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에 관하여
고양이 발목을 잡아본 적이 있는가.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 잡아도 한참 공간이 남을 만큼 얇다. 이 작은 발로 어떻게 걷고 뛰는지 궁금할 정도로, 자칫 잘못해 힘을 주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질 것만 같다. 고양이를 품에 안아본 적은 있는가. 한 팔로 등을 감싸 안으면 꼭 아기를 안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말랑하고 작다. 그때마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용광로처럼 뜨거운 무언가 솟아나는 것만 같다.
고양이 학대 사건은 꾸준히 발생해 왔다. 가해자들은 그 작은 생명체들을 안아보긴 했을까. 가장 최근 발생한 학대 사건들로 하여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들은 더 이상 어떤 대상을 향한 혐오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혐오는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동물, 노인, 어린이, 여성, 장애인. 인간이 인간을 혐오할 권리는 누가 부여했을까. 요 근래 일어난 두부 학대 사건부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난 1월 26일 창원 대방동에서 20대 남성에 의해 두부라는 고양이가 살해되었다. 가해자는 식당 앞에 있던 두부의 꼬리를 잡아 여러 차례 휘둘러 내리쳤다. 고양이의 비명을 들은 식당 손님들이 뛰쳐나와 현장을 목격했으며 그는 그럼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고양이를 바닥에 내리쳤다. 목격자가 소리를 지르자 사체를 버리고 사라졌다. 저녁 7시 30분경, 해가 채 지기 전이었으며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3년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두라는 고양이가 살해당했다. 두부와 자두 모두 돌봐주던 사람이 있던 고양이들로 사람들에게 경계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범행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선 길에 사는 고양이에게 밥이나 간식을 챙겨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서. 오히려 경계가 생존이므로. 나조차도 길을 가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다가오는 고양이를 만나면 반갑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애초에 학대를 가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않았을 일이다. 어느 대학교 커뮤니티에서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고양이들을 다 잡아다 산골에 버려버리겠다는 협박성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교대에 다닌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생명 경시를 전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치가 교사가 되어 과연 아이들에게 이해와 포용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부 사건의 범인 검거 계기 또한 국민청원으로 관심을 얻으며 대선 후보가 직접적인 언급을 하면서부터 적극적인 수사에 돌입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범인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사건 경위와 추가 범행 등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경찰이 범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창원지방 부장 판사는 ‘주소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으며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영장을 기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풀려나 변호사를 선임했다. 범죄 심리학자들이 지적했듯 잔혹한 동물학대 범죄는 동물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제재되지 않은 폭력의 칼날이 더욱 매섭게 갈아지고 난 뒤, 칼 끝은 과연 누구에게 향할까. 사람이 아니리란 보장이 없다. 언제까지 예비 범죄자들을 방임할 것인가.
이런 기사들을 보고 우리 고양이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 눈에는 한 없이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생명들인데 누군가에게는 불에 타 죽어도 상관없는, 바닥에 머리가 깨져 죽어도 상관없는, 단지 죽어 마땅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친다. 그들의 혐오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혐오를 수단으로 산토끼를 잡으려는 정치권만 하더라도 이미 혐오가 단지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떠들어대는 그 혐오가 어떤 이들에겐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최근에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에서 고양이를 잔혹한 방식으로 학대하는 행위를 촬영해 영상과 사진이 올라와 동물권 단체에서 고발을 한 상태이다. 고양이를 포획해 산 채로 불태우거나 토치로 얼굴을 지지는 등 행태가 끔찍하다. 익명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안다. 그들은 열등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인정은커녕 무시받으며 그렇게라도 자신이 강자임을 확인하고 싶은 낙오자들일 것이다. 실상, 정말 강한 자는 약자를 학대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행위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치졸하고 보잘것없는 자인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약한 생명을 죽여 얻는 것이 무얼까. 내 머리 옆에 달팽이처럼 몸을 말고 잠을 자는 고양이들을 보며 생각해본다. 태초에 자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었건만 인간은 왜 모든 생명 위에 군림하려 드는가. 성선설과 성악설, 무엇을 믿느냐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테지만 이토록 악한 인간들은 법과 제도로 다스리는 것이 최선임을 안다. 이 세계의 어른들이 미처 빛이 들지 않고 외면당하는 가장 밑바닥, 즉 그늘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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