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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2. 2023

포기를 통해 배운 것

완주보다 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서울100K 대회에서 한컷

해보기 전엔 몰랐다. 포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러니까 그날은 2021년 10월 17일. 나는 서울 강북과 경기도를 잇는 산 어딘가에 서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가 시간제한 안에 완주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통증이 누적된 왼쪽 발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오르막이라면 어떻게 이를 악물고 올라 보겠지만, 이미 근육이 뭉칠 대로 뭉친 다리는 내리막길에서 좀처럼 힘을 써주지 못 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면 함께 출전한 짝꿍까지 제시간 내에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 할 터였다.


“먼저 가. 나는 그냥 여기서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짝꿍은 그 사실을 너무 안타까워했다. 내가 그 대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또 완주하고 싶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서울100K 대회에서 한컷

처음으로 도전한 울트라 트레일 러닝. 나는 그때 서울 100K 50km 코스를 달리고 있었다.


트레일 러닝에 대해 알게 된 건 2019년이었다. 서울의 곳곳을 느낄 수 있는 서울 100K 대회가 개최된다는 것을 마라톤 대회 신청 사이트에서 보게 됐다. 트레일 러닝이란 일반 도로를 달리는 보통의 마라톤 대회와 달리 산을 오르내리는 코스가 포함돼 있는 러닝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산을 오르내리는 행위가 포함돼 있기에 트레일 러닝은 보통의 달리기보다는 다소 힘든 게 사실이다. 수백 미터가 되는 산을 오르고 또 내리는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 과정이 쓴 만큼 그 열매가 단 법. 중력을 거스르고 산을 오르는 행위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정상에 오르는 풍경에 매료돼 등산을 계속하는 것처럼 트레일 러닝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처음 서울 100K에 출전했을 때는 10km 부문을 달렸다. 서울시청에서 출발해 남산을 돌고 오는 코스였다. 남산이라고 하면 연인들이 가서 자물쇠를 채우는 벽, 전망 좋은 레스토랑이 있는 곳 정도의 인상만 있었다. 산이라는 감각은 정말 없었다.


서울 100K 코스를 뛰며 남산이 제대로 마음을 먹고 오르면 꽤 힘든 산이라는 것, 그리고 남산 안에도 제법 산다운 등산로가 있고 반딧불이 서식지와 같은 도심에서 보기 드문 장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트레일 러닝의 매력에 빠져든 시점이었다.


어쨌든 어떤 한 분야를 파다 보면 계속해서 그 세계가 확장되는 법이다. 걷다 보면 뛰고 싶고, 뛰다 보면 대회에 나가고 싶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다 보면 트레일 러닝이나 철인 3종 같은 러닝을 기반으로 한 다른 대회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음번엔 50km, 아니, 100km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km의 경우에는 하루 안에 완주를 하는 것이 보통 쉽지 않기 때문에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다. 서바이벌 블랭킷이나 침낭, 랜턴 같은 장비가 필수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출발지에서 미리 이 장비가 다 갖춰졌는지를 확인한 뒤 레이스에 돌입한다.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는 음식과 내가 마실 물을 직접 챙겨 달리고, 또 그렇게 달리다 지치면 자연 속에서 쉬어간다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심지어 그러한 행위를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큰 낭만으로 다가왔다. 서울 100K의 울트라 트레일 러닝 코스 완주는 10km 부문에 도전했을 때부터 나의 로망이었다.


코로나19 시국을 버텨내고 2021년 10월 드디어 서울 100K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여전히 코로나19는 사회적인 문제였지만, 트레일 러닝이라는 특성상 거리두기 원칙을 지키면서 대회를 운영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했다. 출발 타임이 몇 시부터 몇 시 사이로 다소 유동적이고, 때문에 모든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출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니시 라인이 있는 쪽에 차를 대고 지하철을 타고 출발지로 향했다. 10월치곤 다소 추운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하는 러닝이라 설레는 마음이 컸다. 게다가 내가 신청한 부문은 무려 50km. 나로선 역대 최장거리 도전이었다.


주말을 이틀 다 할애할 수 있었다면 100km를 신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주말을 모두 오롯이 쉴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50km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레이스에 돌입했다.


초반 1~2km까지는 몸이 아주 가벼웠다. 보통 대회에 돌입하면 초반이 가장 힘든 법인데 이상하게 그날은 속도가 잘 붙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래서 초반에 무리한 페이스로 달린 게 패착의 원인일지 모른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코스는 무척 길고 지루하고, 또 어려웠다. 오르막은 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등산로까지 가는 길 또한 오르막이었고, 그 길을 빙빙 둘러서 가는 것이 못내 지루했다. 어느새 점점 내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정해진 시간 안에 완주를 하기 위해서는 꼭 유지해야 하는 페이스가 있었기에 그 페이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산을 오르다 보면 분명 쉬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므로 그렇지 않을 때는 급수대를 만나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물은 내가 입고 있는 트레일 러닝 조끼에 들어 있었다.


중간중간 라면 등의 간식이 제공되는 천막도 있었는데, 그 역시 넘어갔다. 그런데도 과일이나 물 등을 섭취하고 출발한 짝꿍에게 몇 번이나 따라 잡혔다. 짝꿍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걷는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도 빨리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으니까. 제한 시간 안에만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았다. 그러다 고질적인 통증이 시작됐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산을 넘고 있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그 코스는 높고 낮은 산 세 곳을 초반에 오르도록 구성돼 있었다. 초반부의 고비만 넘기면 이후에는 비교적 평탄했다. 한강을 옆에 끼고 달리는 무난한 주로였다.


‘이것만 넘으면 돼. 이것만 넘으면 돼.’


