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재해석

계절의 상상

by arr

봄, 여름, 아니 어쩌면 벚꽃이 새록새록 피기 시작할 무렵의 버스 안에서 느낀 기분이 있었다.

유기된 고양이들이 지내고 있는 우리 동네 보호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바로 전 날 많은 생각들 때문에 잠을 설쳐 내 몸은 한껏 피곤해진 상태였지만,
고양이의 부드러운 감촉과 헤드번팅 덕분에 기분은 한결 가볍게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햇볕이 드는 창가에 기댄 채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을 보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다음 목적지를 알리는 신호만 흐르고 있었다.
내가 앉은자리의 창문을 열면 정말 시원할 것 같았다.
내 자리 앞뒤로 사람이 너무 많아 창문을 열진 못했다.

때마침 버스에 신호가 걸리는 틈이 생겼다. 그 덕에 복잡한 생각을 미뤄두고 창밖을 마주 볼 여유로 넋 놓고 밖을 보았다.
창밖에 비친 가게 앞 누군가 버린 듯한 망태기 하나가 나무에 등을 기대 차분히 놓여있었고
이 날은 왠지 빨간 망태기가 아니라 잔뜩 심술이 난 빨간 파프리카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몸 구석구석에 구멍은 숭숭 뚫려가지고는 정말 못생겼었다.

쓰임을 다해서 저기 앉아있는건가.

저기에 눈, 코, 입 만 달면 감정이 살아있었으려나.

그럼 곧이어 쟤를 담아갈 커다란 트럭 차가 올 수도 있겠네.
신호를 기다리며 묵묵한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 날 보고 웃으라고 트랙을 설치해 둔 것만 같았다.

에이, 그럴 리가 없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입에선 넌지시 웃음이 났다. 동시에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그날의 하루 끝에 웃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끔 내 감정을 이해 못 할 때가 있다.
이건 내 육체가 멈춘 건지 아니면 생각이 멈춘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털레털레 웃어버렸다.
지금 허탈하게나마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한편으론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그 상태로 두기로 한다.


피식피식 삐져나오는 웃음을 눈치 못 채는 사람도 있을까? 아직 23년을 살아오며 만나보지 못한 세계가 적어서 이렇다 할 확답을 내리진 못하겠다.
대신 재해석을 해보기로 했다. 재해석. 완성된 작품을 보고서 제각각의 자유로운 의미로 마음에 담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재해석이란
이쪽으로도 해보고 저쪽으로도 해보는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에 맡겨진 것.


요날의 재해석 대상은 빨간 망태기였다.
내 기분대로 뒤바꾸어 재해석해 보았다.
혼자 상상해 보는 거지만, 이것이 도움이 될 때가 꽤 있다. 내게는 혼자 피워내는 상상도 참 소중하다.

느리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면 내 스스로 웃음을 짓지도 못하지 않았겠나.

빠르고 정신없이 굴러가는 하루도 좋지만 한 번쯤 느리게 쉼을 즐겨보는 하루도 꽤 황홀하다.
암. 그렇고 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도하지 않은 걸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