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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Nov 07. 2021

나 이런 세계관 좋아했네

<듄>


2주 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을 관람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 중 ‘그을린 사랑’과 ‘컨택트’를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이번에 개봉한 <듄> 또한 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충동적으로 티켓을 예매했다. 밤 9시 20분. 아이맥스 상영관 중앙 자리는 저녁 7시에도 빈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 사이드 좌석을 골라야만 했다. 나와 삼월 둘 다 아이맥스는 처음이었다. 상영관에 들어가 보니 일반 스크린보다 사이즈가 훨씬 거대하더라. 러닝타임이 2시간 35분짜리라 퇴근 후 보기에 부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소 지루하다는 평이 많아 걱정도 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잠을 자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 <듄>은 1965년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1984년 데이비드 린치가 처음 영화로 선보였다. 2021년 드니 빌뇌브 손에 맡겨져 세련되고 고혹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개인적으로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고요하지만 폭풍 같은 메시지를 발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극장에서 보고자 욕심을 냈던 것이다. 세계관에 대해서는 영화를 보고 돌아온 후 정보를 찾아봤기 때문에 관람 당시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장르는 세계관의 장벽 때문에 자주 보지 않는지라 내레이션에서부터 등장하는 낯선 이름들이 혼란스러웠다. 영화는 우주 행성을 배경으로 스파이스라는 물질을 둘러싼 종족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코리노 황제,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갈등. 그리고 배신. 내가 주목했던 건 폴의 어머니 제시카가 속한 베네 게세리트라는 집단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인류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을 가진 초인적인 집단으로 여성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 세력이다. 이들의 능력 중 하나가 자신이 낳을 아이의 성별과 임신 시기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제시카는 본래 딸을 낳아야 했지만 후계자를 원하는 레토를 위해 일부러 아들을 낳았다.- 단편적으로 본다면 베네 게세리트는 비밀 조직으로서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나,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듄의 세계관 속 여성은 구원자나 영웅이 될 수 없다. 단지 구원자를 낳을 수 있을 뿐. 지금의 우리 여성들은 왕을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왕이 되고 싶지. 원작이 창작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으므로 이러한 부분은 관대하게 넘어가야 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태어난 폴이 우월한 능력을 가진 퀴사츠 헤더락으로서 아라키스에서 구원적 존재로 어떻게 각인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광막한 우주. 건조하리만치 메마른 사막. 스크린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만큼 풍경과 인물이 세밀하고 선명했다. 특히 폴 아트레이데스가 암살 벌레를 맞닥뜨렸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빛이 폴의 눈동자를 비추고 그림자가 그려낸 윤곽을 넋을 놓고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화면을 통해 감독이 갖고 있는 배우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실감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티모시 샬라메처럼 병약하고 퇴폐적인 이미지의 남자 배우에게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서 처음 봤던 그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이미지와 변함이 없었다. 바람이 불면 공기 중에 힘 없이 부유할 것만 같은 유약함. 소년처럼 마른 몸매에 짙게 내리 깔린 눈꺼풀. 그렇기 때문에 귀족 가문의 도련님 ‘폴’은 티모시 샬라메 그 자체였다. 솔직히 그의 연기력에 대한 불신이 있었는데, 극 중 대모로부터 테스트를 받을 때 그가 고통을 참기 위해 목에 세운 핏대와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요즘 할리우드의 모든 대본이 이 남자에게로 향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것 같기도.  


감독이 CG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고 하던데, 장면의 배경으로 깔리는 자연의 풍경들이 경이롭다. 카메라를 따라 선명하고 광활한, 건조하고 무모한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대로 삼켜질 것처럼 묵중하고 위압적이다. <듄>은 영화라기보다 웅장한 음악이 나오는 갤러리를 한 바퀴 돌고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만큼 청각과 시각을 고루 만족시켰다. 원작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촘촘한 세계관으로 짜여 있어 2시간 35분이라는 동안 관객을 납득시키고 서사를 설명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던 듯해 엔딩을 보고 나오는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다른 영화들과 달리 처음과 끝이 한 편에 담겨 있지 않고 오로지 처음만을 서술하다 끝이 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끝을 알기 위해서는 2023년 개봉하는 두 번째 이야기를 꼭 봐야 한다. 무조건 아이맥스로. 지금은 이터널스 때문에 내려갔다고 하니 안타까워 죽겠다. 이럴 수가. 



샬라메보다 아이작에 관심이 가던 나. 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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