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ope you don’t lose your dignity"
뉴욕에선 참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특히 우버 안에서 말이다. 뉴욕에선 우버를 잘 사용하는데 한국의 카카오 택시와 비슷한 개념이다. 우버를 운전하시는 분들은 택시 운전만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만났던 기사님들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남아서 하시는 분, 투잡으로 하시는 분도 계셨다. 정말 다양한 분들이 운전하시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님이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뉴저지 병원을 들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우버의 외간부터 좀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탔다. 차가 정말 번쩍일 정도로 빛이 나고 내부도 정말 깨끗한 보기 드문 우버였다. 우버 기사님은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첫인사부터 젠틀한 신사분임을 느꼈다. 뒷좌석엔 과자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고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니 자유롭게 먹으라며 기사님은 얘기해 주셨다.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모든 게 일반 우버 기사님들과는 달랐다. 병원에 다니고부터 우버를 정말 많이 탔는데 그 어떤 우버 기사님도 손님을 위해 스낵을 준비하는 기사님은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품격 있고 젠틀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기사님들이 별로였다는 뜻은 아니다.)
기사님은 내게 정말 부드러운 톤의 말투로 날씨가 흐리다는 이야기로 먼저 말을 거셨고 우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이날 따라 차가 막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기사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기사님은 원래 시계 브랜드의 CEO 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딱 듣는 순간 그래서 이렇게 품위가 있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손짓 그리고 말투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일반 사람 같진 않았기 때문에 궁금증이 하나 풀린 셈이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으론 회사가 어려워져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지금은 우버 기사로 일하신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그렇게 된 지 오래되신 것 같지 않았고 정말 큰 회사의 사장님이었음을 기사님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회사가 망하고 택시 기사 일을 하고 있는데 저렇게 온화하고 품위를 지키며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과 기사님은 지금의 자신의 삶에 감사한다며 이야기하시는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기사님께 기사님은 참 감사함을 아시는 분 같다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의 돌아오는 대답에서 이분의 그릇이 얼마나 큰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는데 이것은 글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분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기사님은 이런 상황이 되었지만, 사람들에게 편안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이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라며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니 감사하고 나누며 사시길 바란다며 말씀하셨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며 맨해튼에 도착했고 기사님은 마지막까지 내게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하시며 비 오는 뉴욕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셨다. 34번가쯤에 내려주셨던 것 같은데 기사님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젠틀한 사람을 만난 게 신기하기도 했고 마치 잠시 다른 세계의 사람을 보고 온 느낌이라 꿈을 꾼 기분이었다. 이 분을 보며 더 깊은 감동이 있었던 이유는 내가 살고 싶은 삶 중 하나인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이 분을 통해 느꼈기 때문이다. 2년 전 장미를 보며 써 놓은 문장이 있다. 장미가 너무 우아하게 시든 모습을 보고 시든 장미이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고 시든 장미처럼 비록 시들지라도 나의 품위는 시들지 않기를 소망한다는 말을 써 놓았다. 시든다는 단어를 우리 삶에 빗대어 볼 때 좌절하는 순간, 약해져 가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순간일수록 우린 더 조급해지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좌절할 수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우버 기사님의 모습이 나에겐 좋은 삶의 예시로 남았다.
“I hope you don’t lose your dignity even if you wither like this rose”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우버 기사님을 통해 좋은 자극이 되었던 시간이었고 이런 삶의 자세를 품고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