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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수 Aug 05. 2015

꿈에 대한 절실함은 축복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는 일이다

2015년 1월 8일, 새벽의 글



수년째 나는 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여전히 나에게는 이렇다 할 꿈이 없다. 반드시 이루고 말겠어. 기필코 무엇이 되고 말겠어. 어떤 것에 대해 그런 말을 당당히 적을 수 있는 것이 꿈이라면 나에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어떤 욕망, 그리고 그것을 향한 절실함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봐도 나에겐 없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 한 구석에 쭈그려 있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고, 내가 안고 살아가는 가장 커다란 불안 중의 하나는 줄곧 꿈에 대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불안과의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꾸준히 실패했다. 그는 언제나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한다.


꽤 다양한 것들에 흥미를 가졌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디자인론’이라는 전공 과목을 수강한 이후로 나는 새로운 배움에 대한 즐거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곳저곳 문을 열고 발을 들이밀며 경험의 점들을 찍어댔다. 그렇게 3년 정도는 나를 이끄는 나에게 그대로 나를 맡겼다. 나라는 사람을 나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아무리 바빠도 즐거웠다. 살아간다는 것은 경험의 점들을 꿰어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는 일이다. 나도 열심히 점을 찍었다. 하나의 궤적을 그리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나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내가 찍어온 점들로 그린 궤적은 제멋대로 날뛰다 만 짐승의 발자국처럼 보였다. 뚜렷한 목적이 없는 궤적은 방향을 상실한 흔적 따위에 불과해 보였다. 불현듯 시야가 아득해졌다. 나만의 궤적이라 여겼던 내 경험의 흔적들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나를 이끄는 나를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면 끝점을 가늠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끝에서 궤적을 완성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의 궤적은 난잡한 흔적이었다. 그게 결국 나의 궤적이겠지만,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체념해 버리는 것 같아서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싫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택한 하나의 길만을 걷는다. 자신이 가늠한 궤적의 끝점을 찍고 궤적을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인생을 걸기도 한다. 아득한 그곳을 향해 절실함으로 무장한다. 다음 점으로 과감히 스스로를 내던진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오직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지탱할 힘을 얻고 절실함을 충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보다 특별한 궤적은 없다. 누군가의 궤적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다. 자신만의 끝점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아름답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 라는 비교의 문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자신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그려 나아가고 있는가, 라는 여부의 문제다. 방향과 절실함을 가진 그들 모두를 나는 질투한다. 방향에 대한 확신은 그 무엇보다도 존경스럽다고, 절실함은 선택받은 존재에게만 주어지는 어떤 축복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절실함으로 무장하고 싶다. 절실함의 대상이 나에겐 없다. 확신의 궤적을 그리고 있지만 그 여정이 험난한 경우보다, 궤적에 대한 확신 없이 흔적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더욱 괴롭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꿈이라고 할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그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껴온 모든 것들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행하지 못하는 게으름, 나만이 지녔을 빛 덩어리를 보지 못한 채 과감히 행동하지 않고 안주하는 게으름.


행동하는 것은 나이고 오직 행동에 옮길 때만이 점이든 궤적이든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확신’은 행동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확신이 없어도 일단 행동해. 실천에 옮겨 봐. 이런 말은 누군가에게는 무책임한 조언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일생은 한 번뿐이니까. 발을 내딛더라도 이제는 어떤 꼭짓점을 향한 확신을 가지고 내딛고 싶다.


내가 절실히 바라게 될 그 꼭짓점이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과 생명감을 매 순간 느끼며 살고 싶다. 나를 잃은 채 파묻히고 싶지 않을 뿐이다. 불편함과 부족함에  관계없이, 나는 현재 불행하지 않다. 행복은 아마도 꿈의 유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오늘도 역시 꿈에 대한 생각의 결론은 없다. 아직 확신의 때가 아닐 것이다. 낙관적인 자답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려 본다.



camera: olympus oz80

film: kodak gold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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