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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1. 2023

디즈니랜드에서 마라톤을 뛰다

홍콩 런디즈니 참가 후기

해가 뜨기 전 홍콩 런디즈니의 풍경

비행기 값에 호텔비, 거기에 참가비 10만 원까지. 거금을 들여 간 곳은 홍콩 디즈니랜드였다.


마라톤에 대한 흥미가 점차 높아지면서 이런저런 대회들을 검색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국내 대회를 주로 보다가 알게 된 게 해외에서도 마라톤 대회들이 많이 열린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대회들에 나 같은 외국인도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타공인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디즈니의 오랜 팬이다. 특히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시리즈로 유명한 픽사의 팬.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마라톤 대회들을 검색하다 ‘런디즈니’라는 러닝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월엔 미국 올랜도, 9월엔 프랑스 파리, 11월엔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열리는 러닝 대회. 개장하지 않은 디즈니랜드에 들어가서 디즈니랜드 곳곳을 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마침 11월에 열리는 홍콩 런디즈니 티켓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10K의 메달이 토이 스토리라는 것까지 찾아냈다. 등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 달의 지출은 다음 달의 내가 어떻게든 갚을 터였다.


런디즈니 신청은 한국에서 할 수 있었다. 보통의 대회들이 그렇듯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면 되며 정원에 따라 선착순으로 마감된다. 해외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로 참가비를 내자 곧 영어로 된 안내 메일이 왔다. 그 메일에는 배번호, 티셔츠 등을 받을 수 있는 장소와 운영시간 등이 설명돼 있었다.


홍콩에 가서 디즈니랜드 인근에만 머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른 어떤 관광과 여행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한 런트립이었다. 마라톤 대회는 보통 오전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되도록 출발지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완주하고 난 뒤 바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라도 숙소는 대회장과 지근거리인 게 좋다.


보통 레이스 며칠 전부터 큰 대회들은 인근에서 엑스포를 진행한다. 이곳에서 배번호와 티셔츠 등을 수령하고, 대회에 따라 에너지젤, 고글, 스포츠 테이프 등 러닝 장비도 구입할 수 있다. 홍콩 런디즈니도 마찬가지였다. 대회 바로 전날 디즈니랜드 인근의 빌딩에서 배번호를 수령했다.


출발은 역시 이른 아침이었다. 홍콩처럼 날씨가 무더운 나라에서는 보통 출발 시간이 더 빠르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더워서 뛰는 게 쉽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코스튬 복장으로 갈아입고 배번호를 붙인 뒤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코스튬은 런디즈니의 또 다른 재미다. 런디즈니 같은 대회는 기록보다는 재미를 위해 참가하는 이들이 많다. 디즈니랜드에서 뛰겠다고 1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디즈니를 사랑하지 않을까. 통상 디즈니랜드에서는 성인이 캐릭터 코스튬을 입고 입장하는 것을 막는데, 이 제한이 런디즈니 때는 풀린다. 코스튬을 입고 디즈니랜드를 뛸 수 있는 기회를 디즈니 팬들이 놓칠 리 없다.


짝꿍은 엘사 드레스를, 나는 올라프를 주문했는데 올라프 옷이 때에 맞춰 배송되지 않아 안타깝게 홍콩에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첫 해외 러닝을 기념해 한복을 입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코스튬을 입은 이들이 많지 않아 쑥스럽기도 했지만, 이 순간을 충실히 즐기고자 했다. 5K, 10K, 하프 등에 출전하는 많은 참가자들이 엉켜 있는 상황. 엄청난 인파 속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외국어 안내를 제대로 듣지 못 해 7분 늦게 출발한 건 안 비밀이다.)

코스튬을 입고 디즈니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었다

홍콩 런디즈니의 10K 코스는 디즈니랜드 외곽을 달리다 대략 7km 지점에 디즈니랜드로 입성하도록 꾸려져 있다. 초반엔 7분 늦게 출발했다는 초조함 때문에 오버 페이스로 달렸다. 그러다 중간중간 포토 스폿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에 디즈니 캐릭터들까지 서 있어 함께 사진을 찍고자 줄을 선 이들이 많았다. 초반 포토 스폿 두, 세 개 정도를 지나고 나니 먼저 출발했던 사람들과 페이스가 비슷해졌다. 그때부터 가슴을 쓸어내리고 페이스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래도 디즈니런인데 고작 디즈니랜드를 3km만 뛴다고 좀 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디즈니랜드 외곽 코스는 자연 속을 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색달랐다.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면서 바다 옆을 뛰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빛이 부서지는 수면은 반짝였다. 뛰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디즈니랜드 안으로 입성하게 되면 디즈니 각종 캐릭터들이 포토타임을 위해 곳곳에 서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30분 이상 넘을 때가 많고, 그나마도 줄을 빨리 서지 않으면 잘리게 되는데 런디즈니 참가자들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10분 안으로 빠르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메리다의 경우 줄 서 있는 사람이 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초반 무리한 페이스로 중반쯤엔 많이 지쳐 있었는데 중간중간 포토 스폿에서 사진을 찍으며 쉴 수 있어 에너지가 금방 회복됐다. 코스튬과 한복을 입은 우리를 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며 다가와주던 러너들도 있었다. 그들의 에너지도 수월한 완주에 큰 힘이 됐다. 피니시 라인에 인접했을 때는 러닝을 끝내기가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또 디즈니랜드 곳곳을 직접 발로 누비며 뛰어볼 수 있었다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런디즈니 완주 메달을 들고!

피니시라인에서 쭉 일자로 걸어가니 메달과 완주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바나나, 스포츠음료, 물 등으로 간식은 심플했지만, 메달을 보니 배고픈 것도 잊게 됐다. 금색 메달에 예쁘게 새겨진 ‘토이 스토리’ 캐릭터들. 디즈니 덕후의 팬심이 차올랐다.


참고로 런디즈니는 출전하는 거리마다 증정하는 메달 모양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다음 런디즈니 출전 때는 다양한 코스에 출전해 여러 종류의 메달을 수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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