것을 기념한 기념비와 동상이다.
모토이자카의 실제의 모습이다.
모토이자카를 아래쪽에서 바라본 사진.. 멀리 가운데 보이는 곳이 하코다테 공회당이다. 영화에서 타로의 집은 바로 공회당 앞에 있다.
택시에서 내린 성년의 타마키.. 히로스에 료코가 연기했다.. 택시 뒤편이 바로 영화 속 타로의 집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 처음 코피를 흘리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의 결말이 어찌 되어갈지 쉽게 짐작해 낼 수 있다. 백혈병의 발병과 함께 병원에 입원하는 소년을 쫓아가는 카메라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의 이별을 눈앞에 둔 슬픔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애써 슬픔을 참아내는 부모님, 지루한 병원 생활 속에서 병원 내 방송이라는 것으로 활기를 되찾고 그즈음에 병원에 입원한 또래 소녀의 눈부신 미소에 한눈에 반해버린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잊어버린 첫사랑의 따뜻한 감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잔잔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타로와 타마키가 외출을 하는 시점에서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자신의 병인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타로의 담담한 표정, 그리고 끝내 전할 수 없었던 편지, 애틋한 첫사랑의 순수함과 하코다테의 가을날 풍경이 잘 어울리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