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항공 탑승수속 창구 앞에서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참 차분하게도 말을 건넨다.
잘못 들은 거지? 우리는 귀를 의심했지만, 이내 머리가 하얘지고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까지 창백해질 지경이었다.
정확히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니 잊을 수가 없다.
분명 항공권은 인터넷으로 몇 날 며칠을 뒤적이며 찾다가 너무 비싸지 않은 조금은 착한 가격이 있어 아싸, 이거다 싶어 잽싸게 미리 구매했던 터였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동생이 비행기표도 끊어 놓고, 차근차근 기차표며, 나라 이동할 때 탈 버스에, 세 곳의 숙소(두 곳은 호텔, 한 곳은 한국분이 운영하는 아파트먼트)까지 계획에 맞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준비되었다.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도맡았다.
"난 여기 꼭 가보고 싶어,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출국날이 다가오면서 여행 일정도 세밀하게 짜 보고 거대한 케리어에 짐도 챙기고 또 챙기는 동안,마치 눈 오는 날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강아지 마냥 설레고 좋아서 잠 못 이루는 날의 연속이었다. 흥분의 도가니그 자체였다.
하지만, 인생도 그렇듯이 아무리 꼼꼼히 철저하게 준비한다 한들 여행이 계획한 대로 착착 이루어지던가.
호기롭게 부푼 기대를 안고 5년 만의 해외여행 원정에 나선 우리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들떠있는 우리를 한방 먹이듯 보기 좋게 첫 단추부터 문제가 터졌다.
이거만약, 잘못하면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속도 뒤집어지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급기야 탈이 나고 말았다.
출국장 안에 있는 약국에서 급히 소화제를 사서 털어 넣고 생수를 들이켰다.
사실 동생은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본인이 예약했는데 자기 때문에 여행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봐 얼마나 애간장이 녹고 전전긍긍했을까.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반쯤 얼빠져 보이긴 했다. 긴장성 입술을 깨물며.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에유, 어쨌든 표 끊었는데, 걱정하지 마"
'괜찮긴, 머가 괜찮아. 비행기 못 타는 거 아냐. 어떻게 되는 거야.' 가슴이 콩닥콩닥 쫄보에다가 비관적인 나는 동생에게 속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같이 호들갑을 떨면 커다란 태풍에 흔들려 다 같이 나가떨어질 테니까.
언니이지만, 진짜 언니같이 동생을 다독였다.
손에 쥐고 있던 여권은 땀을 머금고 점점 눅눅해져 가는 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탑승수속팀 직원분이 우리를 불렀다. 이유를 알았고 방법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우리 원정대는 우리나라 항공사에서 직항으로 가지 않고 터키항공을 통해 이스탄불 공항을 경유해서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근사한 시나리오였다.
가격이 우리 수준에 더 합리적이라는 게 첫 번째고, 비행기 좀 오래타 본 짬바가 있는 아들 녀석이 기내에서 기내식을 먹고 헤드셋을 끼고 영화를 보는 걸 우쭐대며 즐기기도 했다.
겨우 초딩인데,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실제 뱅기 안, 헤드셋 착용하고 영화보심.
어른들은 괜찮지만, 애들은 장거리 비행이 힘들다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애들은 오히려 쌩쌩하고 어른들이 파김치다. 비행기 몇 시간까지 타봤니, 오래 타봐야탄 거지. 경유지큰 공항도 좀 둘러보고, 아무튼으쓱대며 괜히 줄넘기 누가 더 오래 하나 경쟁에서 이긴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었더랬다.
우습게도.
근데 이 부분이 나비효과처럼 후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이럴 수도 있구나, 또 한 번 여행하며 배우고 경험한다.
처음부터 비행기 표가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 공항까지(여기가 경유지인데), 그리고 난생처음 듣도보도 못한 사비하괵첸 공항(SAW)에서 비엔나 국제공항까지로 돼있었던 거다. 그걸 우리가, 아니 동생이 끊은 거다.
항공권 예약 내역에 보니 Istanbul(SAW)이라고 되어있어서 뒤에 괄호는 안 보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알고 결제를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가격이 좀 쌌던 거다.
직원분은 한결같이 친절하게 예약 내역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래서 종착지인 빈 공항까지 비행기 편이 조회가 안됐던 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영혼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이 우선 짐은 비엔나까지 보내고 사람은 경유지인 이스탄불 공항까지 가서 거기서 바로 탈 수 있게 비행기 표를 바꿔보든, 사비하괵첸 공항으로 이동해서 원래 예약했던 비행기를 타든 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아멘' 구세주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었지만, 다 해소되진 않았다. 여행지인 비엔나까지 가는데 걱정거리들이 줄줄이 사탕이었다.
비행기표를 바꾸는 건 어려울 것 같고,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사비하괵첸 공항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여기저기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다 해도 경유지에서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 대기 시간이 3시간 남짓이어서 얼마나 걸릴지 모를 공항을 이동하는 것도 불안 불안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직원들, 승무원 분들(한국인)은 이스탄불 공항에서 사비하괵첸 공항까지 가는 방법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끌어안고 보안검색대를 지나 출국 심사 후 면세점이고 뭐고 게이트를 통과해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랐다.한껏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미모를 뽐내는 파란 눈의 승무원에 썩소를 날리며.
여행 중에 동생은 인천공항에서 언니의 말 때문에 마음이 좀 진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법을 찾고 몸이 움직였다고. 에이 뭘. 헤헤~하면서도,지적하고 탓하며 잔뜩 찡그린 얼굴로 불만을 쏟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서로 격려하고 위했던 우리가 쫌 멋있었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잘 넘겼다는 게 참 대견했다.
그런 황당하고 스펙터클한 일을 겪고 어느새 비엔나의 슈테판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