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 시 전차로 떠나는 낭만 여행 두 번째

하코다테 화재 이야기 , 우오미자카

by 늘 담담하게


하코다테 시 전차를 타고 여행하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코다테의 주요 여행지 설명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코다테 화재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자. 역사에 기록된 하코다테의 화재는 수없이 많으나 1,000 가구 이상의 피해를 입은 화재는 모두 10회였다. 그 기록들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871년 10월 27일 -1,123호


2.1873년 3월 23일 -1,314호


3.1879년 12월 6일 -2,326호


4.1896년 8월 26일 -2,280호


5.1899년 9월 15일 -2,494호


6.1907년 8월 25일 -8,977호


7.1913년 5월 4일 - 1,532호


8.1916년 8월 2일 -1,763호


9.1921년 4월 14일 -1,309호


10.1934년 3월 21일 - 10, 176호


1871년의 화재는 후나미자카에서 우오미자카까지의 언덕 지역에 있던 유곽에서 일어난 것으로 이 화재 이후로 그 지역에 번창했던 유곽들은 호라이초로 옮겨갔다. 구글 지도로 보면 전차 정류장 하코다테 도쿠마에 에서 오마치 정류장까지이고, 실제 화재가 난 지역은 지도 왼쪽 아래의 Taisho-yu (목욕탕)라고 표기되어 있는 길 주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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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과 79년의 화재 이후에는 방화선의 역할을 하기 위해 도로의 폭을 늘렸다. 현재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모토마치의 교회나 건물들은 이 화재 이후에 건립되었다. 이어 1907년의 화재는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를 하코다테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만들었다. (그가 다니던 신문사가 화재로 없어져 버려 결국 오타루로 떠났다.)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무덤은 현재 하코다테 타치마치미사키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홋카이도에서 그의 흔적은 하코다테, 오타루, 삿포로, 구시로에 남아 있다.


화재로 유실된 가구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하코다테 대화재라고 부르는 1934년 3월의 화재는 피해규모가 엄청났다.

%ED%95%98%EC%BD%94%EB%8B%A4%ED%85%8C%ED%99%94%EC%9E%AC.jpg?type=w2 1934년 하코다테 대화재 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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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하코다테 화재의 피해 부분을 그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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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지도에 대입해 보면 어떤 곳이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있다.


1934년 3월 21일 당일, 홋카이도 부근을 발달 중인 저기압이 통과하면서 하코다테 시내에는 최대 순간 풍속 39m에 이르는 강풍이 불었다. 그러다가 해가 진 18시 53분경 시역의 거의 남단에 위치한 스미요시정에서 1 개의 목조 주택이 강풍에 의해 반파되면서 실내에 있던 난로의 불이 불어온 바람에 흩어지며 순식간에 불이 나면서 다른 곳에서 번져 나갔다. 거기다가 강풍에 전선이 끊어지면서 목조 주택이 밀집된 시가지 20 개소 이상으로 화재가 번지면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지진 때문에 일본은 대부분이 목조 주택이라서 화재가 취약했다. 1657년의 메이레키대화재가 에도( 도쿄)에서 발생했다. 이 화재는 당시 에도의 70%를 잿더미로 만들어 세계 3대 화재라고 불리며 , 1945년의 도쿄 대공습 때도 미군이 바로 이 점을 노려, 도쿄에 소이탄 폭격을 했다. 그 결과 이재민만 100만 명이 발생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향은 남쪽에서 서풍으로 시계 방향으로 변해 갔고 화재도 그에 따라 방향을 바꾸면서 번져 나가 시가지의 3 분의 1이 타버렸다. 화재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리가 소실된 가메다강을 건너려고, 혹은 시 동쪽 오모리 바닷가에 피난했지만 불꽃과 파도에 의해 도망갈 곳을 잃고 익사 한 사람이 917 명, 또한 물에 빠졌다가 살아났지만 아직 초봄의 추위에 동사한 사람이 217 명 등 화재로 인한 사망자만 2,054명이었다. 당시 하코다테 인구 20만 명 중 절반인 10여만 명이 피해를 입게 되었고 결국 이 화재는 당시 홋카이도 최대의 인구를 가졌던 하코다테를 삿포로시 다음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ED%95%98%EC%BD%94%EB%8B%A4%ED%85%8C_%ED%99%94%EC%9E%AC2.jpg?type=w2 당시 불타버린 하코다테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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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화재는 하코다테 전차에도 큰 피해를 안겨주는데 당시 화재로 불에 타버린 전차만 48량이었다.


오늘날 8월 1일부터 개최되는 하코다테 항 마츠리는 바로 이 대화재를 겪은 하코다테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1935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 화재로 인해 일종의 방화선 역할을 하는 그린벨트가 만들어졌는데 주지가이에서 신카와초에 이르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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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한 지도에서 빨간 선으로 그려진 부분이 바로 그 방화선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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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가이에서 신카와초에 이르는 거리 입구에 있는 하코다테 공예사, 이 건물의 왼쪽 거리가 바로 그 방화선 거리이다.


