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하지 않은 걸 해보았다

by arr

혼여가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강릉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치이고, 말에 치이고 여러모로 시들어가는 동안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일하는 중에는 당연히 떠날 수 없기에 휴일을 노리기로 했다.

일명 INTJ의 차례 세우기!로 해두겠다.

1. 광주 혼자 여행을 계획하기로 했다.

이건 나와의 약속이자 부모님께는 죄송한 약간의 반항이다.

제발, 20대에 한 번이라도 목적 없는 국내여행을 다녀보고 싶었다.

동행자가 없으며, 행선지의 선택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여행. 나와 깊게 얽매이는 여행만을 해보고 싶었다.

혼자 도착해 느끼는 것과 타인과 도착해 느끼는 건 얼핏 비슷하기도 할 테지만 분명 다른 설렘과 떨림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고 다닐 책과 함께 도착한 곳에선 새롭게 써질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서자 곧바로 버스표와 숙소를 예약했고, 퇴근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사랑하는 딸~집이야~?"

"응 엄마. "

곧장 본론을 꺼내기 전 엄마를 약간 떠봤다.

"나 할 얘기 있는데. 엄마가 싫어할 내용일 것도 같아. 해도돼? 큰건 아닌데, 그냥 미리 말하는게 나을거같아서 전화했어요."

"왜 뭔데~ 괜찮으니까 말해봐."

"나 일 끝나면 여행가려고. 국내로 혼자. 아직 해외는 내 레벨이 아닌 것 같고, 엄만 나혼자 어디 가는거 걱정하잖아요. 그래서 미리 걱정시키는거야. 일하면서 은근 스트레스도 쌓였고..머리도 좀 식히고 싶어서 혼자 가려는거에요."


내가 전화를 걸자 엄마는 지금 통보하는 거냐며 웃음을 지으셨다.

그럴 것 같았다고 말하는 엄마를 느낀다.

목소리 너머로 약간의 안도와 여전한 엄마 생각을 하며 본집에 없는 동안의 엄마아빠를 듣는다.


내 전화를 기다렸을 부모님, 혼자 떠나는 딸을 배웅하는 아빠. 그리고 같이 바래다주러 온 우리 엄마.


2025년 8월 비 안오는 무더운 여름.

처음으로 해보는 일 중 첫 번째였다.


2. 혼여 다니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사진 부탁을 하지 못할 땐, 평평한 벽화에 휴대폰을 기대서 찍기도 하는 것 같다.

유튜브의 그이들은 혼자 사진도 잘찍는다. 구도도 바르게 각져있으며 찍는 방식도 독립적이다.

'나도 혼자 사진 잘 찍고 싶다..' 생각만 하다 예뻐 보이는 골목의 담벼락 사이를 거쳐 혼자 사진을 찍어보았다.

처음이다.

한 번도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즉흥적이었고 어떤 구도로 찍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해버렸다. 순간에 충실한 채 시도를 해보았다.

결과물은 어정쩡하게 나왔다. 구도도 이상했고 내가 땅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지워버렸다.

그래도 재밌었으니, 되었다. 시도는 또 하면 되니까 넘기기로 한다.

기분 좋은 마음을 뒤로한 채 다음 행선지인 '무명극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혼자 도피할 공간을 찾다 제훈 씨네 유튜브로 처음 알게 된 다락방 영화관이다.

3.

단편 영화를 관람한 뒤 무명의 감성을 즐겼다.
해본 것도 반복해보았다.

방명록 쓰기.

처음인 곳에 도착해 나의 마음을 남기는 것이 소중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이름모를 사람들이 무명에 남기고 갔던 이야기의 사정도 어렴풋이 상상해본다.

도통 모르는 사람들의 글씨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창작자를 만나는 것과 같았다.

타인의 글에서 얻는 색다른 감각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홀로 미소를 지었다.

여운에 잠시 잠겨있다가, 같은 영화를 본 관객분과 같은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풍파에서 긴장을 느꼈다.

그것은 '초면의 두려움'이자 '모름의 궁금함'이다.


내 기록에 여력을 다한 뒤 그 분의 집중을 보았다.

무명극장에서 제공되는 시원한 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차갑고도 씁쓸한 맛이었다. 왠지 건강해 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집중의 소중함을 알기에 조심스러웠지만, 말 걸어볼 타이밍을 살펴보며 작은 목소리로 먼저 말을 건넸다.


"저기.. 혹시 말 걸어도 괜찮을까요?ㅎㅎ"

"아..! 네 괜찮아요!"

"한번 말 걸어보고 싶었어서요..! 혹시 아까 단편영화 어떠셨어요?"


짧은 단편 영화의 감상을 조곤조곤 나누었다.

나와 비슷하게 느낀 것도 있었고, 다른 점도 있었다.


"저는 조금 어렵긴 했는데, 전 독립영화를 처음 보는 거거든요"

"정말요? 저는 좋아하는 배우가 있어서, 배우 취향이랑 비슷하게 이 영화 저 영화 다 찍먹 해보다가 이젠 스스로 독립영화관 찾아다니고 있어요ㅎㅎ"


영화관 방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이야기가 이어지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의 꿈인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는 말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꿈과 습관 덕분에 1시간가량 꽉 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영화 이야기, 여행 이야기, 글 이야기, 책 이야기, 고민의 이야기 등등..


처음 만난 분과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말 걸어 보고 싶은 상대에게 대화를 시도한 것도 올해 들어 처음이다.

대학생 때 경험해 본 처음이니, 이번인 두 번째인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많이 만날 것이다.

뜻하지 않아도 마주하는 상황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려움을 편안함으로 만드는 것도 재량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번, 아니 여러 번이라도 처음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에 맛있게 먹었던 롯데리아로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왠지 진하게 기록을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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