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월이 왔어

by 늘 담담하게

1.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술자리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었던가. 운전을 해야 했기에 술은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은 취한 것 같았다. 그때 라디오인지 CD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4월이 왔어라는 왁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4월이 왔어 이별이 왔던 그 장면에서 난 멈춰있고 넌 뒤돌아서 날 떠났어. 너란 사람을 지워야 함은 잘 알면면서도 비슷한 옷깃에 닮은 목소리에 아직 난 아픈데 그대..... 왜 모르시나요? 미워지게.. 왜 몰라주나요? 원망하게 우리 헤어지는 일 당신에게는 나를 잊는 일보다 쉬운 건가요? 잘 지내는지... 가끔은 내가 생각나는지... 비슷한 향기에 닮은 뒷모습에 아직 난 아픈데... 그대.... 보고 싶어요... 그리웠어요.... 눈물처럼 닫고 나면 지워질 줄 알았죠... 나는요... 모든 걸 잃어도 괜찮아요.... 모든 걸 다 줘도 괜찮아요.... 그댈 기다리는 일 이제 나에게.... 그대 잊는 일보다 쉬운 일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늘 4월에 헤어지는 일이 많았던 나, 왁스 그녀의 노래에 잠시 콧등이 시큰 거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5LW3nKSagAQ

2. 벚꽃이 지면 여름이 시작된다는 말을 알려준 사람이 오래전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그녀에 대해 글로 쓴 적 있지만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능력도 있고... 얼굴도 이쁜 편이라.... 인기가 높았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항상 아니라고 했었다. 그녀의 희망이라고 해야 할까,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세계일주 여행이었다.. 그녀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그 비용을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했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마 벚꽃이 막 피어날 무렵... 벚꽃 축제가 시작될 때쯤이었다.


그녀는 벚꽃을 보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벚꽃을 보면서 봄이 온 거라고 하지만... 나는 벚꽃이 피면 이제 봄이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해요.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사랑도.. 일도... 인생사도.... 가장 좋을 때라는 것은... 한편으로 가장 나빠질 때가 가까워졌다는 거.. 사람을 사랑해서 가장 행복할 때쯤이면.... 서서히 권태라는 것도.... 찾아오는 것인데...."


그렇게 알듯 말 듯 묘한 인생론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얼마뒤에 사표를 내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 이후 나는 아름다운 벚꽃 풍경을 수없이 보았다. 모두 만개한 벚꽃들이었다. 그 벚꽃들을 보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벚꽃이 지면.. 이제 여름이 시작하는 거야..."



3. 벚꽃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생각나는데...


"벚꽃 피어날 때.. 헤어져본 적 있어요?..."


그렇게 내게 말한 그는 벚꽃이 필 때 무려 두 번이나 이별을 한 경험이 있었다.


대학 졸업반 때, 한번...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다 한 번, 두 번 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말 온몸을 바쳐 사랑을 했었는데... 그게 다 이별로 끝이 나버린 것이다..


"그게 트라우마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다가 벚꽃이 필 때쯤에... 꼭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번 벚꽃시즌에는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그래서 어떤 때는 벚꽃이 필 무렵에는 안 만나기도 했어요... 바쁘다고...

그런데 꼭 그때쯤에는 사귀는 여자가 전화를 해요... 오빠 벚꽃 축제 한다는데 가보자.... 미치겠더라고요...

나중에는 하다 하다...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물어봤다니까요... 벚꽃 좋아하세요라고...... 별로예요 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근데 그게 어디 쉬워요.. 대부분 괜찮다고 하지..."


쓸쓸하게 말하던... 그때에는 그는 만나는 사람이 없었고 그와 나는 뻘쭘하게 남자 둘이서... 여의도 벚꽃 축제를 보러 갔었다. 그때에는 벚꽃이 지는 때였는데 바람이 불면 하얀 벚꽃잎들이 눈처럼 흩날려갔다. 그 벚꽃들을 하염없이 보며 걷던 그와 나... 그날밤 신촌의 어느 술집에서 그에게 말했다..


"벚꽃에 대한 이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서는.. 벚꽃 피는 시즌에 결혼을 해버리는 거예요... 꼭 그렇게 해봐요.."


"오호 그러면 되겠네요... 그전에 만나서... 벚꽃 필 때 결혼을 해버리면... 헤어지는 일도 없고... 뭐 결혼으로 완성되는... 해피엔딩.. 좋은 생각이에요... 자 건배.."


그로부터 3년 정도 흐른 뒤... 그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결혼시기였는데.. 역시나... 4월이었다.. 그는 벚꽃이 필 때쯤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의 결혼식 때였는데... 결혼식장 앞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눌 때 그가 내게 말했다..


"저... 벚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자와 만났어요..."


그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