가끔 하코다테를 어떻게 여행하면 좋은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사실 하코다테는 아주 작은 도시라서 차량은 필요치 않으며, 시 전차를 타고 가다 내려서 걷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나눠야 할 것은 하코다테역전앞에서 전차를 타고 5 계선(5호선이라고 표기하자)의 종점인 하코다테 도쿠마에까지 가는 노선의 왼쪽은 하코다테야마 산 주변의 언덕들이고 오른쪽이 항구 주변, 일반적으로 하코다테 서부지구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하코다테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하코다테야마를 둘러싼 언덕길이다. 그래서 먼저 하코다테의 언덕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자.


가끔 하코다테를 떠올리면 잊히지 않는 풍경이 있다. 그것은 하치만자카에서 항구 쪽으로 내려다보는 밤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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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가 지고 나면 모토마치의 언덕들에 관광객은 썰물처럼 사라져 버린다. 관광 시설들이 어김없이 시간에 맞춰 문을 닫는 데다 이 지역이 상업 지구가 아니고 대부분이 주택가이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하치만자카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항구 쪽을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는다. 밤 시간에도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 촬영을 하는 곳이 바로 하치만자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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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코다테를 여행할 무렵인 2005년도 즈음에 하코다테의 여행 자료 중에서 이곳의 언덕길에 대한 소개를 보았을 때 막연한 환상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 가보니 나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밋밋한 경사길인데 이게 무슨 대단한 풍경인 것처럼 선전을 했던 걸까 라는 생각에 솔직히 속았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코다테를 그 후에 계속 가고, 각각 다른 계절에 이곳에 오르게 되면서 처음 내가 가졌던 실망보다, 이 언덕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2009년에 출판된 일본의 작은 마을이라는 책을 쓴 이순정 씨는 하치만자카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비슷비슷한 언덕의 전망 가운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치만자카다. 하치만자카의 명성은 일본 전역에 자자해서 CF나 드라마, 영화촬영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단다. 물 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하치만자카의 첫인상은 참으로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이 예쁜 언덕을 배경으로 어떤 광고를 찍었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팔아도 좋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이 언덕에 올라 상쾌한 공기를 들이키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니, 하코다테가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글처럼 이 언덕에 대한 느낌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열아홉 개의 언덕이 있고 각각 다른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그 외에도 더 많은 곳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가이드북에서 말하는 곳은 열아홉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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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야마 주변의 언덕길 지도)


먼저 서쪽에서부터 이 언덕길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어떤 풍경을 가졌는지를 차례차례 소개할까 한다.


1. 물고기가 보이는 언덕, 우오미자카

가장 서쪽에 위치한 우오미자카 魚見坂(물고기가 보이는 언덕)는 하코다테 부근으로 회유해 오는 물고기 떼를 잘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멀리 고마가다케(駒ヶ岳 1,131m)까지 보인다고 한다. 이곳에는 하코다테 전차 돗쿠마에 정류장이 있다. 한때는 이곳을 다이 마치台町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이유는 1856년에 이 지역에 벤젠다이바弁天台場라는 요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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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새는 에도시대 말기에 축조된 것으로 벤텐 곶 다이바(弁天岬台場), 벤텐 포대(弁天砲台)라고도 불렸다. 설계는 고료카쿠의 설계를 담당했던 다케다 아야사부로가 했다.


*다케다 아야사부로 武田 斐三郎(1827-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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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국 오즈번(현재의 에히메현 오즈시) 출신의 과학자, 군인


둘레 약 710m의 부등변 육각형인 모습으로 위에서 보면 일본장기의 말처럼 생겼다. 총면적은 약 38만 3천 평방미터, 높이 약 11.2m의 석벽을 둘렀다. 남동쪽에 아치형 입구를 두었다. 15개의 포안이 있으며 대포 중에는 러시아 해군에서 사용했던 포도 있었다고 한다. 토석은 주로 하코다테야마에서 가지고 왔으며, 다이바 입구 등 주요 부분은 오사카에서 가지고 온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처음 공사의 관리감독은 마쓰카와 벤노스케가 하였고, 다음 해부터 이노우에 기사부로가 하였다.



이를 건설한 것은 에도막부가 일본영해에 접근하는 외국 함선을 경계하기 위함인데 1856년에 예산 10만 량을 들여 하코다테만에 다이바를 축조하여 1863년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실제 사용된 것은 1868년에 일어난 내전 하코다테 전쟁에서였다. 하코다테 전쟁 막바지인 하코다테해전에서 신센구미를 중심으로 구 막부군은 1869년 6월 20일에 벤텐 다이바에서 농성하였다. 하지만, 신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1869년 6월 24일 벤텐 다이바에 있던 구 막부군은 항복하였다. 이후 1897년 항만 개량공사를 위해 헐었다. 현재 벤텐 다이바가 있던 자리는 하코다테 도쿠 주식회사의 본사가 있으며, 입구 앞에는 나무로 된 비가 세워져 있다. 덧붙여 벤텐 다이바의 석재는 하코다테 어항의 호안으로 사용되었다.

