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태양이 폭발해도 8분 동안은 그걸 알지 못한다.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8분이 걸리니까. 8분 동안은 세상이 여전히 빛날 것이다.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다. 아빠와 함께 보낸 8분의 시간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더 리더를 연출했던 스티븐 달 드리 감독의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으며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버지의 죽음 후 1년 뒤, 유품을 살피던 중 우연히 발견한 열쇠 그리고 Black이란 단어가 적혀 있는 쪽지 하나를 가지고 아홉 살 오스카는 매일 아침 여정의 기로로 걸음 한다. 열쇠의 비밀을 풀기 위해 도시의 수많은 Black 씨들을 찾아가 만날, 다소 무모한 생각을 한 아이는 또래보다 감정이 섬세하고 똑똑하며 말이 많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트라우마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는 오스카에게 도시란 크고 넓으며 위험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 아이가 여행을 위해 탬버린을 손에 쥐고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토록 두려워하던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아직 거대한 상실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슬픔의 크기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슬픔과 공허에 공감을 할 수는 있지만 완벽히 동화되었다 자신할 수 없다. 나는 그 사실과 감정 자체를 어렴풋이 예상만 할 뿐. 나는 타인일 뿐이고 아무리 그들의 감정에 동요한다 한들 당사자의 마음만 못하다. 어쩌면 ‘슬프다’라는 걸 인지하는 게 공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가 밀물이라 믿었던 감정이 기어코 눈앞으로 닥쳐왔을 때, 그것이 밀물이 아니라 해일이었음을 깨닫고 다급히 출구를 찾으려 헤매기 마련이었다. 오스카 또한 그랬다고 믿는다. 예고도 없이 마주쳐 버린 해일을 이겨내기 위해 헤엄을 쳐야 함에도 아이는 어떻게 발을 구르는지, 팔을 휘젓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슬픔에도 5단계 과정이 있다고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짐작하건대 이 영화는 아이가 다섯 번째 단계인 ‘수용’으로 가기까지의 경로를 독특하고 따스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영화는 때마침 집이 빈 새벽, 침대 위에 홀로 앉아 와인 한잔을 곁에 두고 시청했다. 이렇게까지 감정 소모가 있는 영화일 줄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을 했던 것인데 엔딩을 향하는 그 길 속 군데군데 숨어 있는 감정의 폭발 장면들이 세세하고 격정적으로 표현되어 덩달아 전이를 느끼곤 했다. 특히 오스카가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사는 할아버지에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 오스카와 엄마 사이의 균열이 ‘쩍’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고야 말았던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블랙 씨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말하던 장면에서 훌쩍거렸다. 영화에는 소소한 반전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따로 언급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30년을 살았지만 때로 화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눈물은 어떻게 참아야 하는지 헷갈리곤 한다. 가끔은 누군가 내 감정에 공감을 해주길, 어떤 날은 모른 척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확신한 것은, 거대한 슬픔은 나누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커다랗고 무지막지한 슬픔을 토해내고 끊임없이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상실 앞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소통함으로써 기어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인내하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며 어른으로서의 자세는 아닐 거라 믿는다. 우린 때때로 울어야 한다. 눈물이 이불을 적시든 말든, 코가 빨개지든 말든……. 그렇게 성장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