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영 Oct 21. 2023

한국에는 마블런이 있다

2019, 2023년 마블런 후기

2023년 10월 15일 오전 7시 20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에 막 당도했다. 마지막으로 여의도공원에서 마라톤을 시작한 게 언제인가 헤아려 보니 벌써 4년 전이었다. 2019년 11월 열렸던 롱기스트런 이후 여의도 공원에 올 일이 딱히 없었다.

마블런 티셔츠를 입고 오랜만에 출발선에 섰다

이날 여의도공원에선 ‘2023 마블런’이 진행됐다. 약 8000명의 참가자들이 로키, 토르, 캡틴 아메리카, 캡틴 마블, 헐크, 블랙팬서 등의 팀으로 나뉘어 경합을 펼치는 형태로 진행된 경기. 시작을 앞둔 러너들은 대회장 곳곳에 세워진 부스에서 이벤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미리 준비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러너가 참여하는 펀런(재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펀과 달린다는 뜻의 런을 합친 말) 행사에서는 준비운동을 미리미리 해두는 게 좋다. 아무리 펀런이라 해도 5km 이상 장거리를 달리게 되는 만큼 미리 몸을 푸는 게 필수인데, 대회 분위기에 휩쓸려 방방 뛰다 출발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


레이스의 시작은 오전 8시였다. 여의도 공원에서 출발해 서강대교를 건너 반환점을 돈 뒤 다시 여의도 공원으로 돌아오는 10km 코스. 마지막으로 10km를 뛰어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 보려 했으나 아무리 애써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만큼 오랜만이라 긴장이 됐다.

‘2019 마블런’에서 받은 완주 메달과 배번호

4년 전에도 바로 이 장소에 있었다. ‘2019 마블런’에 참여했을 때다. 2020년부턴 코로나19로 인해 대회가 열리지 않았기에 마블런도 꼬박 4년 만에 다시 개최됐다. 미국 등에 런디즈니가 있다면 한국엔 마블런이 있다!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 마블런에 대한 자부심이 있던 터라 (전혀 대회 관계자도 아니지만) 오랫동안 재개 소식을 기다렸던 만큼 ‘2023 마블런’은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2023 마블런’ 참여를 결정한 건 비단 디즈니 팬이어서는 아니다. ‘2019 마블런’ 때가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경기장으로 나갈 기력이 없어서 전날 용산에서 잠을 잤다. 내가 묵은 호텔에서 여의도 공원까지는 5km 남짓. 마음만 먹으면 뛰어갈 수도 있는 거리로 차를 타면 15분이면 도착했다.


그런데도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타고 겨우 출발 전에 대회장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벤트 부스가 보였지만, 출발 시간이 임박해 단 하나의 이벤트에도 참여하지 못 하고 그대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몸은 그때까지도 잠에서 덜 깬 듯했고 출발은 떠밀리듯 한 것처럼 찝찝했다.


그런 피로감은 이윽고 사라졌다.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로 꽤 많은 대회에 나갔는데 마블런처럼 좋은 코스는 없었다. 코스가 평탄해서 기록을 세우기에 좋았고, 주로 곳곳이 포토 스폿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뛰는 재미가 있었다. 중간엔 DJ 부스까지 마련돼 있어 달리다 댄스타임도(?) 가질 수 있었다.

7km 지점에서 브이!

자원봉사자들의 응원도 완주에 큰 힘이 됐다. 혼자서 뛸 때보다 대회가 좋은 건 확실히 이런 응원이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주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한 번씩 “파이팅!”을 외쳐 주는 자원봉사자들. 그 한 마디가 뭐 그렇게 큰 힘이 되겠느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왠지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 앞에서라도 더 힘을 내서 뛰고 싶어 진다. 대회를 달리다 보면 반환점을 돌아오는 러너들이 “다 왔어요. 파이팅!”이라고 외쳐 주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비슷한 이유에서다. 누군가가 외쳐주는 격려의 구호는 생각보다 그 힘이 세다.


힘든 줄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마블런은 피니시 라인을 보곤 ‘벌써 끝이라고?’라고 속으로 생각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5만 원대로 참가비는 다소 높은 수준이지만, 예쁘게 꾸며놓은 주로와 이벤트 부스에서 나눠주는 풍성한 선물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 먹게 된다. 특히 ‘2023 마블런’은 디즈니의 새 시리즈 ‘로키2’ 공개에 맞춰 진행된 만큼 관련 이벤트들이 대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2023 마블런’ 때는 이벤트에 참여해 기념품으로 후드를 받았다

결국 재미있어야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마블런을 마치며 그런 생각을 새삼 했다.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가는 기쁨이든, 몸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기분 좋은 자각이든, 이런 펀런 행사에 참여하며 얻는 재미이든 어떠한 즐거움의 요소가 있어야 특정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는 내년에 열릴 마블런을 또 기대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전 06화 디즈니랜드에서 마라톤을 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