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사람이라면 취미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의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꿈을 꾸게 할 수도 있다. 내가 선호하는 취미생활은 주로 앉아서 하는 것들이 많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최근에는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5일을 책상에 앉아 화면을 보며 일하는데 주말까지 그럴 수는 없어 신체활동 한 가지를 내 삶에 두고자 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했는데, 얼마 가지 못했다. 몸이 개운하고 잠이 잘 오긴 했지만 문제는 내 끈기였다.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요가매트를 펼치기도 벅찼다. 하루 종일 인간을 기다렸을 고양이들을 돌보고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나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했던 것이 오히려 고갈을 가속시켰고 조금씩이라도 요가를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 중 새로이 흥미가 생긴 운동, 등산이었다.
지난달 친구들과 갔던 전주 여행이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대학 동기이자 첫 직장의 동료들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라라다. 어쨌거나, 스무 살 적부터 알던 친구들이 삼십 대가 되었으니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바뀌기 마련이었다. 대화 중 80%는 건강에 관련된 이야기였고, 우리 중 하나가 대뜸 겨울에 한라산을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나는 제안을 받은 쪽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동공을 바삐 굴렸다. 등산은 자신이 없는데. 내 시큰둥한 반응에 그들은 재촉을 하지 않았지만 집에 갈 즈음되니 큰 도전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리 연습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물며 나조차도 믿지 않았을 테지만. 한라산을 등반하자는 이야기는 일전에 삼월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절대 싫다며 단칼에 거절을 했기에 집으로 돌아와 겨울에 한라산을 가기로 했다는 나의 말에 삼월은 마음이 쓸쓸하다는 표현을 했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어디선가 무기력하게 숨어 있던 도전 의식이 샘솟은 건지 큰 목적 없이 흘러가는 나의 시간과 나이가 아깝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던 건지. 살면서 느낀 거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다음 스텝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된다. 그 사실을 자주 잊긴 해도, 간혹 떠오를 때가 있다. 해낸다는 것. 무엇을 이룬다는 것. 작은 성공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나의 시간 위에 내리 적힌다면 거창하게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는 없을지라도 먼 미래에 돌아보면 보람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어릴 적부터 잘 넘어졌다. 무릎이나 팔꿈치에는 아스팔트나 흙바닥에 미끄러져 생긴 흉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내가 달리거나 빨리 걸을 때 넘어진다 조심해라 걱정을 한다. 민망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계단, 이가 빠진 보도블록에 걸려 나자빠지거나 비가 오는 날 엉덩방아를 찧거나 책상이나 온갖 모서리에 부딪혀 멍이 드는 일이 잦다. 산은 특히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많고 낯선 환경이기 때문에 다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운동화를 신고 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막상 매장에 가 등산화를 신으니 왜 어르신들이 외출 시에도 등산화를 신는지 알게 되었다. 가볍고 발이 편하다. 더군다나 비스듬한 바위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첫 등산은 집 근처 금정산.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삼월과 삼월의 아버지와 함께 했다. 트레이닝 바지에 통기성이 좋은 기능성 긴팔 티(등산화 살 때 같이 구매했다), 목에 연보라색 수건을 둘렀다. 배낭 안에는 시원한 물과 달달한 빵을 챙겼다. 알고 봤더니 금정산이 부산에서 꽤 유명한 산이더라. 독특하게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산. 케이블카를 타면 남문까지 힘을 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어서 시민들이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쉬러 왔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가장 아래에서부터 봉우리 하나까지 무작정 걸어갈 계획이었다.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타는 이유가 있었다. 남문에 도달하기까지 가파르고 험준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사무실에 종일 앉아 있는 것도 모자라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몸이 거의 순두부처럼 물렁해진 상태였다. 처음이니만큼 둘레길 산책 정도의 레벨을 원했건만 본의 아니게 가파른 바위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돌계단을 올라야 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대로 가다간 흉부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체력의 한계까지 다다른 게 언제였던가. 약 8년 전 P.T를 받을 때? 그땐 타의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물론 내 의사로 돈까지 지불한 거지만) 이를 악물고 했었다. 그와 달리 등산은 오로지 내 의지로 목적지까지 가야 했다. 누군가의 셈에 맞춰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디딜 곳을 찾아 밟고 잡고 힘을 주어 나아가야 했다. 그러던 중 평지가 나오면 살 것 같았다. 숨통이 트이고 맑은 공기를 실컷 들이마실 수 있었다. 올라갈 때는 곧 숨이 멎을 것처럼 힘들더니, 그 사이 평평한 땅을 밟을 수 있어 감사할 지경이었다. 풀려가던 다리는 힘을 되찾았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영양제를 맞는 나무들, 누군가 가지에 매어놓은 노란 리본, 등산객들이 정성 들여 쌓은 자그마한 돌탑, 바위틈, 동굴, 그 앞의 불상, 지나가는 다람쥐. 그러다 또 오르막. 가파른 산길. 작은 봉우리. 우리는 남문 산성을 둘러보고 조금 더 올랐다. 금정산에서 유명한 고당봉까지는 키로수가 많이 남아 도무지 갈 수 없는 상태여서 작은 봉우리를 목표로 정했다. 우리가 도착한 봉우리는 망미봉. 높은 곳에 오르니 깨끗한 바람과 푸른 숲이 한눈에 보였다. 시원한 물 한 모금에 갈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려갈 때는 무릎을 생각해 케이블카를 타고 가기로 했다. 망미봉에서 금강공원까지 가기 위해 올랐던 길을 내려오는데, 오히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신경 쓸 것이 많았다. 계단은 체중이 무릎에 너무 집중되지 않도록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을 사용해야 했는데,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 어려웠다. 그러다 중간에 한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집으로 가는 길, 배가 고파 우연히 들어간 중국집 간짜장을 먹고 창피함 따위는 모두 잊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우리가 걸었던 길을 바라볼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이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다. 올라가기까지 오랜 시간과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금방인 것. 포기할 수 없는 것. 이번에 느낀 바로 우리는 한계까지 힘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순탄한 삶을 지내왔다.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계는 오지 않았다. 노력한다면 더 올라갈 수 있다. 기회가 있고 가능성이 있다. 가슴이 트이고 시야가 열렸던 경험. 봉우리를 통해 깨달았으므로, 그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어 새로운 도전을 다짐한다. 우리 인생의 무수한 봉우리 중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점은 어디일까.
*등산 스틱과 무릎 보호대를 추가로 장만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