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back home.

이상한 하루

by arr

돌아왔다.

오전 8시.

요즘은 알람 없이 깨곤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소음에 눈떠보니 왠지 햇살이 더 잘 들어오는 걸 느꼈다.

강릉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진짜 끝인가? 일단 할 일을 해야 하니 평소보다 일찍 침대를 벗어났다.

돌돌이를 들고 양이와 똘똘이, 내 머리카락이 지나간 자리를 열심히 밀었다.

먼지가 아주 많이 묻어 나왔다.

자주 밀어주어도 먼지란 놈은 차곡차곡 방바닥에 쌓여만 간다.

이 사실을 조금은 부정하고 싶었다.

난 열심히 청소하는걸..


다음으로 못다 한 짐을 챙겼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 메는 에코백 두 개에 걸린 직접 만들었던 키링들. 기념품으로 산 강릉 샌드. 생일 선물로 받은 컵 세트.

익숙지 않은 공간에 대비해 챙겨 왔던 비상품들이 캐리어 깊숙이 들어있었다.

다행히 비상품 중 붙이는 핫팩을 가장 많이 썼다. 그 말인 즉, 비상상황에 대비할만한 일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는것. 아주 다행인 사실이었다.


비상용품들이 두려움의 무게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짐들을 가득 채우려니 기운이 빠졌다.

강릉에서 산 옷가지들, 김환기 화백 전시에서 산 L자 화일은 캐리어 깊숙이 깔았다. 위로 쌓아갈 물품이 많기 때문이다.


힘주어 옷가지들을 눌러 넣는다.

옆구리 틈에 빈 공간을 바라본다.

얼른 지퍼를 닫고 여정을 떠나고 싶었다.


오전 9시.

짐을 싼 캐리어와 짐들을 들고 가게로 내려왔다.


고모가 말씀하셨다.

"얼른 와서 밥 먹어. 너도 사리 끓인 거 먹을래? 기차가 11시면.. 짐은 다 챙긴 거지? 이따 차 태워줄게."

"네 저도 그거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최대한 공손히 웃으며 대답을 했다.


가게는 선풍기만 틀어져 있어 너무 더웠다.

반면 위층은 에어컨이 있어 콧물이 자주 났다. 무더운 여름에 콧물이 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오늘은 강릉에서 겪은 몸살과 무더위와도 이별할 있는 날이다. 그 사실이 왠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뜨거운 라면을 후후 불며 얼른 캐리어를 싸들고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넌 집가면 뭐할 거니? 엄마아빠랑 싸울 거 같으면 바로 강릉 내려와~응?"

고모부의 말에 잠시 웃음이 터졌다.

글쎄요. 일단 잠부터 잘거에요. 그리고 광주로 여행을 가고, 강릉엔 놀러 다시 올게요.

라고 생각했다.


"네ㅋㅋ 꼭 다시 놀러올게요."


10시.

정들었던 양이와 어쩌면 애증이었을지도 모를 똘똘이에게도 인사했다.

유달리 양이는 8월 새 내 방에 오는 횟수가 부쩍 늘었었다. 아마도 정이 들었을 것이라고, 고모부가 양이가 요즘 안방에 안 들어온다고 하소연하시던 어느 저녁을 떠올렸다.


먀앙-하고 우는 소리가 참 귀여운 줏대 있는 고양이.

많이 쓰다듬고, 가득 품에 안기도 했던 것 같다.

내 편애로 소홀했던 똘똘이에겐 특별히 간식을 두 개 던저주었다.

문득 똘똘이가 애견미용실에서 털을 빡빡 밀려 돌아온 날이 떠올라 너무 웃기기도 했다.

내가 떠나고 똘똘이의 기침이 잦아들었길 빈다. 또한 고모부의 어깨도 덜 뭉치길 바랐다.


부디 다들 안온하시길 바라며, 고모부께도 인사를 드린 후 나의 짐들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 10시 10분경.

고모가 태워주신 차를 타고 강릉역 KTX에 내렸다.

태워주고, 일하는 동안 봐주신 고모께 크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고모!"

"그래 전화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강릉과 헤어졌다.

기차를 기다리며 잠시 매점에 들러 음료를 사며 여유로움을 간만에 느꼈다.

드디어 혼자다. 그토록 바라던 혼자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몇시간 남지 않았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연락도 하고 싶었다.

저번에 지운 인스타그램도 다시 깔아버렸다.


양이 사진 한 장. 기차에 오르며 딱 하나를 스토리에 올렸다.

내 옆엔 이름모를 남자 한분이 탔다.

피곤한지, 타자마자 눈을 감고 주무시는 것 같았다.


동시에 나도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집에 가면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계획한 여행 짐을 먼저 싸야지. 강릉샌드도 부모님께 드리고, 아 민생 지원금도 써야지. 라며 온갖 말을 상상하며 잠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울진을 지나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살았을 울진을 어렴풋이 반가워하며 지나치는 풍경을 감상했다.

언젠가 울진도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비로소 내가 해외 대신 국내를 더 많이 다니고 싶은 이유를 찾는다. 아직 못가본 국내가 많이 때문일 것이다.


여유로이 기차역에 도착해 커다랗고 버거운 캐리어를 낑낑대며 내려놓았다.

기차역엔 엘리베이터가 멀리 있었다. 아득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또 다시 낑낑대며 마지막 기차역 계단을 내려간다.

아주 익숙한 도시. 낯설지 않은 곳. 나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하루바삐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공동현관 비번 뭐였지?"

외로움의 2025년 끝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25.8.31. 알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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