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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엘 Jun 17. 2023

눈물의 살치살 스테이크

웃을 수 밖에 없는 너.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여유로운 토요일 시작, 아침은 그까짓 거 대~충 누룽지에 빵으로 해결하기에 마땅하다.

휴.. 한 고비 넘겼고 이제 두 끼 남았다.



기타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는 첫째를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손에 잡히는 책을 집어 들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신랑이 먹고 싶은 게 있다며 외식을 제안했다.

나는 당연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다고 했고.

주말 동안 돌밥(돌아서면 밥)을 해야 하는 주부의 숙명과도 같은 스트레스에서 한 끼라도 외식이나 배달주문으로 시켜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고 해방감이 드는지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렸다.

첫째가 합류하고 우리 네 식구는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근처에 있는 맛집으로 향했다.

다들 입맛을 다시며 대식가답게 메뉴판을 앞에서부터 정독하고 있었다.


나는, 살치살 스테이크 먹을래~
으응~?


막둥이 둘째가 살치살 스테이크가 먹고 싶단다. 전혀 예상치 못해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의 머릿속엔 메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목살 스테이크 먹자~^^
이것도 맛있어~~~.



정말 그렇다. 충분히 맛있고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이기도 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계속 살치살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우기는 게 아닌가.

살치살인지 부채살인지, 삼겹살인지 목살인지 그저 남의 살(고기)이면 게 눈 감추듯 우악스럽게 먹어 치우는 녀석이 살치살을 고집하는 게 좀 어이가 없었다. 부위마다 맛을 알리가 만무하니까.


살치살이 두 배는 가격이 비싸고, 또 스테이크만 시킬게 아니고 파스타와 리조또, 샐러드까지 주문할 참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목살이 맛이 떨어진다면 살치살을 주문했을 거다. 자식이 먹고 싶다는데.


마지막으로, 신랑과 나는 강압적으로 그냥 먹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고 최대한 다정하게 단호한 어조로 회유하며 설득했다.



그런데, 꼬맹이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안 흘리려고 눈을 치켜 위를  바라보다 이내 눈물방울을 떨구고야 말았다. '두두둑' 옆에 있던 나에게 얼굴을 파묻는다.


어안이 벙벙. '내가 뭘 본거지?'꼬맹이로 인해 식구들이 일제히 얼음이 되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남편과 큰아들과 나는 눈이 마주치고 웃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날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

신랑은 배꼽을 잡는다.

눈물과 맞바꾼 살치살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고 꽤나 만족한 표정의 꼬맹씨는 승리를 거뭐진듯 기세가 등등하다.

비록 울었지만, 상관없는 듯했다.


정말 울지 생각도 못한 데다, 자식이지만 잘 모르겠다.

뭘 알고 살치살을 진짜 먹고 싶었던 건지, 심술을 부린 건지.

그렇게 울어야만 했던 건지. 

애기때부터 자기 주관이 확고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누가보면 고기를 안사줘서 그렇다고 불쌍하게 볼 지도 모르겠다.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들 덕에 날로 뱃살이 이중, 삼중 삼겹이 되어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원하는 대로 주문해 줄걸 후회도 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살치살 스테이크가 뭐라고 눈물을 흘린 꼬맹이

 덕분에 두고두고 웃을 수 있는 추억이 하나 생겼다.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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