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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1. 2023

드디어 생애 첫 마라톤 대회

제15회 인천광역시장기 건강달리기대회 출전 후기

간을 하나도 안 한 따뜻한 순두부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첫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업다운이 심한 코스. 주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듯 옆구리가 미친 듯이 당겼다. 간신히 피니시라인을 통과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순두부와 막걸리였다.

첫 마라톤 대회 이후 받은 먹거리


아무리 간장 양념을 뿌렸다고 한들, 아무런 반찬도 없이 먹는 순두부의 맛이 이렇게 좋았던가. 유명 두부 전문점에서 파는 갓 만든 두부도 아닌데 말이다.


땀 흘린 뒤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 것인가를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됐다. 2019년 열린, 그러니까 내가 처음으로 출전한 ‘제15회 인천광역시장기 건강달리기대회’에서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혀 뛰지 않던 사람이 2주 만에 페이스를 만들어서 갑자기 10km를 뛴다는 건 (그것도 시간제한이 타이트한 대회에서) 정말 힘든 일이었다. ‘여차하면 기권할 수도 있다’고 마음을 편히 먹어서 그렇지 조바심을 냈더라면 몸에 크게 무리가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고 하니 마라톤을 오래 해온 한 지인은 ‘10km를 뛰려면 최소한 2개월 정도는 시간을 두고 몸을 만드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어쨌든 참가비까지 냈고 기왕 마음먹은 일이니 대회는 나가는 것으로 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지만 성실하게 뛰며, 페이스를 조금씩 올려봤다. 30분을 걸을 수 있으면 10분을 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 연습 때는 2시간을 걸었다. 오래 걷기를 해내고 나니 어쩌면 생각보다 잘 달릴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러닝화도 하나 샀다. 달리기에는 ‘다리와 신발만 있으면 되는 돈이 별로 안 드는 운동’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막상 시작을 해보니 여느 운동처럼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러닝화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운동화를 신으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태평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통 신발은 자기 발에 딱 맞는 사이즈로 구입하게 마련. 러닝을 할 때 신는 운동화는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조금 큰걸 신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있던 신발을 신고 뛰다가 두 번째 발가락에 통증이 있는 듯해서 바로 새 운동화를 샀다. 러닝 초급자이기 때문에 속도보다는 쿠션감에 더 비중을 두고 구입했다.

아름다웠던 인천대공원의 풍경

그렇게 나선 생애 첫 마라톤 대회. 대회 전 날 미리 코스도 파악하고 근처 주차할 곳도 알아볼 겸 대회가 열릴 인천대공원으로 향했다. 인천대공원은 늘 정문으로만 갔었는데 동문 쪽으로 가니 먹자골목도 형성돼 있고 커피 트럭도 있어 신기했다. 공원 안 곳곳에 세워진 원두막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인천에 15년 정도 살았는데 이런 장소는 처음이었다. 이런 게 또한 마라톤의 매력이기도 하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한 번도 안 가봤던 장소들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코스는 그렇게 친절하진 않은 것 같았다. 평지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더 많은 것 같은 코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근처에서 청국장을 먹고 귀가해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쉬이 잠에 들기 어려웠지만,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취침하는 데 집중했다.


대회 당일. 집에서 한 번 스트레칭을 하고 나올 생각이었으나 알람을 듣고 바로 깨지 못 해 대회장으로 일단 이동했다. (어쨌든 늦는 것보단 빨리 가는 편이 좋으니까.) 동문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주차장에서 급하게 스트레칭을 한 번 했다. 그리고 대회장에 도착을 하니 선수들을 위한 스트레칭 시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대회에 출전하면 보통 준비 스트레칭 시간을 따로 준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됐다. 도합 약 20분의 스트레칭을 마치고 달릴 준비를 완료했다.

배번호를 착용하며 마음이 아팠다

이때의 복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마라톤대회가 처음인 나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러닝복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지식도 없던 때였다. 일단 무조건 시원하고 편한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통풍이 잘되는 바지에 한 명품 브랜드에서 사서 오랫동안 입고 있는 티셔츠를 입었다. 배번호를 고정하기 위해 이 티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약간 경악까지 했다. 비단 비싸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 티셔츠의 촉감을 좋아해서 오래오래 입고 있던 것이기 때문.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배번호를 고정할 때 꼭 옷핀을 쓸 필요는 없다. 배번호 고정용으로 나온 똑딱이 스타일의 버튼과 자석 등이 있기 때문. 세상은 넓고 러닝 아이템의 세계 역시 무한하다. 하하하.


하여튼 여차저차 선 출발선에선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학창 시절 운동회에 나갈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두근두근. 기분 좋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서 본 스타트 라인

사실 이날 대회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계속 주눅이 들어 있었다. 대회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모두 프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복장부터 준비운동하는 자세까지 나를 뺀 모두가 달리기의 베테랑 같아 보였다. ‘이 대회의 꼴찌는 내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도대체 왜 이렇게 튀는 바지를 입고 왔을까’ 싶어 창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가족 단위로 온 선수들을 몇 팀 발견하고 마음을 약간 놨던 것 같다. 10살 전후로 보이는 꼬마들이 있었는데, ‘설마 저 친구들보단 내가 잘뛰겠지’ 하고 안심이 됐다. (결과적으론 그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빠르게 결승선을 통화한 어린이도 있었다.)


분명 마이페이스를 찾고 갔건만 실전이 되니 좀처럼 마이 페이스를 찾기가 어려웠다. 빨라졌다 느려졌다 몸이 컨트롤이 잘 안 돼 힘들었다. 게다가 초반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뛰다 보니 각자 자리를 잡으려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활발한데, 그 사이에서 내가 너무 거북이처럼 달려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엄청 심정적으로 압박이 됐다. 체감상 1km도 뛰지 않았는데 200명 정도에게 추월당한 것 같았다.


그래도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은 초반 5km까지는 쉬지 않고 달렸다는 점이다. 코스가 난이도가 있어 중간에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반환점에 있을 급수대를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다. 긴장해서 목이 더 말랐는지 두 컵이나 벌컥벌컥 마셨고, 결국 이것 때문에 위장이 출렁출렁 춤을 춰서 6km~7km 사이에선 걷다 뛰다를 반복해야 했다.

체력이 방전되었습니다 얼굴은 다 익었네요

결승선을 거의 앞뒀을 때는 체력이 완전히 방전됐다. 러닝 어플리케이션이 알려주는 거리는 벌써 10km를 넘은 상태였다. 의욕이 영 안 생겨서 걷다가 마지막 피니시 라인에서 간신히 다리에 힘을 넣어 뛰었다.

생애 첫 마라톤 대회에서 받은 스포츠 양말


먹을 것 외에도 스포츠 양말 네 켤레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게임을 하다 아이템을 받는 기분이랑 비슷했다. 러닝 입문자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드디어 다음 러닝부터는 스포츠에 적합한 양말을 신을 수 있게 됐다. 참가비가 1만 원으로 통제된 도로에서 달리기도 하고 음식에 양말까지 받다니. 앞으로도 대회에 계속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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