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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29. 2021

대체 미쳤다는 게 뭘까

<F20>


2주 전, 공짜 영화 관람권이 생겨 극장에 다녀왔다. 봐야 하는 영화는 정해져 있었고, 영화의 내용은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 단지 관람권을 준 지인과의 대화에서 얻은 힌트는 조현병 환자, 혹은 가족들이 영화 상영 금지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병에 걸린 환자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그로 인해 ‘혐오적인 시선이 생길 우려가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영관에 들어서자 텅 빈 좌석들이 줄지어있었다. 가장 중앙 자리에 예매를 한 탓에 그곳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그 누구도 입장하지 않았다.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광고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의 걸음은 반복되지 않았다. 다행히 영화 시작을 알리며 어둠이 시작됐을 때 누군가 입장해서 으스스하고 이상한 기분을 깨트릴 수 있었다.


간략한 스토리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애란의 아들인 도훈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도훈은 7개월 전 조현병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다 상태가 호전되어 귀가한다. 하지만 애란은 사람들의 시선을 인식해 이웃들에게 대학생인 아들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하러 갔다’고 둘러댄 상태였다. ‘조현병’ 이란 병은 간혹 뉴스에서 범죄 관련 보도를 듣다 보면 흔히 언급되는 병명 중 하나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부정적인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한다. 실제로는 약물 치료로 관리가 가능하고, 관리가 잘 되면 일상생활도 일절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 애란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건 그녀 자체가 아니라 사회와 편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 초반부만 해도 애란을 이해했다.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건 경화가 애란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주민들은 아파트에 웬 미친놈이 이사를 왔다며 수군댄다. 경화는 7개월 전 울고 있던 애란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 사람이자 조현병 환자인 아들을 더 오랜 시간 돌보며 애란을 전적으로 포용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길 고양이가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잔혹한 수법과 행태에 주민들이 동요하고 모든 의심의 눈초리가 조현병 환자라고 ‘알려진’ 경화의 아들, 유찬에게 쏠린다. 아니, 그건 의심이 아닌 확신이었다. 사람들 틈에서 아들과 살아가기 위해 경화는 입주민 회의에서 무릎까지 꿇었고, 그런 그녀를 애란은 외면하며 개인적인 친분조차 숨긴다. 이후 극이 진행되며 애란은 경악스러운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 부분에서 연출진과 배우 모두 합심하여 이 인물이 받는 심리적 압박감을 소름 끼치게 묘사해내 보는 나까지도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는 듯했다. 서서히 목이 졸리듯 감정이 졸리는 걸 어쩜 그렇게 연기로 풀어냈는지.


영화가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조장했을까. 글쎄. 그렇다고 자극적인 스릴러물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병명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었다고 본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와 내가 이해한 바가 다른 것일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대중이, 혹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편견이 어떻게 개인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가는지 적나라하게 목격한 기분을 느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혐오스러웠던 것은 조현병 환자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괄시와 증오를 퍼붓는 주변 인물들이었다. 주인공인 애란의 경우, 사건 해결을 위해 유찬을 이용하려는 모습에서 경멸스럽기 그지없었는데 그러한 조급함의 이유가 사회가 정해둔 정상 궤도 안에 머물기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면 약간의 동정심이 생긴다. 하지만 그녀를 마냥 불쌍히 여기고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홀로 진창에 처박힌 게 아니다. 그녀를 믿고 의지하던 이들까지 끌고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거짓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진실을 밝히는 순간 동경의 대상이었던 명문대생 도훈이 한낱 ‘미친놈’으로 전락할까 봐. 애란은 꾸준히 경화에게 말한다. 우리 애는 유찬이랑 달라. 그 말은 그녀의 속임수가 들통나지 않을 때만 지속될 수 있다. 삐뚤어진 모성애란 타이틀로 그녀를 정의하기에, 그녀는 이름 모를 어떤 현대 사회인들과 닮아있었다. 정상과 비정상. ‘전형적인’에 해당하는 기준은 누가 세우는가. 우리는 정상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흔히 비정상의 범주에 속한 이들을 향한 혐오는 우리 일상 속에 녹아있다. 조현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무 이유 없이, 혹은 갑작스럽게. 영화의 종지부는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난 후 또다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며 끝난다. 그들이 범인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단지를 떠났음에도 말이다. 자, 그럼 이웃들이 말하던 ‘미친놈’은 과연 누구인 걸까. 내게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다. 이러한 나의 의견이 혹여 공감의 부재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 본 영화는 KBS 드라마 스페셜의 확장판인 TV 시네마에서 선보이는 첫 작품이었다. KBS에서 진행하는 시네마 프로젝트의 시작. 원래 극장 상영 후 10월 29일 티브이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장애인단체의 상영 중단 요청이 촉구되어 편성이 해지됐다고 한다. 관련 기사를 보다 단체가 우려하고 불편해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가 이해할 수 있어 일부 옮겨본다.


단체들은 “조현병 진단코드 ‘F20’을 제목으로 삼았고 공영방송에서 제작했다면, 영화로 인해 조현병에 대한 차별·편견이 확산되지는 않을지 신중했어야 한다”며 “영화는 현실보다 더욱 자극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해 묘사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의 편견을 강화한다”라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영화에서 조현병은 시종일관 공포 유발 장치로 사용된다”며 “영화 곳곳의 구도, 장면, 음악, 효과가 조현병과 조현병 당사자를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영화의 주요 사건에서 범인이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모두 조현병 증상을 지닌 사람들”이라며 “조현병 증상을 위험한 사건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 인자로 묘사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전달하는 부분이 많다”며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은 이 영화를 보며 비하적·경멸적 표현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된다”라고 비판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6679.html#csidx7e3476489e62aba9f837deac211c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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