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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J Mar 22. 2022

보통 사랑 이야기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파리의 한인 민박이었다.


28살의 나는 몇 번의 짧은 연애를 거친 후였고, 연애 감정에 휘둘리는 일이 유치하고 시시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만나 각자의 마음의 크기를 재고, 서로가 없이 지낸 시간의 길이 만큼 서로 다르게 뻗쳐 자라온 성격과 생활패턴을 다듬어 맞추는 수고를 하기에는 갓 사회에 나온 내 생활은 충분히 버겁고 회색빛이었다.

25살의 그녀는 어디에서든 돋보이는 존재였다. 온갖 나라의 엽서들이 복잡하게 붙어있던 숙소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환히 빛나고 있던 튈릴리 공원에서도, 붉은색 전구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던 샹제리제 거리에서도 복숭아를 닮은 그녀의 미소는 환하게 빛났다. 

그런 그녀가 점점 궁금해졌지만, 그때의 나는 연애가 시시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그녀는 먼저 다가와 주었다. 그녀가 런던으로 떠나기 하루 전, 에펠탑이 새끼손톱만 하게 보이던 15구의 한인 민박에서 스크린에 띄워져 있던 비포선셋을 조명 삼아 와인을 마시며 그녀는 내게 말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롯데월드타워에서 날 만나고 싶다고.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기고 그녀는 떠났고, 나는 빛을 잃어버린 파리에서 이틀을 더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친구와 한 통화에서 나는 얘기했다. “나 이제야 막 사랑을 시작한 것 같은데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어.” 

다행히도 그 해의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녀와 함께 롯데월드타워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그녀와 통화하며 늦은 밤을 보내고, 짧고 푸른 새벽이 지난 후 ‘안녕!’이라는 인사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될 때 쯤 그녀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알아갔다.

그녀가 행복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슬플 때 얼굴을 어떻게 구기며 울음을 참는지,

마냥 밝아만 보이는 그녀가 지금까지 얼마나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면을 아는 사람이 나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도 나에 대해 궁금해 했다.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상적인 일들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에 비해 내 세상은 너무나도 회색빛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내 이야기를 너무 해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지만, 나는 도무지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회색빛 이야기를 해주면, 나조차 회색빛 인간으로 보일까 두려웠다. 

그런 나의 내면을 상처를 처음으로 밖으로 꺼내준 건 그녀였다.

아버지의 빚을 받으러 가는 길에 들렀던 아버지 회사의 에어컨 하나 없던 사무실은 얼마나 초라했었던지, 사기꾼의 집 앞에서 한 번만 문을 열어달라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옆에서, 아무 말 못 하고 멀뚱이 서 있던 내 모습이 얼마나 비루하게 느껴졌는지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아 승규야, 다 괜찮아질 거야."

오빠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나를 "승규야"라고 부른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추한 모습, 숨기고 싶었던 모습까지 모두 공유하며 사랑했고, 각자의 세상을 허락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불행해하던 직장에서 나름의 인간관계를 쌓게 되었고, 인정도 받게 되었다. 그녀라는 환한 빛 하나가 비춰주던 회색 세상은, 이제 여러 색의 빛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일을 시작했고,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답답해하고 버거워 했다.

불행해하는 그녀에게 나는 환한 빛이 되어주고 싶었고, 항상 그곳에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게 금요일 퇴근 후 2박 3일 제주도로 떠나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녀가 본가인 목동으로 올라올 때면 목동으로 퇴근한 후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지쳐갔고, 노력에 대해 부족하다고만 하는 그녀가 부담스러워져 갔다. 

결국 어느 겨울날 우리는 헤어졌다. 그 옛날 디즈니 만화동산을 틀어주던 고요한 일요일 오전 그즈음이었다. “내가 옆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행복해 보여.”라는 말로 이별을 고했지만 사실은 나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냥 내가 지쳐서, 힘들어서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라는걸. 그녀라는 빛만으로 충분하던 내가, 다른 빛들로 충분해졌을 뿐이라는 것을.


그녀와 헤어지고 일주일을 앓았다. '충동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지, 지금이라도 그녀 집 앞에 찾아가서 용서를 빌면 되돌릴 수 있을지, 그 많은 추억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짜 사랑을 놓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면 천장이 낮아지고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듯, 너와 나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잘못됐을지 모르는 선택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며 그때 내가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렸다. 그렇게 일주일간 이별을 앓고 맞은 초봄 아침의 하늘은 너무나도 높고 상쾌했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내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곧 괜찮아질 거야.'


32살의 나는 몇 번의 짧은 연애와 한 번의 사랑을 거치고 더 이상 연애 감정에 휘둘리는 일을 유치하고 시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 슬프지만 추억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기억들을 쌓아 올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너와 걷던 길을 걸을 때, 너가 좋아했던 까눌레를 먹을 때, 너를 처음 만났던 파리를 TV 화면에서 만날 때 무심코 마주치는 이제는 모서리가 뭉뚝하게 닳아버린 너라는 파편들이 얼마나 고맙고, 애달프고, 사랑스러운지 32살의 나는 알기 때문이다.


"괜찮아 승규야, 다 괜찮아질 거야."

그녀가 남긴 빛이 아직 내 마음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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