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젠장.' 치과에 가야 한다. 계속 미적거리며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텨봤지만 맛난 음식을 씹어서 삼키기는 해야 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아픈 거보다.
앞니로 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양쪽 어금니가 다 사달이 나고 말았다.
처음엔 왼쪽 아래 어금니에레진 치료했던 충전제가 떨어져 버렸다. '치과를 가야 하나', '가기 싫은데'를 반복하면서 별로 아프지도 않고 괜찮길래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다.
그런데 차가운 물이나, 커피 등 시원한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 꽤 이가 시렸다. '나에겐 반대편 튼튼한 어금니가 있어' 마실 때 시린 것쯤은 머 씹는 것도 아닌데, 치과에 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오른쪽 어금니에 나의 방대한 음식물들을 도맡긴 채 얼마나 날짜가 지났을까. 이젠 욱신거리며 참지 못할 만큼 아파왔다.
그래도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러면 당장에 등짝 스메싱을 날리며 떠밀었을 텐데, 다 큰 어른이 부끄러울만큼 너무도 가기 싫었다. 아니, 사실 너무 무서웠다.
비단 무서운게 치료만은 아니었다. 눈 앞에 어마한 견적이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았다.
더 놔두다간 잇몸까지 망가져 임플란트를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동안 홀로 씹느라 너무 혹사시킨 고마운 반대편 어금니마저 두 손을 들어버렸다. 사실 예전에 크라운 치료를 받았던. 제대로 말하면 진짜 튼튼한 원래 나의 어금니도 아니었다. 그러니 씌웠던 보철물(금)이 갑자기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음식을 와그작와그작 씹다가 같이 씹어서 잇몸과 입 안쪽에 상처가 났다. 쓰리고 피가 나고, 무엇보다 당장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앞니로 씹을 수는 없으니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치과로 터벅터벅 향했다.
"지~~~~ 잉, 지잉" 치아를 갈아내는 소리가 날카롭게 온몸을 찌른다. 어깨가 경직되고 팔, 다리가 굳어간다. 주먹을 꽉 쥔 손을 풀어보지만, 땀이 흥건한 손가락만 파르르 떨린다.
마취를 했는데도 신경을 건드릴 때마다 너무 아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신경이 넓게 있어서 그렇다는데, 괜히 열심히 치료해주고 있는 선생님만 못 미덥고 예민해진다. 게다가 입은 찢어질 거 같다. 계속 크게 벌리고 있으니 턱도 아프고 얼굴 전체가 쑤시는 거 같다.
파김치가 되어 나오는데, 세상이 환해 보였다.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볍고 후련했다.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 다르다는 말이 딱 맞다. 비록 푹푹 찌는 더위에 마취는 덜 깨서 입술에 감각이 없고 앙 다물어지지 않아 입 한쪽이 돌아가지만. 오랜 숙제를 끝낸 학생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한 번 가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미루고 있었는지 한심스럽다. 어쨌든 다른 과 병원도 마찬가지지만, 치과는 너무 가기가 싫다.
한참 동안 방치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줄 알고 겁먹고 있었는데, 떨어진 보철물도 씹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다시 붙이면 되고 임플란트를 해야만 소생할 줄 알았던 왼쪽 치아기능도 신경치료 후 씌우면 된다고 하니 너무 감사했다.
금 보철물을 새로 하고 임플란트까지 했더라면 치과에 여름휴가 비용을 줘야 했는데, 식구들과 기대하고 있는 여름휴가를 맘편히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미안해하며 긴축재정에 돌입해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동안 빨리 가라는 남편의 눈초리에도 끝까지 늑장부려 큰 금액이 들어가면 어쩌나 내심 속으로 걱정이었다.
몇 번 왔다 갔다, 오늘도 가서 소독하고 왔다. 이제 낼 모래 마지막 씌우는 것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