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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2. 2023

코로나19, 러너스 블루

어디로 달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그랬듯 코로나19는 내게도 길고 괴로운 터널이었다. 특히 러너로서 내게 코로나19는 달리고 싶다는 의욕을 바닥까지 긁어내간 무기력의 근원이었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기에 느끼는 권태감을 ‘러너스 블루’라 명명한 바 있다. 코로나19가 내게 안겼던 감정이 바로 ‘러너스 블루’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는 행위 자체가 아닌 대회를 완주했다는 성취감에서 더 큰 기쁨을 얻었던 나로서는 코로나19 시기가 암흑 그 자체였다. 고작 마라톤 1년 차. 이제 막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시기였다. 1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만 해도 한, 두 달이면 바이러스가 완전히 잡힐 줄만 알았다. 그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국내에 들어오고 세계 곳곳의 장벽을 막아버릴 것이라고는 그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 했다.


당장 3월에 참가 예정이었던 타이베이 우먼스 하프 마라톤 대회가 취소됐다. 그리곤 4월 괌마라톤도 연기됐다. 코로나19 초기엔 이것이 재해라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항공권과 호텔 숙박료 등을 환불받는 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이 시기 몇몇 사람들은 지불했던 항공료 및 숙박료를 거의 돌려받지 못 하기도 했다.


사실 2020년 나에겐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최대한 많은 대회에 나가고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차츰 늘려 연말엔 풀마라톤을 완주하는 것. 완주 시간에 제한이 없는 미국 하와이의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가 내 첫 풀마라톤 목표지였다. 일단은 시간제한이 없는 곳에서 내 기록을 확인하고 그 후에 차츰 메이저 대회들에 참가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러너라면 한 번쯤 한국의 동마, 춘마, 중마 완주, 또 보스턴, 뉴욕, 시카고, 런던, 베를린, 도쿄 등 6개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 6대 마라톤 완주를 꿈꿔보곤 하니까.


코로나19는 이런 꿈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호놀룰루 마라톤까지 연기 결정을 하면서 마라톤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명확하게 가졌던 목표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저런 취소건으로 날린 200만 원가량을 그다음 이야기였다.


한 해만 견디면 나아지리라 여겼던 코로나19는 장기화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여러 명이 모이는 행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마라톤 대회들이 취소되거나 언택트 방식으로 전환됐다. 2020년 1년은 여러 언택트 마라톤에 참여하며 그럭저럭 버텼다. 그러다 2021년에 접어들자 진짜 견디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2020년 하반기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상태였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 한 장씩은 품고 산다고 하지만, 그때의 퇴사는 완전한 내 의지는 아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어이없는 이유로 배신 아닌 배신을 당했고, 그 상황에 환멸이 나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원하는 타이밍에 낸 사직서가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지금까지 어디로 걸어온 것인가. 지난 10여 년의 기자 생활 전부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쉬는 기간 동안 휘적휘적 동네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하루에 1만보에서 5만보 사이를 계속 걸었다. 바람을 쐬고 좀 걸어야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에 숨 쉴 공기가 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순례길이나 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PCT) 종주라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해외에 나갈 길이 요원했다. 가슴엔 답답함만 쌓여갔다.

영종도 백운산에서

영종도를 목적 없이 찾았다. 왜 영종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적당히 오르기에 적당한 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는지,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는지, 공항의 냄새라도 맡고 싶어서였는지. 하여튼 그날 백운산 등산을 마치고 영종진공원으로 이동해 공원 몇 바퀴를 뛰다가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고작 마라톤 대회 좀 열리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는 거냐’는 꾸짖음이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아 더욱 서러워졌다. 공원의 돌담 너머로 펼쳐진 바다가 ‘인생은 원래 고통을 껴안고도 잔잔히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지금도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몇 년 동안 누적됐던 설움 같은 것이 하필 그날, 그 순간 폭발해 버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힘듦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것을 인정하고 들여다보는 단계가 필요하다. 어쩌면 나는 줄곧 스스로를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에 비하면 나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신경한 태도로 대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사라진 허전함이나 열심히 했던 일을 빼앗긴 허무함에 대해 한 번만 그냥 “힘들다”고 소리 냈으면 될 일을 오래 껴안고 있으면서 키웠다.


어쨌든 그날 그렇게 크게 운 뒤로 속이 이상하리만치 개운해졌다.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중얼중얼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났더니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했다. 다시 한 번 마라톤이 알려준 삶의 미덕을 떠올렸다. 종착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 힘든 여정에도 끝은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도 분명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발을 내딛는 것뿐이다. 방향은 그 걸음이 만들어 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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