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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Sep 01. 2024

현재를 살아간다는 설명 불가능한 느낌

미국에 도착해 딱 10일이 되는 날 써놓은 글이 있다. ‘살아간다’ 도대체 이 감정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살아간다는 단어로 설명해 놓은 것이다. 똑같은 일상이었다. 밥을 해 먹고 산책을 하고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고 커피를 마시고 지극히 평범하고 한국에서도 하는 그런 일상인데 왜? 이곳에 도착해 10일밖에 안 된 나는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이 해답은 한국에 돌아오고도 3년이나 지나서야 풀렸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좋아하고 시간 날 때 틈틈이 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책을 사러 서점에 갔는데 김영하 작가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 관련된 책은 흥미가 없어 잘 안 읽는 편인데 이상하게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김영하 작가님의 책은 늘 생각한 것 이상의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구매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단순한 여행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반쯤 읽어 가던 중 유레카!라고 외친 부분이 있다. 김영하 작가님의 책 『여행의 이유』 109~110쪽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뉴욕에 도착해 2주도 채 안 돼서 느꼈던 설명 불가능한 '살아간다'의 의미를 정확히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오랫동안 살아간다는 느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찾으려 생각도 깊이 해보고 질문도 하면서 이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애썼는데 우연히 이 책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다. 이런 것을 유레카!라고 하는 것 같다. 정말 기뻤다. 누군가에게 이 감정을 설명할 때마다 그냥 너도 언젠가 나가보면 반드시 느끼게 될 거라고 말했던 내가 이제는 정확히 살아간다는 느낌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과거, 현재, 미래 이 3가지의 시점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몰두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살아있으며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미국에 오기 전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다는 실망감과 무용과로서의 나와 진정한 나 자신 사이에서 내면적 충돌의 시간을 겪고 있었다. 많이 지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미국에 오게 되었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서 1년이란 시간 동안 현재에 충실하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낸 것이다.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던 나에겐 큰 휴식이었고 처음으로 과거와 미래에 묶이지 않고 현재를 진정한 나로서 온전히 살아간 시간이었다. 만약 여행을 장기간 가는 친구가 있다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여행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 중 일부는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으니 나처럼 유레카!라고 외치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109~110쪽 내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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