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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2. 2023

치앙마이의 잊지 못 할 새벽

 ‘므앙타이 치앙마이 마라톤 2019’ 후기

해외 마라톤은 왠지 더 설렌다. 일단 내가 있는 공간 자체가 일상과 유리돼 있어 온전히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 이유이고, 또한 달리는 풍경이 평상시에 보던 것과 달라 여러 색다른 감각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12월 치앙마이에서 달렸던 그날은, 이렇게 설레고 신선한 여러 해외 마라톤 경험 가운데서도 압도적이었다. 새벽의 그 공기, 온도, 습도 그런 것들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마치 그때 달렸던 그 거리가 내 안에 스며들어 온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2019년 12월 출장 겸 휴가를 겸해 태국 치앙마이에 가게 됐다. 국내 여행자들 사이에서 치앙마이가 좋은 기후와 합리적인 물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때였다. 처음 방문하는 치앙마이에서 기왕이면 특별한 기억을 남기자 싶어 마라톤 대회에 신청을 했다.

대회 전날 배번호 등을 받기 위해 엑스포에 갔다

치앙마이의 인상은 무척 좋았다. 돌아다니기 딱 좋은 날씨, 입맛에 맞는 음식들. 뛰기 전날 대회장에 마련된 엑스포에 갔을 때도 좋았다. 태국의 느낌이 물씬 나는 가방과 러닝셔츠, 배번호 등을 수령하고 돌아보니 이것저것 파는 것이 많았다. 태국의 마라톤 영웅 입간판도 보였고, 이전 대회의 완주 셔츠들도 눈에 띄었다. 이전 대회에서 남은 셔츠를 폐기하지 않고 기념품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신선했다. 환경적인 면에서도 물론 좋을 것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던 엑스포에 만족하며 다음 날 레이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출발선 앞에 많은 주자들이 몰려 있다

10K 출발 시간은 오전 5시였다. 역시 한낮엔 더운 동남아라 출발 시간이 빨랐다. 4시 30분쯤 기상해 쉬엄쉬엄 대회장으로 걸었다.


치앙마이 마라톤의 독특한 점은 출발 전 사전행사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 안내하는 사람이 크게 없었고, 그냥 러너들이 출발선 주변에 몰려 있었다. 준비 운동도 혼자 알아서 했다. 마라톤 출발지는 구시가에 있었는데, 공항에서의 접근성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여행자들이 참가하기에 용이할 것 같다고 생각됐던 부분. 우리나라와 시차가 불과 2시간이었기 때문에 새벽 4시대 기상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것도 치앙마이 마라톤의 장점이었다.


이야기를 꺼낸 김에 치앙마이 마라톤의 장점을 몇 가지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 달리기에 최적의 날씨인 점, 그리고 코스다. 12월의 치앙마이 날씨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기에 딱 좋았다. 오전 5시쯤에는 약간 선선하다 뛰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올라오는 정도. 달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가 있을까 싶었다. 코스 역시 업힐과 다운힐이 많지 않고 평탄해서 개인 기록 경신을 노린다면 등록해 볼만하다.


마지막으로 먹거리다. 볶음밥부터 생선 수프, 햄버거, 빵, 바나나, 물, 스포츠음료, 죽까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먹거리를 받을 수 있었다. 빵은 세 가지 종류였는데, 종류별로 하나씩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햄버거는 유명 프랜차이즈의 것이라 해외 음식을 가리는 이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치앙마이 마라톤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건 주로의 풍경 때문이다. 골인 지점에 거의 다다라서야 어슴푸레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 지난밤 시간 동안 거리를 가득 채웠던 어둠이 조금씩 밀려나가면서 빛이 들어차기 시작할 때의 치앙마이 구시가 거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일찍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이따금씩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소리를 제외하면 거리 전체가 적막에 쌓인 느낌이었다. 이제 곧 해가 뜨고 거리 가득 사람들의 소리가 가득 찰 것이라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새벽 치앙마이의 거리 풍경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거대한 불상이다. 불교의 국가답게 곳곳에 사원과 불상이 있었는데, 빛이 거의 없는 어둠 속에서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불상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낼 때의 그 압도감. 조용한 도로에서 위대한 성인과 눈을 마주하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이날은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10km를 완주했다. 중간에 잠깐 물을 마시고 싶기도, 걷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 계속해서 달리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다. 8km 지점을 넘었는데 속도를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빠르게 뛰었다. 그전까지 보통 페이스가 1km 당 7분 정도였는데 이때는 6분 10~20초대까지 속력을 끌어올렸다. 그래도 이상하게 몸에 에너지가 계속해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피니시 라인은 11km 가까이에 있었다. 아마 정확하게 10km 컷이었다면 1시간대 초반으로 골인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 같다. 이후 확인한 마라톤 대회 사진이 퍽 프로처럼 나와 좋았던 기억도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몸이 첫 마라톤 대회에서 봤던 사람들과 제법 비슷하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차이라이 산을 오르다 휴식하고 있다
등산로에서 만난 소들

그날 에너지가 얼마나 넘쳤는가 하면 마라톤 완주를 마친 뒤 바로 5~6시간 정도의 코스로 등산 투어를 다녀왔을 정도였다. 치앙마이 ‘도이 인타논&매 사폭 트레킹 투어’인데, 10만 원 정도의 가격선으로 가이드와 동행하게 된다. 개, 닭, 돼지, 소, 물소 등 여러 동물들을 만나는 대자연 투어라 보면 되는데, 등산을 마치면 뗏목을 타고 강가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도이 인타논이라는 국립공원을 트레킹 하는 투어인 줄 알았는데 도이 인타논은 멀리서만 바라보는 데 그쳤다는 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막상 내가 오른 곳은 ‘차이라이 산’(The Chai Lai Mountain)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의 정상에서 멀찌감치 있는 도이 인타논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길이 잘 닦여 있는 국내의 산만 오르다 안전장치도 제대로 없는 정말 야생 그대로의 산에 오를 수 있어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가이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치앙마이 마라톤은 언제고 날짜만 맞으면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은 대회다.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코스. 새벽녘의 치앙마이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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