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23년 인생동안 가장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엔 전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의 한 조각을 훔쳐보기 위해 모인 타국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던 아스팔트 광장은, 그들이 서울의 호텔과 번화가로 뿔뿔이 흩어지고 난 후엔 칠흑 같은 어둠과 끝도 없는 고요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이곳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전쟁에 가까운 장소 중 하나임을 블랙 투어리스트들로 하여금 상기 시켜 주는 존재이자 저 멀리 적국의 동태를 살피고 이상 상황을 상부로 전달하는 군인이었다.
상황병 근무를 섰어야 했던 탓에 나는 3주에 한 번 일주일간의 철야 근무를 섰어야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8시간 동안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비상상황을 대기하며 루틴한 보고를 한다는 것이 꽤나 지루하고,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나는 철야 근무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는데 야간 시간엔 상황실에 있는 TV로 YTN을 밤새 볼 수 있다는 점(비록 똑같은 뉴스가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군인에게 근무시간에 뉴스를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과 믿어질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게 떠 있는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벙커에서 벗어나 창백한 점들로 가득 찬 검은 하늘을 보면, 때론 경외에 빠지기도 했고, 때론 이유 모를 허무감에 눈물짓기도 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겨울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작은 한기들과 함께 철야 근무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며 겨우 아침을 먹고 잠이 들었다.
4시간쯤 되었을까? 노곤한 몸을 일으켜 TV를 켜자 비현실적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10년도 더 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배가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배는 아주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고 벌써 300명도 넘는 탑승객이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화면의 1/4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오늘 점심 메뉴 뭐냐? 김치볶음밥? 나 그냥 안 먹고 좀 이따 컵라면 먹을게. 중대장님이 물어보면 나 점심 먹었다고 해줘."
그렇게 다시 잠들고 일어난 후의 세상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좋아했던 심야의 YTN엔 밤새 단 하나의 뉴스만 나왔다. 그 뉴스가 비추는 그림은 항상 같았지만 전하는 희망의 말은 팽목항의 거친 파도와 함께 높아졌고, 곧 가라앉았다가 다시금 잔잔해졌다. 그리고 매일 밤 군복을 입고 TV를 보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보았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문구를 떠올렸다.
‘나라를 지키는 그대 덕분에 내 가족, 내 친구 매일 밤 편히 잠든다.’
문구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 좋아하던 밤하늘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문구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입고 있는 군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 부끄러움과 함께 다짐했다, 좋은 어른이 되기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와 지위는 갖지 못할지라도 관례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로 싸여 있는 편한 길은 거부하고 싶었다. 자기보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누군가에게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그렇게 똑똑하게 살아야 해.’라는 충고 같지 않은 충고를 듣는 어린 친구들에게 나를 보라고, 그렇게 살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책임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지목당한 자는 변명만 댈 뿐, 누구 하나 손들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소란스러운 시간을 지나 그렇게 7년이 흘렀다. 노트북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처럼 시간과 함께 빛 바래져 있었던 그 날에 대한 기억, 그리고 나의 다짐이 다시금 선명해진 것은 불과 몇 주 전의 일이었다.
대학 동기를 오래간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작은 와인바에서 만난 우리는 하는 일에 관한 얘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직장 상사 얘기, 대학 시절 추억 얘기를 거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아저씨들의 단골 이야깃거리인 군대 얘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군 생활을 했던 그 친구가 해경이었다는 것을 기억 한 귀퉁이에서 끄집어내게 되었다.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14년 4월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나눴다. 기억 속의 스물두 살 봄 앳된 그의 모습이 애달파서, 그리고 많은 세월 속에서도 아직 선명한 그의 기억이 아파서 창피한지도 모르고 많이 울었다.
그도 울었다. 구조 지원을 하러 갔을 때도,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던 그가 나의 스물세 살 봄에 대한 기억을 들으며 울었다.
운 탓에 부어버린 서로의 눈을 보며 머쓱하게 웃은 뒤, 놀릴 거리 생겼다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는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볼에 닿았고 몽롱했던 술기운이 조금씩 깨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정말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드문드문 떠 있는 창백한 별들이 참 어여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