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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1. 2023

나의 페이스 찾기

달리기가 고통스럽지 않은 때가 왔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인 2019년으로 돌아가서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믿지 않았을 텐데, 달리기를 하다 보면 별로 힘들지 않고 뛸 수 있는 속도가 저마다 생긴다. 그걸 소위 ‘마이 페이스’(My Pace)라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내 페이스를 찾은 건 첫 마라톤 대회를 10일 정도 앞뒀을 때였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 러닝을 즐길 때와 달리 대회를 신청하자 압박감이 들었다. 그때는 거리 감각이 그다지 없을 때라 일단 집 근처에서 하는 10km 마라톤 대회에 신청했다. 대회에서 규정한 제한 시간은 1시간 30분. 일반적으로 많은 대회들이 10km 시간제한을 2시간으로 두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내가 신청했던 대회가 다소 엄격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즐기러 오는 주자들보단 마라톤에 진심인, 하프나 풀마라톤을 뛰기에 앞서 연습을 하러 오는 주자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용기 있게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km를 1시간 30분 안에 뛰기 위해선 1km 당 9분의 속도는 최소한 유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그렇게 빠른 시간은 아니지만, 중간에 수분 섭취나 다리 당김 등의 이유로 쉬는 시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8분대의 속도는 유지하자는 결심이 섰다.


이제 막 마라톤에 발을 뗀 시점이라 1km 당 8분대가 어느 정도 속도인지, 그리고 나는 얼만큼의 속도로 뛸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 했다. 결론은 연습 뿐이었다. 페이스를 계산할 수 있는 러닝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고 연습에 돌입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은 뒤 월경 이틀차를 빼놓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를 했다.


처음에는 300m 정도만 달려도 숨이 찼는데, 2~3일 꾸준히 뛰자 1.5km 정도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됐다. 이 기세를 몰아 5km 달리기에도 도전했다.


달리기 연습을 러닝머신 위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도로에서 뛰는 시티런을 좋아한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건 ‘달려나간다’보다는 ‘다리를 움직이는 걸 지속한다’의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서다. 시티런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고 뛰다 보면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어 (물론 날씨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다.


시티런의 한 가지 맹점은 신호등이다. 대회의 경우 도로를 통제하기 때문에 신호등의 구애를 받지 않고 계속 뛰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연습을 거리에서 할 때는 차도에선 뛸 수 없으므로 신호등이 나타나면 쉬어야 한다. 자전거나 보행자도 조심해야 한다.


처음 달리기 연습을 할 때도 그랬다. 일반 인도에서 달리다 보니 신호등에 많이 막혔다. 그러면서 쉬기도 많이 쉬었고, 처음 5km를 달릴 때는 확실히 힘들어서 중간에 걷기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월경이 시작됐다. 전날부터 몸이 무겁기 시작하더니 첫날과 셋째날에는 꾸역꾸역 2km를 뛰기도 힘들었다. 마라톤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참이라 조바심이 나는 걸 참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월경이 거의 끝나가던 때,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자신감에 바로 5km 뛰기에 다시 도전했다. 이런저런 사소한 생각을 하면서 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다리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고 마이 페이스를 찾게 됐다. 이전까지는 자세에 집착하고 통증에 신경을 쓰며 달렸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버리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다.


이때를 복기해 보면 초반 1km까지는 다소 힘들었던 것 같다. 특히 오른쪽 다리가 무거웠다. 나는 척추가 휘고 골반이 살짝 틀어져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겠지만) 오른쪽 다리가 더 길다. 이 때문인지 달리기를 할 때 오른쪽 다리가 아픈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2km쯤을 지나니 뭔가 좋은 속도를 찾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4km쯤 뛰자 ‘5km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최소 2~3km는 더 뛰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고 숨이 차지 않은, 정말 ‘괜찮은’ 시기가 있다는 건 나로선 큰 충격이었다. 달리기가 고통스럽지 않다는 걸, 그러니까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때 찾은 마이 페이스는 1km 당 7분 30여초. 이대로면 1km를 1시간 20분여에 주파할 수 있기에 더 욕심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계속하면 차차 속도는 좋아질 거라고 마음을 편히 먹었다.


이때 얻은 자신감으로 다음 날엔 내친김에 10km 뛰기에 도전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0km라는 거리는 채워보자는 마음이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뛰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 9km 정도에서 달리기는 멈췄다. 후에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을 해보니 7km까지는 여유롭게 뛰었고 7km에서 8km 넘어갈 때는 조금 힘들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혼자 뛸 때는 급수대가 없어 물을 직접 들고 뛰어야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첫 번째 마라톤 대회의 10km 코스는 해볼만했다. 충분히 1시간 30분 안에 들어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적정한 페이스를 찾고, 그것을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쩌면 오래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이 페이스’를 찾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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