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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엘 Jul 10. 2023

시어머니와 닭백숙

우리 어머니는 전형적인 K-시어머니다. 18년 전 처음 얼굴을 뵀을 때의 첫인상은 꽤 강렬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옆으로 약간 찢어진 커다란 눈인데, 웃음기 하나 없이 무표정에 깔끔하게 차려입으신 모습에서 강인한 포스가 느껴졌다. 인사를 하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지금 까마득하지만, 그 당시에도 맨 정신은 아니었다. 머라고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싸움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한없이 어렵고 그 자리가 불편했다.


지금도 웃지 않고 말씀 없이 계시면 괜히 '화가 나셨나', '기분이 언짢으신가' 눈치를 보고 살피게 된다. 새내기 며느리 때는 말 한마디 못하고 어머니 말에 무조건 동의만 했다면, 지금은 "머 기분 안 좋은 거 있으셔여?" 하고 여쭈어보고 아니라고 하시면 나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소심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나의 성격과 달리 어머니는 뒤끝 없이 앞에서 할 말 다하는 분이셨다. 결혼하고 몇 년간은 울면서 집에 오고, 신랑한테 쏟아내기에 바빴다. 지금은 할 말은 하고 말대꾸도 하고 내 의견도 주장하는 보통의 평범한 K-며느리가 되었다.




여름이 되고 초복이 찾아오면 닭을 삶아 먹곤 하는데, 그 이후론 백숙을 먹고 치킨을 먹을 때면 잊혀지지 않고 늘 떠오르는 게 있다.

모처럼 어머니가 다니러 오셔서 더운 여름이기도 하고 그닥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몸보신을 할 수 있는 백숙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법 큰 닭을 3마리를 사고 곁들일 부추도 샀다. 큰 솥에 깨끗하게 샤워 마친 닭을 풍덩 하려는 순간 어머니는 한사코 너무 많다며 2마리만 하라고 하시는 거다. 그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찰밥도 말아먹을 거니까 모자라진 않을 거란 생각에 해맑게 두 마리를 보글보글 끓이고 상 차리기 막바지가 됐다.

커다란 면기에 진국이 된 국물과 닭고기를 나눠 담으려는데, 어머니는 손주들도 아닌 아들 다리 주라며 큰 소리로 저쪽 거실에서 외치신다. 순간 아차 싶었다. 원래 계획대로 3마리를 했어야 했는데, 후회한들 이미 지나간 일. 아들 다리 넣어주라는 말씀을 두 번 하시는데, 짜증이 확 났다. 미간을 찌푸렸다. 아들만 보이시나 보다. 시가에서 며느리인 나는 젤 끝 순위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백숙을 끓인 나는 안중에도 없다.


가리는 음식 거의 없이 다 잘 먹는데, 퍽퍽 살이 맛이 없고 목이 메어 너무 먹기가 싫다. 어릴 때부터 편식한 적은 없는데 닭가슴살은 빼고 먹는다. 그래서 치킨을 시키면 다리, 날개, 봉만 있는 콤보로 먹는다. 이 사실을 남편은 알고 있다.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남편이 얄밉고, 애꿎은 닭만 세차게 분해했다. 다리는 4개, 사람은 5명. 어머니가 양보하시지 않는 이상 다리하나, 내 아들들 당연히 다리 하나씩, 아들 다리 안 줄까 봐 그릇에 뜨기 전부터 염려하시는 어머니의 아들 하나. 나는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봐도 없다. 국물에 대충 날개조각이랑 떨어져 나간 살 몇 점을 내 그릇에 다.

애들은 그렇다 치고 남편과 어머니는 같이 나눠 먹자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한 듯 식사가 시작됐다. 국물을 한 숟가락 뜨는데, 서러움이 밀려왔다. 눈물 날 것 같아서 꿈뻑거리다 가까스로 참고 밥을 말아 곱씹었다. 그날 먹은 닭백숙의 맛은 쓰디썼다.




치사스럽게 먹는 거 하나 안 먹어도 그만이 아니라, 서로 사탕 하나라도 먹으라고 주는 것은 진심이고 사랑이다. 매일 밥 해주는 엄마가 아이들은 최고인 것처럼.

가족이 된 이상, 엄마와 딸까진 아니어도 앞으로 계속 함께해야 할 사랑하는 아들의 부인이지 않은가. 한 식구가 된 며느리도 자식처럼 조금이라도 사랑을 나누어 주시면 좋을 텐데. 아직도 시간이 더 지나야 하나 씁쓸하기만 하다. 나도 며느리만 둘을 맞이해야 하는데 같이 아껴줘야겠다고 며느리가 내 기분이 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다짐하고 다짐해본다.



자꾸만 닭고기 때문에 서운해진다. 한 번은 손아래 시누네서 치킨을 시켰다. 아이들도 많고 워낙 적은 양이라 어른들은 거의 입맛만 다시고 뼈 잔해들이 쌓여갈 무렵, 다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와 남편, 아이들의 고모부는 그만 먹을 모양새고 시누는 어렸을 때부터 퍽퍽 살만 골라먹는 마니아였다.

그래서 부족했던 차에 "아가씨는 안 먹으니까 제가 먹을게요" 말을 안 하고 먹어도 되는 건데 왜 그랬을까. 바보. 그러자 옆에 있는 어머니는 "ㅇㅇ이도 이제 아기 낳고 다리 잘 먹어" 하시는 거다. 헉, 먹지 말라고, 당신의 딸한테 주라는 건가 싶었다. 옆에 있는 시누도 말 한마디 없고, 그냥 언니 먹으라고 말 한마디 했으면 이 정도 기분은 아니었을 텐데. 그 순간 어찌해야 할지 닭다리를 든 나의 손이 민망해 숨고 싶어 미칠거 같았다.


그리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닭다리 집어던지고 나와버릴걸 왜 거기 죽치고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말하며 또 후회했다.




어김없이 뜨거운 여름이 되고 복날이 되면 또 닭을 삶을 테고, 치킨을 주문할 거다.

언제쯤 일지 모르겠지만, 이 기억이 희미해지고 없어져 버릴 만큼, 다음엔 '시어머니와 닭백숙'이란 제목으로 훈훈한 글을 썼으면 좋겠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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