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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an 25. 2022

언제쯤 백조가 될 수 있을까

초보 운전자의 넋두리 


카페에서 글을 쓴다. 오는 길에 차가 많이 막혔다. 그런 정체 구간은 운전을 시작하고 난 뒤 처음 겪었다.     


차를 산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다. 첫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건 2012년. 이십 대 초반,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갈 때 어떤 자격증이든 따 놓아야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갈 때 따면 무얼 하나. 머리가 빙빙 돌 때쯤 운전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차량 구매 비용 중 약 600만 원을 아빠가 지원해주셨고, 나머지 금액은 할부로 삼월과 갚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문제는 운전이었다. 사설 연수 업체에서 10시간 일대일 강습을 받았다. 10년의 묵은 시간이 10시간 만에 사라지는 기적은 없었고, 지금은 조수석에 삼월을 태우고 그녀의 도움 하에 핸들을 돌리곤 한다. 삼월은 차를 사기로 마음먹은 때 타이밍을 맞춰 면허를 취득했고 바로 차를 운전해서 그런지 실력이 출중하다. 본래 순발력이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이라 금세 솜씨가 늘더라. 더불어 이제는 운전이 재미있다고 한다. 주말이면 어디든 나간다. 포항, 김해, 혹은 기장이나 송정. 그 덕에 나도 고속도로 주행을 얼렁뚱땅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내 주행은 쉽사리 용기가 솟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출퇴근을 해야 차를 산 보람이 있을 텐데 말이다. 길이 복잡하고 운전자들의 인내심이 모자라기로 소문난 부산에서 초보 운전자들은 정글 늪에 내던져진 토끼 신세가 된다. 앞뒤, 좌우 전부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짐승과 사냥꾼들 천지다.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앉아 차를 얻어 타고 갈 때는 몰랐는데, 운전자들은 마치 백조와도 같아야 한다. 차가 부드럽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운전자들이 바쁘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방지턱 앞에서는 브레이크를 살며시 밟았다가 떼어야 하며 커브를 돌 때도 브레이크와 엑셀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그것 또한 단계를 정해 은근하고 유연하게 밟아야만 차도, 동승자도 편안히 동행할 수 있다. 그러나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감각은 도무지 익혀지지 않고 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돌리거나 덜 돌려야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는다. 달리는 와중 사이드미러를 볼 때면 차라리 내 눈알이 카멜레온처럼 돌아갔으면 싶다. 내비게이션이 아무리 친절한 음성으로 상세히 안내를 해 주어도 경로를 이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와 함께 정지선을 출발한 차들은 쌩쌩 잘만 달려 나가는데 나는 시속 50km만 넘어도 추락하는 비행기 조종사처럼 벌벌 떤다. 이로써 근 3년 만에 인생 최고의 시련 리스트가 업데이트되었다. 운전대를 쥐고 집 주차장을 나가 햇빛을 보는 순간 엄동설한에 맨발로 쫓겨난 기분을 느낀다. 뒤에 노란색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였음에도 냉혹한 대부분의 차들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초보’라는 타이틀은 나를 도로 위 약자로 만드는 것만 같다. 사회에서 약자를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더라. 양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만만하다고 내 앞으로 끼어들기 위해 줄을 선 차 무리를 보면 억울해 팔짝 뛸 노릇이다. 그 상황에서 뒤차들은 껴주지 말라고 클락션을 울린다. (저도 끼어들기 맛집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요.) 게다가 부산 운전자들은 깜빡이를 켜지 않는다. 깜빡이를 켜면 타지 사람이라고 되레 더 속도를 내고 달려온다나 뭐라나. 이 거지 같은 부산 도로에서 운전을 시작하게 됐으니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달릴 수 있겠다고 위안하는 수밖에. 무조건 해야 는다고 먼저 운전을 시작한 사람들이 첨언한다. 과연 언제쯤? 계속해서 위축된다. 덩달아 자책을 한다. 못 하니까 하기 싫다. 내 손과 발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세상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스스로가 못나 죽겠다. 이 시기는 언제 지나갈 것인가.  

 

뜬금없이 차를 사게 된 계기는 먼저 운전을 시작한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나는 줄곧 차를 사자고 삼월에게 언급을 해왔으나,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삼월은 귀를 굳게 닫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차 알아볼까? 나, 면허 딸까? 하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베리 자매들과 밀양에 다녀온 날 저녁이었다. 베리는 말했다. 이 전에는 멀리 나가고 싶어도 차가 있는 이에게 의지해야 했던 반면,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한 후부터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자유로워졌다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삼월은 그 문장에 꽂힌 것이다. 처음에는 낮게 잡아 500만 원짜리 중고 경차를 사려고 했다. 부모님과 의논을 하면서 결론의 방향이 바뀌었다. 우리 부모님은 돈을 보태줄 테니 새 차를 사라고 하셨다. 요즘이야 인터넷으로도 중고차를 볼 수 있다고는 하나, 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가 행여 하자 많은 차를 사게 될까 염려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새 차를 구매하기로 마음먹고 우리는 차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운전 경력이 오래된 회사 대표님, 그 외 직원들에게 조언을 구했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보태줄 것도 아니면서 ‘거기서 더 보태면 00 산다.’ 같은 말을 일삼았다. -중고차에 관해 물어볼 때도 그러하였다.- 그러다 볼보까지 갈 뻔.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얻은 승용차에게 우리는 발 족 한자를 써 ‘足足’이라 이름 지었다. 확실히 차가 생기고 난 후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문화생활도 자유로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퇴근 후 내키면 광안리 바다를 보러 달려갈 수도 있고 조금 더 먼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기는, 자유를 능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터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나아지기까지 많은 갈등을 수반한다. 스크래치는 각오해야 한다.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직접 밟아보고 돌려보고 확인해야 한다. 가령 운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길만 가면 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끝으로 4일 동안 방향지시등 조작도 헷갈리고 차량이 우측통행인지 좌측통행인지도 몰랐을 만큼 무지했던 나에게 기본을 교육해준 강사님과, 현재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봐 주고 도와주는 삼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 전쟁 같은 운전........


나 자신, 그리고 전국의 많은 초보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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