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성 36미츠케 이야기

36미츠케 20-21

by 늘 담담하게


20.시미즈문 清水門

%EC%8B%9C%EB%AF%B8%EC%A6%88%EB%AC%B8.jpg?type=w1 시미즈문

시미즈문은 기타노마루 공원 내에 있는 구 에도성의 문으로 동쪽방향의 고려문 高麗門 과 남쪽에 직사각형으로 세워진 노문으로 구성된 마스카타문이다. 사진의 우측에 우시가후치 해자가 있다.

*고려문

고려문(高麗門)은 일본 성곽에서 널리 사용된 문 형식의 이름으로 에도성뿐 아니라 가나자와성, 히메지성 등 여러 성에 존재한다. 고려문이라고 이름 때문에 우리나라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고려문의 주요 형태는 다음과 같다.

기둥 2개 + 지붕이 있는 단순한 구조

문 자체는 소박하지만,

앞이나 옆에 ‘마스가타(枡形)’라는 방어 공간을 두는 경우가 많음


이 문은 성의 방어설계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문으로 들어가면 그 안은 사각의 공간이 있고 그 앞에 다시 강력한 망루가 버티고 있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쉽게 한다. 위 시미즈 문의 사진을 보면 만일 적이 침입했다고 하면 문을 통과하더라도 성내로 바로 들어갈 수 없다. 문 뒤쪽에 있는 망루 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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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구 에도성 시미즈문'으로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미즈문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1607년에 기타노마루(北の丸) 공사를 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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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시미즈 문이 세워져 있는 부근은 중세에 키요미즈데라清水寺가 있었다고 하며, 에도시대에는 에도성의 한 구획에 편입되어 기타노마루의 출입구로 이용되었다. 기타노마루는 무가지武家地로서 이용되어 에도시대 중기 이후에는 고산쿄 중 다야스가(다야스 도쿠가와 가) 시미즈 가(시미즈 도쿠가와 가)의 저택과 곳간으로 이용되었다. 문을 빠져나가면 기타노마루공원이 있다. 예전에는 기타노마루 공원 동쪽 일대는 시미즈 가문이, 서쪽 일대는 디야스 가문이 각각 소유하고 있었다. 1624년에 아키 히로시마 번주 아사노 나가세(浅野長星)에 의해 개축되었다가 1657년 대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에 이듬해인 1658년에 재수축되었다.


메이지시대부터 전쟁 전까지는 근위보병연대의 주둔지였다. 문의 이름은 중세 무렵에 현재의 시미즈 문이 있는 부근에 키요미즈데라가 있어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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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861년 천황의 딸 와노미야가 시집갈 때, 시미즈가의 저택에서 머물다가 12월 11일 혼례준비를 끝내고 시미즈가를 나서, 히라카와문에서 오오쿠로 향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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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말기의 우시가후치 牛ヶ淵


우시가후치의 우측 전방에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설치한 시미즈 문 앞의 토교(흙다리) 보인다. 그 오른쪽에 시미즈 문이 있다.


그 토교의 왼쪽으로 가면 현재의 치요다구청이 위치한 자리이다. 사진 중앙 우상단에 멀리 키지바시문의 고려문과 와타리야구라문(석축 위에 망루를 걸쳐두고 문을 열어 놓은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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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지도의 시미즈문의 위치


지도를 보면 토교를 건너 고려문을 지나 우측으로 꺾어 문을 통과한 다음 다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성내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길은 오르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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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문 안쪽에서 찍은 사진, 왼쪽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앞서 설명했듯, 사진 우측의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에도성내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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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문안 쪽의' 배치도, 그림 아래에 시미즈가, 야스다가의 위치가 있고 그림 위쪽에 砲筒御蔵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은 무기고이다.



21.다야스문 田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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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야스문은 북쪽으로 향한 고려문과 서쪽을 보는 야구라몬으로 이루어진 스미가타형식의 문이다.



다야스문은 1629년에 마쓰다이라 기요모리 다다마사가 세웠다. 문내에 있던 다야스 다이묘진(쓰쿠도 묘진)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고려문의 문짝 금구에 새겨진 글귀로 보아 1636년에 대대적인 복구 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옛 다야스문 근처는, 「다야스구치」, 「이다구치」라고 불렸으면 죠슈 방면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을 빠져나가면 기타노마루 공원이 있어, 당시 다야스문으로부터 남쪽으로 건너는 서쪽 일대는 다야스 도쿠가와 가, 동쪽 일대는 시미즈 가문(시미즈 도쿠가와 가)이, 각각 소유하고 있었다. 에도성 조영 후에는, 「기타노마루」라고 칭하며, 다이칸야시키와 오오쿠를 섬긴 여성의 은둔소가 되었다. 센히메나 카스가노쿠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궁으로 미토 요리후사(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1번째 아들)의 준모 에이쇼인의 저택등이 있었다. 현재는 기타노마루공원 출입구로 상시 출입이 가능하다.

*준모 (准母)- 법적·혈연적으로는 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에 준하는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



*센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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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히메(千姫, 1597년 5월 26일 - 1666년 3월 11일)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의 인물로, 에도 막부 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의 장녀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손녀로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 후의 혼다 다다토키(本多忠刻)의 정실부인이다. 원호는 덴주인(天樹院)이다.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정쟁에 휘말려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된 그녀의 일생은 각종 소설, 영화,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카스가노쿠니

가스가노쓰보네/사이토 후쿠( 春日局/斎藤福, 1597-1643)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서 에도 시대 전기까지 살았던 여성으로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유모이다. 가스가노쓰보네란 이름은 조정에서 받은 칭호이며 본명은 사이토 후쿠(斎藤福)이다. 마쓰다이라 노부쓰나, 야규 무네노리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미쓰를 떠받치는 세 기둥>으로 불렸으며 에도 막부 시대의 주춧돌을 쌓아 올린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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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다야스문의 사진


다야스문(田安門)은 에도성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성문이다. 경비는 1만 석의 후다이 다이묘들이 맡았다. (에도성의 경비는 에도 막부의 직할부대가 하는 것이 아니고, 후다이 다이묘가 하나씩 맡아서 지켰다) 하오리하카마의 번사 4명이 맡았다. 총 10정, 활 5장, 장자루 10, 지통 2, 지궁 1, 을 상비하고 있었다. 다이쇼 후기에 문 앞의 가파른 구단시타를 파 내렸기 때문에, 다야스문으로 향하는 토교가 평탄하다가 오르막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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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그림 지도에 표기된 다야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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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카마츠리(에도의 대표적인 축제인 간다 마츠리와 산노마츠리)에서는 에도성 입성이 허용됐다. 간다묘진제열은 다야스문을 통해 입성하여 직진하면 상람소(현 건문)에서 장군이나 오오쿠를 알현한 후 타케바시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와 간다 방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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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사이가 그린 구단시타 그림(그림의 우측이 구단시타이다. 에도시대 당시에는 9개의 계단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경사가 급했다. 그림 중앙이 토교이고 그 토교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다야스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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