이를 악물고 산을 오르고 또 내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산을 내려가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등산 스틱을 들고 어떻게든 다리를 지탱해 보려 했지만, 왼쪽 발등에서 시작된 통증이 쉬지 않고 계속됐다.


아이싱을 하며 버텨 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에너지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다리만 움직여준다면 분명히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챙겨 왔던 에너지 젤은 거의 하나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 포기하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해야 했다.


지정된 제한 시간은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왔다. 마치 시간이 뒤에서 점점 다가와 나의 등을 떠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100K 대회에서 한컷

결국 나는 정상을 다 찍고 얼마 되지 않아 DNF(기권)를 선언했다. 약 25km를 지나던 시점이었다.


“먼저 가.”


내 말에 짝꿍은 울먹였다.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포기하면 너무 아깝지 않느냐”며 나를 마치 전우처럼 챙겼다. 나는 괜찮다고,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짝꿍은 내 페이스에 맞춰 준다고 자신의 역량을 충분하게 발휘하지 못 하고 있었다.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라톤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내 페이스보다 더 빠르게 뛸 때는 물론이고 느리게 뛸 때조차 몸이 힘들다. 내가 뛸 수 있는 것보다 더 느린 속도로 뛴다는 건 불필요하게 오랫동안 다리에 통증을 누적한다는 걸 의미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희생을 해준 파트너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포기해 본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뭘 가지고 싶다, 먹고 싶다는 등의 욕망적인 차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실패하면 실패했지 도중에 포기한다는 건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사실 내게 주어졌던 일 대부분의 성질이 그랬다. 시험 범위까지 공부를 다 하지 못 했다고 해서 시험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취재가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기사를 쓰지 않고 지면을 펑크낼 순 없었다.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끝까지 해내야 하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업무를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그러니까 그날의 포기는 그때까지 지켜왔던 나의 모든 삶의 방식, 혹은 가치관을 거스르는 행위였을지 모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분명 괴로웠다.


아마도 완주 시간에 제한이 없었더라면 나는 등산 스틱에 몸을 의지해 다리를 끌고서라도 결승선을 통과했을 것이었다.


제한 시간이라는 것은 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이 정도 시간 안에는 들어올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곧 대회 주최 측과 나 사이의 약속이었다. 내게 그러한 역량이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순순히 포기하는 것, 그것은 곧 내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꼴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더 싫었다.     

포기한 이후 심적으로 많이 괴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괴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25km를 거의 쉼 없이 달려왔던 나는 그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앉아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그날따라 유독 새파랗게 눈부셨다.


사람들이 내 신발과 배에 붙어 있는 배번호를 보고 “대회에 출전했느냐”며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번호를 뗄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대답을 하며 잡담을 나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오래 앉아서 쉬고 있으니 힘을 내라며 사탕을 나눠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산에 다닐 땐 수분 보충을 잘해야 한다며 귤을 주기도 했다. 생전 처음 봤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날 그 순간에서만큼은 산에서 만난 가족, 혹은 친구 같았다. 생전 처음 본 타인의 안위를 그토록 걱정한다는 것이, 그리고 등산 동료로서 무언가 조언을 건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것은 뒤쳐졌기에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위로와 응원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DNF를 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기를 고집했다면 아마도 그들 모두 내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테니까.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내가 그날 서울 100K의 50km 부문에 도전한 이후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사실 포기는 25km 지점에서 했지만, 산 정상에서 걷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나는 꾸역꾸역 어떻게든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산에서 내려와 이동해야 했다. 달리기 기록을 멈췄더니 31km 정도 되는 지점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31km를 뛸 수 있는, 혹은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다면 풀마라톤도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그날 달린 장소는 보통 평지도 아닌 산이었지 않은가. 산을 두, 세 개나 넘는 코스로 30km를 넘게 달려왔다는 데 대해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더불어 어쩌면 내가 트레일 러닝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사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아는 것만큼 잘 못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터다.


짝꿍은 그날 이후로 나에 대한 감정의 점도가 더 끈끈해졌다고 했다. 몇 시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 사이에 뭔가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물과 간식까지 포기하며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완주를 위해 기꺼이 나의 레이스를 포기했다는 점이 감동으로 느껴졌던 것 같았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그는 완주 상품이었던 아노락을 하나 더 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했다. 규정상 50km를 모두 뛴 사람에게만 지급되는 것이었다. 짝꿍은 그 산을 내려오고 나서는 정말 거의 평지였다며 안타까워하면서, 거기까지 온 거면 다 온 거나 마찬가지인데 옷을 주지 않은 게 너무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 택시를 타고 차에 도착해서 난 정말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짝꿍은 완주 전이었다. 날은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어둑할 때 집에서 나와 다시 어둑할 때 돌아가는, 정말이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 여정을 홀로 해내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오히려 나 혼자 일찍 포기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졌다. 나의 포기로 인해 그가 꼭 완주를 해야 한다는 짐을 떠안은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함께 가는 길은 더뎠지만, 혼자 가는 길만큼 외롭진 않았을 터다. 그 길을, 그 여정을 오롯이 홀로 감내해 낸, 그래서 완주 메달을 받아낸 짝꿍이 나는 무척 자랑스러웠다.


완주를 했다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포기를 했어도 나는 여전히 얻은 것이 많았다. 함께 달린 전우와 느낀 끈끈한 유대감, 어려운 결정을 해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를 해도 괜찮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그날의 레이스를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완주해 내지 못 한 어떤 여정의 완성인 것이다.


미완성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일의 종착점이 다 똑같지 않듯이. 어떤 것은, 어떤 길은 그렇게 중간에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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