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날과 다름없이 메모장을 뒤지며 생각을 정리하다 궁금증이 생겼다.
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나에게 독서라는 취미를 만들어준 사람은 누구지? 난 왜 이야기를 쓸 때 골똘히 생각하게 되지?
끝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때쯤
오래 전 부모님이 찍어주신 사진들을 꺼내 탁상에 펼쳐보았다.
18년 전, 아빠의 급작스러운 출장으로 우리 가족은 경기도 성남에서 울진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울진군이란 곳은 꽤나 조용한 곳이었다.
몇 없는 아파트가 있으며, 우리집 사택은 횡단보도 바로 앞 칼국수 맛집이 있는 곳이었다.
TV에선 빼꼼 같은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주었고, 나와 오빠는 빼꼼을 아주 좋아했다.
나의 4살때 사진을 보면 빼꼼 공연을 보러갔다 아빠가 사주신 커다란 빼꼼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몸집도 작은게 그 큰 인형을 버겁게도 안고 있다.
그 4살 아이에게 큰 인형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인형이었나보다.
기억도 나지 않는 빼꼼이 4세의 첫번째 행복이었다.
2년 뒤, 6세가 되었을 땐 빼꼼을 로션으로 뽀득뽀득 발라준 적이 있다. 그걸 보신 엄마는 깜짝 놀라셨고, 빼꼼을 바로 세탁기에 넣으셨다.
너무나 심심했다.
주변엔 놀 것이 마땅치 않았고, 기껏 해야 놀이터의 아이들과 세발 자전거를 타고 노는 것 말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심심해하는 우리를 위해 자주 오빠와 나의 손을 꼭 잡고 노음초등학교 도서관을 찾곤 하셨다.
저녁을 먹고 나면 산책 삼아 가던 곳이었다.
우리집과 노음 초등학교까지의 거리는 왕복 30분이었다.
버스도 1시간에 한대씩 다녔지만, 엄마가 곁에서 손을 잡아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차분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며 내게 말을 건네는 엄마를 쳐다본다.
주황빛 노을이 비추는 담벼락 사이를 지나간다.
오빠는 이미 먼저 학교 방향을 향해 모녀 사이를 지나쳐가고 있었다.
엄마와 맞잡은 손은 참 따뜻했다. 그리고 계속 만지고 싶은 감촉이었다.
이윽고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면 사서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당연히 방학이었기 때문이다.
잠겨있는 도서관 열쇠를 찾으러 엄마와 나와 오빠는 또다시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 벽에 걸린 나무 열쇠 걸이를 열면 도서관 열쇠가 있었다.
어느 날은 도서관 열쇠가 문 근방에 있던 때도 있었다. 이건 누군가 다녀갔다는 증표인데, 그때 그이는 누구였을지 약간 궁금해진다.
내가 기억하는 도서실은 항상 어둡고, 컸다.
오빠는 과학 만화를, 6세의 나는 동화책을 집어들었다. 도서 대출 명단에 각자 이름을 적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엄마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돌아왔다.
침대가 없던 우리 집은 오빠와 엄마와 내가 한 방에서 함께 잤다.
보들보들한 얇은 이불을 엄마가 깔아주면, 나는 옆에서 손으로 이불 펴는 걸 도왔다.
"엄마, 잠 안 와."라고 말하면
"우리 딸 책 빌린거 가져와봐. 오늘은 무슨 책 빌려왔어?"
엄마는 웃으며 내가 빌려온 책 한 권을 나와 함께 읽었다.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5분도 안되어 눈이 감겨버리고말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날이 어렴풋이 생각 나는 걸 보면, 6세 어린이는 꽤 행복했나 보다.
그 후로도 오빠와 나는 항상 엄마 손을 꼭 잡고 어두운 골목길을 자주 지나다녔고
방학이 끝난 이듬해 오빠와 나는 각 학년에서 어린이 우수 독서상을 받아왔다.
상품도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캐릭터 공책 5권과 문화상품권 1만 원은 오빠에게 주어졌고, 나는 캐릭터 공책 2권을 받아왔다.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고운 파스텔가루로 뽀로로 스케치북에 어린아이가 그려놓은 것 같은 순진한 기분이 든다.
그리곤 새하얀 지우개로 지워놓은 것만 같다. 그 뒤에 남은 건 파스텔이 지나간 자리에 벅벅 거칠게도 지워진 지우개의 흔적, 그리고 비로소 얼룩이 져버린 스케치북만 남아 있을 것 같다.
울진을 떠난 뒤, 우리는 더 이상 다함께 자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여쭤봤을 땐, 부모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아우 몰러~기억도 안난다. 엄마 바빠! 일단 끊어~"
"그런 때가 있었니? 어이구 울 딸 별결 다 기억하네~ㅎㅎ넌 작가 해야겠다!"
각자의 방에서 책 대신 숏츠와 유튜브 라이브를 보는 부모님. 방에 책을 빽빽히 두고 싶어하는 나.
점점 잊혀져가는 추억을 사진앨범과 글로 꺼내보았다.
벌어질 수밖에 없던 상황 속에서 우리 가족은 오순도순 지내며 꽤 평안한 날이 많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4세와 6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하루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설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