210131820_624.jpg?type=w2 우오미자카의 표지판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평탄한 언덕이다. 이 우오미자카에는 일반적인 관광객은 거의 오지 않는다. 다만 하코다테만을 여행하는 경우라면 드문 드문 관광객 몇 명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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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가기 위해 전차 1일 패스를 하코다테역에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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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역전 정류장에서 하코다테 도쿠마에 정류장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갔다. 도크마에까지는 시야쿠쇼마에, 우오이치바도리, 주지가이, 스에히로초, 오마치 이렇게 5개의 정류장을 지나야 한다. 그렇다 보니 삿포로나, 에히메현 마츠야마의 전차만큼 오래 시간 전차를 타는 것은 아니다. 덜컹거리는 전차를 타는 가는 것은 익숙하기에 승무원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전차가 진행하는 방향의 풍경을 지켜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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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 도쿠마에 정류장


하코다테 도쿠마에 정류장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하코다테 외국인 묘지로 가는 길은 경사진 길을 따라 약 10분쯤 걸어가면 된다. 그날은 구름이 많이 낀 날씨였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은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눈이 오는 날은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만 비가 오는 것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특히 취재를 하는 상황에서는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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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표시판을 보면 현재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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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작은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외국인 묘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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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시간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길이다. 관광객이라곤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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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묘지로 걸어가는 오른편으로 하코다테 만의 풍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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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묘지


드디어 외국인 묘지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외국인 묘지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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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 하코다테역의 서쪽 끝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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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묘지의 안내도이다. 1854년의 미국 페리 함대의 수병이 묻힌 개신교 묘지(F)"가 시작이었고 1859년 러시아인 묘지(A), 1870년에 가톨릭 묘지(현 성 바오로 수녀회 묘소, C), 1876년 중국인 묘지(현 중화 산장, E)가 추가되었다. 정식으로는 1870년 미국·영국·독일-러시아 중국의 재 하코다테 5개국의 영사의 요청을 받고 협정이 체결되어 현재의 외국인 묘지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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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양쪽으로 재일 러시아인묘지, 하코다테 하라스토 정교회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859년 러시아 군함의 수병이 묻힌 이래 약 40기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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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안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저렇게 앉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내 호주머니에 뭐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주고 오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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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내항 기념비와 추모비, 페리 내항 100주년을 기념하는 1954년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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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에서 50년 이상 살면서 창고업을 하고, 1925년에 88세로 타계한 영국인 제임스 스콧의 묘비. 상부의 컴퍼스와 자가 교차한 표시는, 프리메이슨의 표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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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쪽에 있는, 키 큰 묘비는 초대 독일 영사-루드비히 하버의 묘비. 1874년 배외 사상을 가진 옛 아키타 번에 속하는 사무라이에 의해 하코다테 공원 부근에서 참살되고 여기에 안장되었다. 당시의 묘비는 하코다 테 공원기념비로 이설 되고, 이쪽은 신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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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묘지 반대편에 있는 중국인 묘지, 이곳에 외국인 묘지가 있는 것은 일단 그들이 처음 하코다테에 왔을 때 이 바다로 왔기에 그들의 고향으로 가는 배를 다시 살펴보란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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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건립된 하코다테 검역소에 대한 안내판, 카페 유히는 바로 이 건물을 리뉴얼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아침에 전차를 타고 걸어서 왔건만,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입구에 올려진 안내문을 보니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이 코로나에 걸려 잠시 문을 닫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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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이런 일이, 여행 중에 이런 일을 만나게 되면 참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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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유히 ティーショップ夕日의 정상 영업 때의 모습이다. 공동묘지 옆에 카페라니, 한국인 기준으로 보면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동네 한 복판에 공동묘지가 있는 일본인의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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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사실 오전보다는 오후에 가야 한다. 오후의 석양을 보며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더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다시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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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마음으로 유히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바다 건너 육지 어디쯤에 JR 고료카쿠역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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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유히를 가지 못했다면 반대편에 카페 모리에가 있다. 중국인 묘지 옆길로 들어가서 다시 왼쪽으로 가면 카페 모리에 モーリエ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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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묘지까지 왔다면 카페 유히나 이곳 모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바다를 볼 수 있다. 모리에는 러시아어로 바다라는 의미이다. 이곳에서 하코다테만의 화물선과 여객선, 갈매기, 일몰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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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서 결국 외국인 묘지에서 빠져나와 모토마치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확인해야 할 곳들, 사진 촬영 해야 할 곳들을 곳곳에 있었기에 마냥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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